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에서 주인공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1년간 어학연수를 떠난다. 그 곳에서 만난 유럽 각국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 그는 문화 차이와 유창하지 못한 스페인어에서 오는 오해들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영화를 본 후 나는 외국인 친구들과의 생활을 꿈꿨고 지난 12월 이곳 미국 서부의 워싱턴 주립대로 3개월 간의 단기 어학연수를 왔다. 

우리만의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를 꿈꾸다 

나와 함께 모두 15명의 학생들이 도착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17살 소년부터 독일에서 온 40대 아저씨까지. 성장 배경과 미국에 온 이유는 모두들 각양각색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2002년 월드컵을 함께 개최하는 것을 보고 같은 언어를 쓰는 줄 알았다던 콜롬비아인 마우리시오는 동양에 대해서 정말 무지했다. 역시 콜롬비아에서 온 하비에는 자신의 집에 있는 삼성 전자렌지가 한국 제품인 것도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그들이 스페인어를 쓴다는 것조차 몰랐으니 좀처럼 공통된 화제를 찾기란 힘들었다. 게다가 남미에서 온 친구들은 콩글리쉬 만큼이나 막강한 스팽글리쉬를 써대는 바람에 의사소통도 힘들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온 유카코라는 친구와 '욘사마'를 계기로 말문을 트게 됐다. 배용준을 좋아해서 그의 생일날 한국식당에 가 ‘욘사마’의 생일파티까지 열었다는 유카의 어머니 이야기부터 유카가 이상한 호스트 패밀리를 만나 고생한 얘기, 내가 씨애틀 공항에서 비행기를 잘못 타 캐나다에 다녀온 얘기까지 서로의 경험담을 털어놓을수록 어색함은 사라졌다.

문화적 차이(Cultural difference)보다는 개인의 차이

외국인 친구들과 지내는 동안 외모나 각자의 영어 억양에서 오는 낯설음에 익숙해져 갔다. 서로 간에 생기는 오해는 문화 차이에서라기 보단 유창하지 못한 영어를 잘못 이해했거나 각자의 성격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같은 헐리우드 영화나 팝송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나라가 영화 '오! 해피데이'에서 소주를 특이한 방법으로 마시는 게 인상깊었다는 대만인 주디와 베이는 '여인천하'부터 '이브의 모든것', '대장금'까지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고 한국 음악, 한국 영화에 익숙해 이야기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20살부터 25살 사이로 대부분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갓 졸업한 학생들인 우리는 고민이나 생각도 비슷했다.

일본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게이코는 영화 번역가가 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일본도 취업난이 심각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르코는 미국에서 대학진학을 하고 싶어하는데 장학금을 타지 못하면 코스타리카로 가야한다며 토플 공부에 열심이다. 터키에서 온 한 젊은 부부는 파트타임으로 영어공부를 하면서 미국으로 이민 올 준비를 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이 어학연수 후에 시각이 넓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나라 간의 다른 점만큼이나 서로 간의 공통점을 많이 발견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작은 우리나라 안에서 태백산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란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 사이에도 온갖 편견들이 난무하는 것처럼, 동해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자란 우리는 서로에 대한 무지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던 탓에 서로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오해가 생길 때는 서로의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고 때로는 성격 차이 때문이니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다시 헤어짐을 준비하면서

어느새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1주일 후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 가야한다는 것도, 한국에서 자동차를 만든다는 사실도 모르던 유카는 이제는 일본가수 초난강이 펴낸 한국어 공부책까지 사가며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다. 나 또한 이번 여름에 일본으로의 여행을 계획 중이다. 한국, 대만, 일본 아이들끼리 모여 함께 원빈에 열광한 것도,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야기를 하며 웃은 것도 모두 다 좋은 추억이 되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3개월간 이 곳에서 함께 지낸 우리는 각자 영어공부를 계속하거나 직업을 찾기 위해 또다시 세계의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처음으로 혼자 기숙사에서 생활해 본 것도, 동양인이 드문 미국 대학에서 생활해 본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무엇보다도 국경을 넘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은 잊지못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는 우리들. 10년 후에 다들 어떤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강혜원 기자<hn-sil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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