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수가 늘어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노동 환경 개선, 권리 보장과 같이 제도와 처우 개선이 먼저여야만 해요.”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

정부가 올해 이주노동자 16만 5000명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다 수준. E-9(고용허가제) 도입 인원을 늘리는 게 주요 골자다.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을 겪는 중소사업장이 외국인력을 고용하도록 정부가 허가하는 제도다. 2003년 국회를 통과하고 해마다 5만~6만 명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만성적 인력난으로 규모를 작년 12만 명, 올해 16만 5000명으로 확대했다. 허가 대상 업종도 다양해졌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주노동자 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수를 늘리려면 그만큼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축소하는 상황”이라며 “노동자 사이에선 고용허가제를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노조는 2005년 4월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로 출범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고용노동부에 이주노조 설립 신고가 반려됐다. 이후 10년의 법정 투쟁 끝에 2015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이주노동자 노조는 고용허가제 폐지에 초점을 두고 활동한다. 법부터 바뀌어야 처우 개선 등 노동자의 권리까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작년 11월 집회(출처=이주노동자 노동조합 홈페이지)
▲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작년 11월 집회(출처=이주노동자 노동조합 홈페이지)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는 최초 입국 후 3년, 그 후 1년 10개월 일할 수 있다. 4년 10개월간 사업장 변경 없이 근무하고 귀국하면 재입국 특례 고용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때 한국에서 4년 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다. 최장 9년 8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셈이다. 

사업장 변경 횟수와 사유는 법에 명시했다. 법정 사유에 해당하면 최초 3년간 3회, 재고용 1년 10개월간 2회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고용허가제가 사업주에게 모든 권리를 주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임금 체불, 폭행과 같은 문제 발생 시 노동자가 입증하고 사업장을 옮겨야 하는데, 한국어와 법체계에 서툴러 법적 절차를 밟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작년부터는 고용허가제에 지역 이동 제한이 추가됐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최초 입국한 지역 안에서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지역 이동 제한이 결정된 과정을 설명하며 “졸속 처리”라고 비난했다.

외국인근로자의 숙식비와 사업장 변경을 다루는 실무TF가 2022년 9월 노사와 전문가,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여섯 차례 진행됐다. 이때 고용노동부가 마지막 회의에 지역 제한 안을 제출했다.

노조가 반대했지만 TF는 종료됐다. 해당 안건은 추가 공론화 없이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통과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지역 이동 제한에 대해 “주거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라며 “국제노동기구(ILO) 강제노동 금지협약 29호(강제노동 협약)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는 “고용허가제가 지역의 중소 제조업체 경쟁력 유지에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진화해야 한다”며 “고용허가제의 탄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3년 이상 체류를 전제로 하는 제도의 범위를 넓혀 계절 근로자, 방문 취업자 등의 제도를 포함하는 것. 또한 입국부터 선발, 체류 지원 등도 강화해야 한다.

반면 한국이주민복지회 손병덕 대표는 “사업자 변경을 제한하는 이유는 무분별한 이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나치게 자율성을 보장하면 혼란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로 취업한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과 같이 관련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를 위한 노동인권상담소를 운영하는 ‘지구인의 정류장’에 따르면 처우가 낮고 근무 외 환경이 열악하다. 일부 고용주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도록 했다.

▲ 뻴 시나 씨의 숙소 계약서와 실제 숙소 위치, 내부 사진(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 뻴 시나 씨의 숙소 계약서와 실제 숙소 위치, 내부 사진(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고용허가제의 대안으로 ‘노동허가제’를 제시했다. 사업장 이동권과 같이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를 보장한다. 또 노동자 스스로 정주와 귀국을 선택하게 허용한다.

“이주 노동자를 최대한 착취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존재로 생각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이니 22대 국회에서는 노동허가제가 통과됐으면 좋겠다.”

손 대표는 “인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이주민은 불편,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고, 내국민의 시각은 냉소적”이라며 “이들이 왜 한국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지 당위성, 정당성을 정부가 국민을 향해 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 또한 체류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단순 기능인력으로 입국한 노동자가 전문인력으로 성장하고 한국 사회에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를 보다 탄력성 있게 발전시킨다면 이민 시대를 여는 마중물 역할이 될 수 있다.”

이주노동자 노조는 총선을 앞두고 노동허가제 도입을 위한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3월 17일에는 국제 인종 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사업자 및 지역 제한 폐지, 차별 철폐 성명을 발표하고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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