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를 괴롭히던 악질 선도 부장은 어느새 브라운관의 멋진 검사로 자리 잡았다. 그는 드라마 <그린로즈>, <안녕하세요, 하느님>에 이어 <Dr. 깽>까지 안방극장을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4월 22일부터 시작한 ‘프라하의 영혼이 울리는 사랑의 뮤지컬 <드라큘라>’에선 뱀파이어로 변신해 노래도 부른다.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는 배우, 이종혁씨(33)를 만나봤다.

다양한 장르 속 다양한 얼굴

사람들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선도 부장 종훈, 드라마 <그린로즈>의 신현태라고 하면 “아~ 그 사람!” 하며 단번에 이종혁씨를 기억해낸다. 그가 맡았던 ‘악역’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연이은 악역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악역도 모든 면에서 독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느 면에선 마음이 여린 사람도 있다”며 캐릭터는 천차만별이기에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걱정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sidus HQ
‘진짜 같은 나쁜 놈’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종혁씨는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신반장,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의 의사 박동재를 거쳐 <Dr. 깽>의 석희정 검사라는 ‘호감형’ 캐릭터로 열연 중이다. 그는 이때까지 맡은 배역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로 냉정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에 상처가 많은 박동재를 꼽는다.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굉장히 좋은 작품이었어요. 시청률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좀 아쉬웠죠”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 드라마의 OST에서 이문세의 ‘애수’를 불러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은 <Dr. 깽>의 석희정이란다. 그가 이 역할을 통해 그동안의 차가운 이미지에서 귀여운 모습으로 변신하자 시청자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나마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거죠. 정문고 선도 부장이나 <그린로즈>의 신현태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이종혁씨는 드라마 안에서의 역할 변화뿐만 아니라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종횡무진하고 있다. 분야마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뮤지컬은 대극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묘미가 있어요. 드라마는 순간순간 이어지는 연기의 맛이 있고, 영화는 필름으로 남는다는 게 좋죠.” 영화나 연극, 뮤지컬은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돼있어 작품 파악이 편하다고 한다. 반면에 드라마는 대본이 몇 회씩 나오므로 감독과 그때그때 촬영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즉각적인 반응도 알 수 있어서 좋단다. 그는 가수가 한 장르만 고집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자도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반찬도 김치만 먹는 건 아니잖아요?”하고 넌지시 농담을 던진다.

무대로 돌아오다

사진제공: sidus HQ
브라운관에서는 신인이지만 이종혁씨는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관록 있는 배우다. 그의 고향은 바로 무대. 지난 98년 뮤지컬 <서푼 짜리 오페라>로 데뷔했고 뮤지컬 <오! 해피데이>, 연극 <19 그리고 80> 등으로 대학로에선 잘 알려진 배우였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드라큘라>로 무대에 돌아왔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신의 저주로 죽을 수 없는 운명을 가진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한다. “2000년 공연(신성우 출연)을 보고 매력을 느끼던 차에 섭외가 들어왔어요. 드라마와 영화를 하게 되면서 무대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기뻤죠.” 다른 뱀파이어인 신성우, 신성록씨와는 공연을 준비하며 친해졌다. 그들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다들 정말 잘 하죠. 각자의 연기 스타일이 있으니 관객 쪽에서 세 편 다 보고 평가 해주시는 게 좋겠어요”라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오랜만에 뮤지컬을 하게 돼서 긴장도 되지만 대학로 시절부터 그를 좋아했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다. 그는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노래도 쉽지 않았지만 절규하고 오열하는 장면이 많아 더 힘들었다고. 드라큘라 OST도 열심히 듣고 있다.

배우 속 ‘인간’ 이종혁

날카로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는 매니저와 온라인 축구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빅마마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소탈한 남자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땐 스텝이나 다른 연기자와 친해지기 위해 그가 먼저 마음의 벽을 허무는 편이다. “가만히 있으면 남들이 저한테 말을 먼저 못 걸더라고요. 제가 먼저 친한 척하고 그래요.”

사진제공: sidus HQ
연기활동을 반대했던 집안의 어른들도 그의 성과가 조금씩 보이자 성원을 해 주셨다. “대신  평소엔 잘 나가지 않았던 집안잔치, 동창회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며 웃었다. 어떤 배우를 롤 모델 삼아 연기하겠다는 식의 거창한 포부는 없다. 배우로서 잘 할 수 있는 것(연기)을 하고 있다는 게 그저 좋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동료배우는 <Dr. 깽>에서 함께 하고 있는 양동근. “동근이가 연기를 참 잘해요.” 양동근이 자신보다 훨씬 먼저 연기를 했기 때문에 선배란다. 연기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연기 잘 한다”, “진짜 같다!” 라는 말을 들을 때다. 그는 관객이나 시청자에겐 안 보이면 궁금해지는 배우, 스텝과 동료배우들에겐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를 그리워해주고 좋아해주면 감사한 일이죠.”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이종혁씨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느껴졌다. 그는 얼마 전 객석에서 공연을 보며 “저 자리는 내 자린데......”라고 아쉬워했단다. “배우여야만 무대에 설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이종혁씨는 천생(天生)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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