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영화계의 흥행 코드는 ‘게이’다. 현재 한국 영화 ‘왕의 남자’에 이어 미국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일본영화 ‘메종 드 히미코’에 이르기까지 3편의 다국적 ‘게이’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군대 동성애 문제가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동성애, 새로운 트렌드

‘게이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운 ‘왕의 남자’는 지난 3월11일 전국관객 1200만을 돌파했다. 이로서 기존 최고 흥행기록이었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1174만을 훌쩍 넘었다. ‘왕의 남자’의 인기 상승은 ‘이준기’라는 신예 스타를 만들었다. ‘왕의 남자’가 개봉되기 전에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이준기는 현재 국내 유명 CF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그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저예산 영화였던 일본영화 ‘메종 드 히미코’는 현재 10주째 상영을 계속하며 8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한국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의 뜻밖의 선전도 놀랍다. ‘왕의 남자’나 ‘메종 드 히미코’의 경우와는 다르게 ‘브로크백 마운틴’은 잭과 애니스, 두 주인공 성관계 장면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다. 국내 정서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보다는 공감한다는 쪽에 지지를 보냈다.

예전부터 ‘게이 영화’가 쉽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10년 전인 1996년,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는 한국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당시 ‘해피투게더’는 제50회 깐느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였다. 하지만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이 영화가 동성애를 다루고 있어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입 불가 판정을 내렸다. 영화는 1년의 심의유예 기간을 지난 후에야 상영할 수 있었고 흥행 성적도 좋지 못했다.

현실과 판타지의 괴리

영화계의 변화를 볼 때 불과 10년 사이에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왕의 남자’가 역대 기록을 경신하며 ‘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키던 지난 2월, 다시 군대 동성애 문제가 불거졌다. 동성애자였던 A씨는 8개월 간 군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지난 2월8일 자살 직전 동성애자인권연대를 통해 자신의 군 생활을 알렸다. 군대 내 A씨의 상관은 A씨가 커밍아웃한 이후 끊임없이 ‘실제 성관계 사진을 제출해서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라’는 등의 인권 침해성 요구를 했다. 선임병 들은 “임신했냐? 오빠라고 부르라“며 심한 희롱을 일삼았다. 현실에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게이 영화’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는 현상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 중 하나는 현재 상영되는 ‘게이 영화’들이 동성애가 아닌 다른 주제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대학생 박계형(21)씨는 “왕의 남자를 게이 로맨스로 해석하지 않았다. 장생과 공길의 관계는 연인 사이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왕의 남자’가 개봉된 직후 남자 주인공들의 관계가 사랑이나 단순 우정이냐를 두고 네티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브로크백 마운틴’ 역시 두 남자 간의 사랑보다 다른 차원의 해석이 많았다. 두 주인공은 분명 동성애자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를 가부장제에서 자신의 꿈을 버려야 하는 현실에 초점을 맞춘 해석도 많았다.

또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동성애자’ 보다는 ‘예쁜 남자’를 봤다. 영화 ‘왕의 남자’가 개봉된 후 단연 가장 큰 화제 거리는 주인공 이준기의 외모였다. 대학생 고진석(22)씨는 “대부분 남자 친구들은 이준기를 남자가 아닌 예쁜 여자에 가깝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두규(22)씨는 “영화 때문에 현실에 분명히 존재 할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 동성애자들을 상상하기 힘들고 강한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매스미디어 학의 ‘배양효과이론’에 따르면 영화나 TV등의 매체를 많이 접하는 사람들은 현실의 사실보다 TV속의 사실을 현실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커밍아웃이 죄악시 되는 한국 사회에서 일상생활에 실제 동성애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사람들아 접하는 것은 매체 속에 가공된 판타지 동성애이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 인권이 공론화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비교적 짧은 시기에 문제점이 드러난 편에 속한다. 영화 속 동성애자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과거에 비해, 현재의 사람들은 훨씬 관대하게 동성애 영화를 즐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의 차별은 여전하다. 이제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거리를 좁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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