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축제 때마다 우리에게 멋진 춤을 선사해 주던 친구가 한명 있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에쵸티, 보아 춤을 비롯해 어떤 춤이든 다 소화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열렬히 환호했고 무대가 마련되기만 하면 그녀의 춤을 보고 싶어 했다. 무대 위에 선 그녀는 청바지에 흰 티만 입고도 빛이 났다. 그렇게 그녀는 멋진 동창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대학생이 되었다. 입시 때문에 바빠서 연락을 못했던 중학교 친구들을 이제 하나 둘씩 만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걔, 요즘 가수 데뷔한다고 난리던데? 대학만 잘 들어가면 소속사에서 데뷔시켜 준다고 했나봐”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별로 친했던 친구는 아니었지만 어릴 적 동창이 멋진 가수가 된다는 생각에 흥분됐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앨범도 나오기 전에 인터넷 검색순위 1위가 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만큼 유명해지고 있었다. 그 친구는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수수한 모습에 현란한 춤 솜씨가 유난히 빛났던 그녀.... 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가수 데뷔하려면 얼굴부터 고쳐야 된다고 했나봐. 소문에 얼굴이 엄청 달라졌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 친구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얼굴....... 하긴, 연예인이 보통 일이겠어? 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했을까? 그녀를 바꿔놓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외모가 최고의 경쟁력이야. 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나도 빛을 못 보고 사라지는 가수들이 얼마나 많다고! 너희가 이 바닥을 알아?!” 그래, 그들 덕분에 춤 솜씨도 많이 늘었고 가창력도 좋아졌겠지. 변한 외모에 그녀 자신도 만족하고 있을지 모른다. 곧 그녀는 멋진 무대 위에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인형같이 예쁜 얼굴을 하고 멋진 춤을 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수수하지만 순수한 열정만으로도 반짝이던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 거 같아 안타깝다.

변해버린 나의 중학교 동창처럼 우리도 변했다. 그 흔한 쌍꺼풀 수술과 멋진 옷차림으로 우리의 겉모습은 화려해졌고 성숙해졌다. 순수함은 없어졌어도 좀더 ‘professional’ 해졌다고 자부한다. 촌스러웠던 시절, 높고 다양했던 우리의 꿈도 사라진지 오래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이제는 의사를 부러워하고,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는 당연한 듯이 말한다. “그 땐 너무 철이 없었지”

우리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남들이 다 한다는 경제, 경영 전공은 필수에다가 똑같은 어학연수코스를 밟는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하다면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뒤떨어진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간다. 이렇게 우리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덧 50대 중년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말을 내뱉겠지.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높고 야심찬 꿈을 가슴 속에 안고 어른이 되기만을 바랐던 우리들의 학창시절. 그 때 우리가 꿈꾸었던 것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자. 50대 직장인들이 내뱉는 말을 훗날의 내 것으로 만들지 말자. 사회가 그랬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 말자. 인생은 한 번 뿐이고 그 속에 주인공은 나다.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똑같은 춤을 추는 인형이 되기엔 우리의 열정과 재능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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