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부수공사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ABC요? 미국방송 아닌가요?”

신문과 잡지의 발행부수를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s System)협회에서 직접 조사하여 공개하는 발행부수공사제도(일명 ABC제도)가 오는 5월 31일이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지 17년이 된다. 그러나 김은지(19, 대학생)씨는 ‘ABC제도’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 본다며 궁금해한다.

발행부수공사제도는 1914년, 발행되는 매체의 객관적인 양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광고주에게는 매체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발행사에게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한 자료를 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23번째, 아시아에서 5번째로  ABC제도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2003년에서 멈춘 발행부수공사제도

ABC 협회가 발행부수를 조사하는 기준은 크게 3가지다. 윤전기에서 찍어내는 신문 전부를 포함하는 발행부수, 회사에 비치하는 신문 등을 제외하고 가정과 가판에 보내는 발송부수, 발송부수 중 독자들이 직접 돈을 내고 사보는 판매 유료부수가 그것이다. 이 기준을 적용해 ABC 협회는 발행사가 보고한 자료를 토대로 만드는 ‘발행사 보고서’와 ABC 협회가 그 보고서를 토대로 실제 조사 후 발표하는 ‘공사 보고서’  이 두 가지를 해마다 발표한다.

그러나 신문부수 공사 보고서는 2003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다. 심지어 2003년의 공사보고서의 중앙일간지는 중앙일보뿐이었다. 이에 대해 홍석윤 한국 ABC 협회 조사홍보팀 부국장은 2003년의 발행사 보고서에 갑자기 11만부가 늘어난 중앙일보의 발행부수 때문이라 말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신뢰할 수 없으니 공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저희는 중앙일보가 낸 증거가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공사를 시행한다면 진짜 부수는 알 수 있고요.” 2004년에는 중앙일보마저 발행사 보고서를 위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신문에 대한 공사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발행부수, 광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한국 ABC 협회는 1989년 창립 당시 한국방송광고공사에게서 6년 동안 지원금을 받아 활동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것은 신문사들이 ABC협회의 공사를 거부하는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신문의 발행부수는 그 매체의 영향력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광고 수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단체가 발행부수를 조사한다는 것은 언론에 대한 재정적 탄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그 이유였다.

우리나라에서 발행부수공사제도를 조선일보가 가장 먼저 실시한 것도 발행부수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의 발행부수가 밝혀져도 신문에 실을 광고의 단가 변동이 적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현재 ABC협회와 신문사간의 ‘발행부수’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이재경 교수는 “신문사들은 윤전기에서 찍어내는 신문을 뜻하는 ‘발행부수’를, ABC협회나 시민단체에서는 ‘판매 유료부수’를 발행부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사가 ‘발행부수’를 실제 발행부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더 많은 신문을 발행부수로 인정받아 광고의 단가를 높이기 위해서다.

강제성 없는 제도, 해결책은 신문사의 자발적 참여

세계의 모든 ABC 협회는 발행사와 광고주, 광고회사로 구성된다. 한국 ABC 협회 역시 발행사를 비롯하여 총 175개 회원으로 구성되어있다. 협회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6년 동안 지원한 공익자금 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회비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공사보고서를 제공받는 광고주와 광고회사는 물론이거니와 공사를 직접 받는 발행사의 경우도 회비를 내야한다. 매체의 영향력에 따라 다르지만 조선, 중앙, 동아의 경우 연간 천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내고 있다. 홍석윤씨는 “그냥 공사를 받으라고 해도 신문사들이 참여를 잘 안 할 텐데 돈까지 내라고 하니 더 시행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발행부수공사제도는 발행사 보고서를 토대로 ABC 협회가 각 신문사마다 지국 30개를 임의로 정해서 공사에 들어간다. 홍석윤씨는 “보고서를 내고 공사를 받겠다고 결정한 신문사의 지국들은 대체로 협조를 잘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신문사가 공사를 받는 것 자체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이재경 교수는 “미국의 신문사들은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어 부수를 속일 경우 주가가 떨어진다”라며 발행부수공사제도에 대한 우회적인 강제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신문사는 소유주가 대부분의 주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 발행부수공사제도 문제는 신문사의 자발적 참여가 해결책인 것이다.

올바른 언론을 위한 디딤돌

현재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규모는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이 부풀려져있다. 이 때문에 신문의 광고는 단가가 높고, 이것은 진실과 정도를 추구해야 하는 신문이 자본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발행부수의 정확한 측정을 통한 투명한 시장형성을 통해 언론이 제 위치를 찾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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