약속한 인터뷰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 경향신문사 앞 횡당보도에서 사실 그를 먼저 봤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작은 키에 당차고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 이번 달 3년차로 접어드는 뉴스메이커 유인경 편집장이다. KBS <아침마당>, MBC <아주 특별한 아침> 방송 출연과 <해피먼데이>(2002), <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2005)등 책까지 낸 멀티플레이어 유인경 편집장(47)과 여자 대 여자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 편집장, 유인경

“언론중재위원회도 불려가고 명예훼손도 당해보고, 정말 힘들었어요.” 처음엔 주간지의 편집장이 된 것이 너무 싫었다고 솔직히 얘기한다. 일간지 기자로 있을 때에는 오늘 일은 오늘이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힘든 것도 잊었었다. 매 주 심판을 받게 되는 지금의 주간지 일이 더욱 어렵단다. 일간지만큼 일의 주기가 짧지도 않고 월간지처럼 취재기간이 길지도 않은 주간지가 제일 ‘더럽다’는 거친 표현이 나온다. “일반 기자였을 때는 내 일만 잘하면 되고, 내가 있었던 여성팀에서는 항상 스트레이트 기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물을 먹어도 남자 기자들이 여성관련 기사들을 잘 모르니까 편했는데”라며 웃는다. 편집장이 된 이제는 모든 기사를 선택하고 책임진다. 일반기자와는 다른 편집장의 정보력으로 기자들에게 정보도 물어다 주어야 한다. 거의 15년간 생활문화 및 여성 기사만 전담하다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주간지 전체의 기사들을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인경 편집장은 자신을 ‘무식해서’라고까지 낮추며 배우려는 자세로 임한다. “오히려 몰랐던 나의 능력들을 확인하게 돼요.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된 기분이에요”라며 특유의 긍정적 자세를 보여준다.

기자 아저씨들을 경악시키다

사실은 결혼을 못해서 취직을 했다고 웃으며 털어놓는다. 대학 졸업 후 오늘날 여성조선인 가정조선의 기자로 들어갔다. 특별히 원해서 한 취직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곳에 가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한번은 취재차 유럽에 갔었는데, 현지 사람들이 정말 참 느긋하게 잘 살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부터 아등바등 살지 말자고 생각했죠.” 한 가지 일에 몰두하진 않았지만, 잡지사와 대학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오늘날 유인경 편집장의 자산이 되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재학시절 학교 카페에서 디제이도 해 봤고, 연극과 학교 방송국 활동에도 참여했다. 잡지 기자직 후 결혼과 함께 시작한 전업주부 생활도 하나의 좋은 경험으로 삼는다. 후에 모두 기사거리가 됐기 때문.

전업주부와 병행했던 육아관련 프리랜서 기자 경력을 바탕으로 90년 초 경향신문에서 정식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향신문에는 여자 취재기자가 단 두 명, 그녀는 고요한 우물에 던져진 돌이었다. 유인경 편집장은 당시 자신의 상태가 안 좋았다며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핑크 아이섀도우에 커다란 귀걸이까지 하고 서로 간섭도 잘 안하는 기자들 사이에 앉아서 딸 이야기며 어젯밤 드라마 이야기를 했어요. 아저씨들이 거의 경악하더라고요.(웃음)”

유인경 Style

2004년 뉴스메이커로 옮긴 이후로도 유인경 편집장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처음엔 여자 편집장과 일해 본 적이 없는 기자들과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잡지사는 보다 의욕적이고 활기찬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보고를 하는듯한 엄숙한 분위기의 기획회의는 깨버렸다. 뉴스메이커부 신년회 행사로는 영화를 관람했다. 어린이날을 맞아서는 기자들의 자녀를 위해 상품권 등의 선물도 마련했다.

온스타일에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능력 있는 여성에게 기대어 사는 남성들인 Pet족에 대한 기획안을 커버로 올렸다. 재미있어졌다는 독자들도 있었고 편집장이 여자니까 이런 기획이 나온다며 시사지인지 화제지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딱딱한 기획들은 신문에서 충분히 볼 수 있잖아요. 잡지에서는 신문에서 못 싣는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뉴스메이커를 여성 친화적 매체로 만들겠다는 그녀의 포부도 이와 같은 생각에서 나온다. “생활/문화 기획들을 늘린다는 게 아니라 여성의 시각이라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담는다는 거에요.” 장모가 가족 내에서 육아와 주택자금 등을 해결한다는 ‘장모시대’ 기사나 남장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의 시각이었기에 가능했다. “여성들이 시사에 관심이 없다는 건 큰 오해라고 생각해요. 여자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써서 여성 독자들에게도 다가가겠다는 거죠.”

100점 인생을 위한 Attitude

기자와 편집장을 하면서 여자로서 힘든 점이 없냐고 물었다. “제가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여자로서 힘들었어요.” 아이나 남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여자가 집에 안 붙어 있으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들은 견디기 어려웠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프리랜서로 그나마 편하게 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자녀 뒷바라지를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마감과 야근을 피할 수 없으니 힘들다. 그래도 유인경 편집장의 긍정적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늘어나는 직장여성들을 위한 사회변화도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해요. 보육, 탁아시설도 많아질 거고, 미디어 직업 환경도 바뀌지 않을까요?”

기자 초년에는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자신도 수습하지 못했다는 유인경 편집장.  세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것을 독자들과 함께 풀어간다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단다. “A는 1점, B는 2점, C는 3점, 이런 식으로 알파벳에 점수를 매겨서 인생을 100점으로 만들어주는 단어를 찾아보세요. Love도, money도 100점은 안된답니다. Attitude가 바로 인생을 100점으로 만들어주는 단어에요.” 무슨 일을 하던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딸도, 재벌의 딸도 모두 일을 하는 세상에서 여성들의 선택 폭은 넓어졌지만 그만큼 고민과 스트레스도 늘어났다. “해결법은 역시 내가 ‘어떤 태도를 갖느냐’죠.” 따라갈 수 없는 긍정적 태도와 솔직한 수다를 즐기는 유인경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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