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음주운전을 많이 했어요.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도 아무 탈 없이 차를 몰았던 적도 꽤 있었죠. 음주 단속에 걸린 건 2년 전이었는데, 면허 정지감 이었요. 그런데도 겨우 맥주 두 병 마시고 걸린 게 억울해 항의하다가 면허 취소를 당했지 모에요." 그런 후에도 그녀는 여동생 면허증을 가지고 운전을 했고, 동생 면허증으로 딱지를 떼기도 했다. 30대가 되고서야 배짱도 두둑해지고 소설가로서 원하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이제는 제법 대담해진 늦깎이 소설가, 은희경을 이메일로 만났다.

 

"하아 너무 웃긴다. 내가 농담을 한다는 거.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지?"

두번째 창작집 [행복한 여자를 시계를 보지 않는다]에 수록된 자전적 단편인 '서정시대'에서 작가 은희경(41)은 그렇게 말했었다. 30대 전문직 독신 여성, 삶에 대한 냉소적 자세, 자유분방한 연애관이 그녀 소설 주인공들의 공통적 특징인데 반해, 그녀는 1남 2녀의 맏딸로 지금까지 모범답안지처럼 평탄하고 고지식하게만 살아왔다고 한다. 그녀의 삶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진지했었다. 소극적 틀을 벗어날 엄두도 못 냈었기 때문에 욕망과 욕구를 제한 받았던 성장기. 그래서 지금 그녀는 소설이라는 거짓 공간 속에서 연애도 맘껏 하고 나쁜 짓도 실컷 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벤트 회사, 출판사, 기획회사, 교사, 여성지 기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그녀가 마지막에 선택한 것이 소설가다.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서 시작된 작가로의 꿈이었지만 대학시절엔 그다지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무엇가에 미쳐 본 적이 없는 20대를 살았아요. 남들에 휩쓸려 그저 조심스럽게 살았는데, 서른이 되면서 비로소 내 인생을 살기 시작한 듯 싶어요."

30대, 그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을 때 남편은 그녀 옆에서 그 변화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그녀 인생에 있어 부모님에 대한 '첫 반발'이었던 남편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조심스럽고 안으로 수그러들기 좋아하던 그녀는 변하기 시작했다. 연세대 국문과를 나온 그녀의 남편은 1학년 때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했고, 그 뒤 여성지 '여원'에서 일했다. 은희경이 남편을 만난 것은 그녀의 연세대 대학원 재학 시절,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늦은 복학을 했을 때였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한마디로 자유인, 괴짜 혹은 바람 같은 남자였다. 

"우리 남편은 술꾼이에요. 술과 친구를 너무 좋아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이죠. 아이들은 잘 봐주지 않지만 대신 구속이나 참견도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런 남편과 함께 살면서 그녀는 인생을 많이 배웠다. 무난하기만 한 삶에 약간의 파격을 주어 다른 삶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결국 그 눈뜸은 그동안의 소설들 속에서 드러난다. 남편으로부터의 가장 큰 교훈은 그녀가 품고 있던 사랑에 대한 생각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환상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깨지는 것이 아닐까? 소설 속에서 우리는 놀라게 했던 사랑의 그 아이러니가 바로 남편과의 사랑으로부터 얻게된 나름대로의 진리다.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던 그녀는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겁내는 편이 아니다. 첫 작품집 [타인에게 말 걸기]에서는 문체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아끼지 않았다. 화자를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남자에서 여자로 바꿔도 보고, 인물의 상반된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만연체와 간결체를 번갈아 사용(연미와 유미)하거나 생경한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일부러 번역투 문장 (짐작과는 다른 일들)을 써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성격에 대해 '호기심'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직장은 직장운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주 옮긴 것이지만, 기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지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적극적입니다. 유행도 좋아하는 편이죠."

 중학교 3학년인 딸과 아래로 연년생인 아들을 가진 엄마 은희경은 어떨까? "딸아이가 메일을 보더니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이지를 묻는군요. 그래서 한마디 했습니다. 좋은 엄마 멋진 엄마라고. 솔직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편이고, 때로는 아이들보다 더 철 없이 굴기도 하지요. 잘못이 있으면 금방 사과하고요." 그녀의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의 표지 사진에서 느껴지는 단정함이 엄마의 자리에 서면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예전에는 시간이 나면 영화나 책을 보고, 즐기고 그랬는데 소설가가 된 이후에는 이런 것들이 순수한 취미가 아니라 조금은 소설을 쓰기 위한 공부가 되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을 자주 떠나려고 하죠. 여행을 하지 않고 한달 정도 지내면 숨이 막힐 것 같이 답답해 오거든요." 자유와 일상성의 탈피를 추구하는 은희경이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역마살'이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하는 다소 안정적이지 못하고 철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온 경험을 소설을 쓰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고지식하고 소심하게 살았던 20대가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대범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다고, 그래서 다시 20대가 된다고 해도 역시 살아온 대로 살 것이라고 말이다. "궤도에 붙박혀 있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벗어나고자 끊임 없이 상상을 하지만 결국은 그 상상력을 접고 궤도로 돌아오곤 하는 사람의 마음 속 억압을 모르는 법이거든요."

박은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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