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도망친 여배우, 그리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남자. 짧은 시간동안 그들은 불꽃같은 사랑을 하지만 그녀는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야만 한다. 홀로 남겨진 남자는 그녀의 향기를 잊지 못한다. 이는 영화 ‘물랑루즈’의 감독 바즈 루어만이 배우 니콜 키드먼과 함께 만든 Channel No.5의 광고 내용이다. 바로 ‘애드무비’라 불리는 광고이다.

50년간 우리나라의 방송 광고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캠페인 식의 시리즈 광고에서부터 회사명과 상품명을 알리지 않은 채 광고하는 티저광고를 비롯, 설명보다는 이미지 중심의 키치광고(Kitsch advertisement)등 수 많은 형식의 광고가 생겨났다. 최근에는 ‘애드무비’와 ‘멀티스폿광고’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다.

단편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을 일으키다

‘애드무비’란 광고의 애드(Ad)와 무비(Movie)가 합쳐진 신조어이다. 애드무비는 기존의 15~30초짜리의 광고와는 달리 긴 러닝 타임과 뛰어난 영상미, 탄탄한 스토리까지 갖춘 말 그대로 영화 같은 광고이다.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경찰에게 쫓기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태평양 화장품의 HERA광고도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제품의 특징을 짧은 시간에 보여주기 힘든 자동차 업계는 애드무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BMW는 이미 2001년부터 ‘THE HIRE’라는 제목 아래 존 프랑켄하이머, 왕가위, 가이리치, 오우삼 등의 감독이 애드무비를 만든바 있으며 아우디, 마쓰다 등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애드무비 형식으로 광고하고 있다.

영화감독 박광현과 배우 김주혁, 사라 팝이 주연하여 세간의 이목을 끈 기아자동차의 로체(Lotze)광고 역시 애드무비이다. 기억을 잃은 L(김주혁 분)이 우연히 차고에 세워져있던 로체를 발견한 후 차를 몰고 바깥으로 나온다. 그때 정장을 입은 사내들에게 쫓기던 한 여인(사라 팝 분)이 L의 앞에 나타나는데, L과 이 여인은 서로 알던 사이. L은 쫓기는 여자를 차에 태우고 전속력으로 도로를 질주한다. 기아자동차의 커뮤니케이션 팀장 신동우씨는 “통상적인 TV광고에서는 제품의 장점을 다 담을 수가 없기에 애드무비라는 영화 형식을 빌려 표현했다”고 말한다. 로체 측의 전략은 일단 수십 초짜리의 편집된 영상을 TV광고로 내 보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후,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된 소비자들이 직접 인터넷을 통해 10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TV광고에서 15초 동안 보여준 내용은 L이 추격자들을 피해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로체 온라인 상영관에는 ‘도대체 왜 도로 한 복판을 그리 숨가쁘게 질주하는지’ 알고 싶어하는 네티즌들이 하루 평균 3만 2천명, 31일 동안 100만 명 이상 방문하여 애드무비 완결편을 관람했다.

동일한 상품, 여러 가지 표현

같은 광고를 하루에도 몇 번씩, 또 몇 달씩 봐야하는 시청자들은 광고가 친숙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다. ‘멀티스폿광고(Multi-spot advertisement)’는 하나의 제품이 하나의 광고만 선보여야 한다는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버렸다. 대신 동일한 상품에 대해 다양한 소재의 광고를 한꺼번에 내보낸다. 비슷한 줄거리에 모델만 바꿔서 여러 편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그동안의 시리즈 광고*와는 다르다.

 ‘폐인 미장원편’, ‘포장마차편’ 등 여러 편의 광고를 내보낸 삼양라면이나, 삼성전자의 DVD콤보 레코더 광고, 삼성생명 광고 등이 그 예다. 지난 2005년 7월 광고되었던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의 광고 또한 대표적인 멀티스폿광고이다. 최명길, 김상경 등 국내 배우 6명이 각각 출연한 6개의 광고가 동시에 공중파를 탄 것.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고추장이 필요할 때’를 느끼는 순간을 포착하여 재미있게 표현했다. 해찬들 광고를 본 김혜지(20, 학생)씨는 “다른 내용의 새로운 광고를 볼 때마다 ‘이번엔 어떤 내용일까’하고 기대를 하게 되요”라면서 광고 내용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 SK텔레콤의 현대생활백서 광고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이혜갑 교수는 멀티스폿광고에 대해 “시청자들의 지루함을 덜고,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기업 혹은 제품의 이미지를 훨씬 쉽게 인지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제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타깃 층에 맞추어 전달할 수 있다. 식사를 마친 후, 핸드폰 액정으로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제거하고, 저장된 전화번호는 많은데 전화 할 사람은 없다는 등 핸드폰과 관련된 현대인의 생활모습을 그린 SK텔레콤의 ‘현대생활백서’광고. 유지연씨(23, 학생)는 이 광고를 보면서 “내 얘기 같은 게 정말 많았다”고 말한다. 멀티스폿광고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성공적인 광고는 제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도 창의적이어야 한다. 이젠 광고의 ‘내용’뿐 아니라, 그 전달방식에서도 남들과 달라야한다. 질 높은 영상과,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어 광고의 질(Quality)을 한층 더 높인 애드무비. 광고를 1:1이 아닌, 1:다수의 방식으로 여러 편(Quantity)의 광고를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멀티스폿광고. 앞으로는 광고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여 시청자들을 사로잡게 될지 기대해본다.

 


*시리즈 광고 :하나의 테마를 연속적으로 광고하는 것. 동시에 여러 편을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광고가 끝나면 같은 테마로 또 다른 광고를 내보내는 방식이다. 여러 회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며, 몇 년에 걸쳐 광고되는 경우도 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