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김 모씨(40)는 2005년 6월 성형외과 전문의에게 7년 전 가슴에 넣었던 실리콘 제거 수술 및 유방 재성형 수술을 받았으나 가슴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유두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배에는 유방 지방이식을 위해 절개한 약 50cm의 흉터가 끔찍하게 남아있다. 김 씨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원형탈모증까지 겪고 있으며, 부작용 때문에 결혼을 앞둔 약혼자와도 이별해야했다.

수많은 의료사고 중 하나다. 피해 환자들은 현재 법안이 마련돼 있지 않아 마땅히 호소할 곳이 없다. 지난달 13일,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는 종로2가 YMCA 건물 앞에서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 제정을 위해 캠페인을 벌였다. 지난해 12월 2일 이 법 제정을 위한 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새로운 이름,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의료사고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제정은 1988년,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린우리당 이기우의원의 입법제안과 시민연대의 활동으로 ‘의료분쟁조정법’에서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로 다시 태어났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분쟁조정’ 이라는 부정적인 표현보다 의료사고를 예방하는 기능을 우선으로 하는 ‘피해구제 제도’라는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사례 2> B산부인과 의사 김모씨는 27세의 초산모의 자연분만을 유도, 3.65kg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이가 돌연사했다. 부검결과 의사의 과오는 없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도의적 책임을 물어 1천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였음에도 5차례나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가야했다. 그 후에도 보호자들은 2억원을 요구하며 병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악의적 소문을 내는 등 더 이상의 진료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씨는 병원을 접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과오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위로금까지 지급했으나 의사는 계속 피해를 입고 있다. 

의사들의 피해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는 한해에 얼마나 발생할까.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의료사고 발생건수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자료가 없기 때문인데 소비자 보호원에 접수된 의료사고 관련 상담을 살펴보면 2004년 한 해 동안에만 10,387건이었다. 그러나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소송으로 진행되는 사례는 전체 건수의 6~7% 뿐이다. 소송비용 부담이 커 의사 측의 합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도 현재 의료수준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의료사고에 대한 미비한 법률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 (사례 2 참고) 의사와 환자 모두를 위해 의료사고에 대한 제도가 필요한 실정이다.

관련부처의 반대 입장

염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법안의 쟁점사항에 대해 관련부처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우선 법무부에서는 이 법안 중 ‘의료인의 가벼운 과실에 대해 피해자의 동의 아래 형사상 처벌을 면제 한다’는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피해자의 동의를 받는 조건을 악용하여 형사상처벌을 피하려는 의료인이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또 기획 예산처에서는 무과실보상제도의 도입과 그 재원을 국가가 담당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의료사고를 해결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기본 의견을 함께하는 이의원과 시민연대도 세부적인 몇몇 사항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인다. 시민연대 측에선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도입과 관련해 밝혀내기 어려운 사례를 무과실로 몰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위원회 설립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실제로 전문성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걱정을 표한다.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한 법안

현재 민법 750조에 따르면 손해배상 청구 시 가해자의 고의와 과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한다. 그러나 환자는 의료행위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이 부족하고, 치료의 과정은 주로 의사만이 알 수 있다. 새로운 법안에서는 2003년 ‘의사가 입증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입증 책임을 의사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자가 아닌 의료인이 과실이 아님을 입증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법은 단순히 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의료사고는 의료인의 과실이 없어도 발생할 수 있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도 존재한다. 이 법안에는 의료인의 무과실이 입증되고 현대 의학수준으로는 의료기술의 한계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 3천만 원을 한도로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가가 보상의 주체가 되어 기금을 마련해야한다고 덧붙여 나와 있다. 기금의 규모는 예산범위 내에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의미 있는 법률로 태어나길

법안의 핵심은 ‘실효성 있는 조정제도’ 다. 국민은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의료인에게는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조정절차가 이루어지면 터무니없이 높아진 배상액이 조정되고 불필요한 소송비용이 감소하여 결과적으로 의료분쟁해결비용이 감소할 수 있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위원회까지 함께 한다면 이 법률은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의료사고는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자신과 가족의 일이 될 수 있는 문제다. 명확한 법안을 마련해 하루빨리 분쟁 해결이 이뤄지고 그들의 고통도 없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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