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비자 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 인터뷰

작년 12월, 건양대 병원에서는 환자 2명의 차트가 서로 바뀐 채 수술이 진행돼, 위암 환자와 갑상선 환자의 멀쩡한 장기가 절제되는 황당한 사고가 일어났다. 단 한명만이라도 환자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다. 의료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위가 절제된 갑상선 환자는 평생 소식을 해야 하고, 갑상선이 제거된 위암환자는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오히려 목숨을 잃거나 병이 악화되는 의료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남의 일이려니’하고 지나치지만, 직접 사고를 당한 피해자와 가족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는 의료사고 발생시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의료소비자의 권리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의료사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의 강태언 사무총장(42)을 만나 의료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의료사고, 그 사각지대

▲ '의료소비자 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
“의료사고 시장은 굉장히 척박합니다.” 강태언씨가 가장 먼저 건넨 말이다. 일반 사람들은 의료사고를 교통사고와 비슷한 개념으로 인식하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의료사고는 그 특성이 교통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법적인 제도에 의해 보상체제가 이루어지는 교통사고와 달리 의료사고는 가장 기본적인 통계조차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사고인지 아닌지의 기준 자체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자의적인 잣대가 개입될 가능성이 크죠. 또, 공급자인 병원이 사고라는 용어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고가 발생하면, 병원은 사고 자체를 무마하려고 한단다. 정부 역시 이와 관련된 체계적인 제도를 형성하는데 강력한 의지가 없다. 실제로, 의료사고는 내부적으로 굉장히 심각하게 문제시 되고 있다고 한다. “의료사고가 교통사고 보다 4~5배 정도 더 높게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는

‘의료소비자 시민연대’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뭉쳐서 만든 단체다. 피해자 100여명이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모였던 것이 그 시작이다. 약 3년 정도의 준비단계를 거쳐, 2001년도에 ‘의료사고 시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 전에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한 단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외형적으로는 시민단체여도, 영리를 취하는데 급급한 경우가 많았어요. 오히려 그런 단체들 때문에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작년 4월 ‘의료소비자 시민연대’로의 개명을 거쳐, 올해로 6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에서는 하루 기본적인 상담 건수만 20여건이 넘는다. 각각의 상담이 30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활동이 빠듯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의료사고는 워낙 전문적인 분야여서 일반 사람인 피해자들만의 힘으로는 확실하고 신속한 문제 해결이 어렵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는 상담을 포함해 의료사고, 분쟁, 소송, 진료기록 분석 등의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강태언씨는 “의료사고 피해를 입었을 때, 진료기록을 신속히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긴다. 피해자는 정당하게 그 기록의 열람을 요구할 수 있다. “그동안 병원이 기록을 누락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2000년부터 의료법에 의해, 환자들이 어느 때나 기록 열람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료사고에 대한 원인은 진료기록 안에 존재한다. 다만, 병원관계자들이 그 기록을 작성하고, 피해자들은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의 사실관계가 왜곡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진료기록을 입수한 후에는, 객관적인 정밀 판독의 과정을 거친다. 피해자들의 의문점을 지적해주고, 확률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요소가 발생했다면 그 부분은 왜 의료사고라고 판단할 수 없는지 등의 상담을 한다. 병원에서 합의를 요구해오면, 피해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측면으로 조정을 하기도 한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의 주요한 활동 중 또 하나는 의료 서비스 부분이다. 미미한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제정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와 관련된 ‘의료분쟁 조정법’은 1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강태언씨는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이 법이 실제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의사, 의료계를 위한 법이었습니다. 의료계의 영향력을 유지시키는 데 오히려 도움을 주는 내용이었어요.”

이를 보완하고자 작년에 8개의 시민단체들과 뜻을 같이해서 ‘입증책임전환’이라는 조정을 이 법안에 포함시켰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의료인에게 입증의 책임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의료진은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증명해 의료사고의 책임소재를 가져야 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의료계의 과실로 평가되어 피해자들의 보상은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4월, 국회에 상정되었다. “지금까지는 공급자 중심의 의료법으로 논의되었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정당하게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법명도 ‘의료사고피해구제관련법’으로 변경해서, 피해구제 측면을 강화시켰습니다.” 아직 법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4~5년간의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는 앞으로 피해자의 목소리가 묻히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공허한 메아리를 벗어나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고 있는 강태언씨. 사실 강태언씨도 의료사고로 가족들을 잃은 피해자 중 한명이다. 그는 대형 병원을 상대로 6년 동안 소송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가족의 사고 원인을 밝히자는 목적으로 이곳에 뛰어들었습니다. 소송을 거치면서,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위한 올바른 제도나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결국, 그는 소송에서 승리를 하고 보상을 받았다. 후에,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소송을 할 때 강태언씨의 판결문을 제출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의료사고에 관련된 소송은 평균 29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길게는 10년 이상 가기도 한다. 소송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고, 대중들의 관심도 적기에 그들의 싸움은 더욱 어렵다. 의사가 사건을 감정하기 때문에 그 입장을 따라서, 협조적이지 않거나 객관적이지 못한 경우도 많다. “4개의 병원에 감정을 의뢰했는데, 모두 거부 당한적도 있어요. 2년 동안 감정 결과만 기다리는 피해자도 있을 정도에요.” 어려움 끝에 소송에서 이겼을 때 그는 피해자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기뻐한다. 그 고통의 세월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사고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에서는 크고 작은 의료사고가 50만 건 이상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강태언씨는 묻혀 있던 이 문제를 사회 전체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민, 정부, 의료계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정부에서 제대로 된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병원은 무엇보다도 생명이 존중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더 이상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와 ‘의료소비자 시민연대’는 오늘도 의료사고 피해자들과 함께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