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에서 친모가 영아 2명을 살해하고 냉동고에 은닉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지난해 6월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에 나섰다.

미등록 아동은 ‘그림자 아기’ 또는 ‘유령 아동’이라 불린다. 병원 출산 기록만 있고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영유아다.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변화를 겪은 곳이 있다. 베이비박스.

국내에 2곳이 있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가 그중 하나를 운영한다. 여기에 가려면 교회와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오르막길을 5분 이상 올라야 한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의 황민숙 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다들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던 곳이에요. 그런데 엄마들은 한 가닥 실오라기를 잡은 거죠. 왜냐하면 너무 절박한 마음으로 오거든요.”

기자가 찾아간 1월 20일, 교회 아기방에는 3명이 있었다. 실내 화이트보드에 이름과 생년월일 등 인적 사항이 보였다. 현행법상 부모는 아기가 태어나면 한 달 안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화이트보드의 3명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곳에 왔다.

▲ 주사랑공동체교회 아기방의 화이트보드
▲ 주사랑공동체교회 아기방의 화이트보드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 담임목사는 생선 상자에 담긴 아기(온유)를 2007년 겨울, 교회 문 앞에서 발견했다. 한국 최초의 베이비박스가 생긴 계기였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영아는 2014년까지 꾸준히 늘었다. 2010년엔 4명이었는데,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2012년에는 79명, 이듬해인 2013년에는 252명이었다. 입양특례법은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부모가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했다. 아동을 보호하려는 취지였지만, 영유아 유기가 늘어난 원인이 됐다.

2014년부터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기가 해마다 줄었는데, 지난해 6월부터 미등록 아동을 전수조사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2023년 하반기에 영아 24명이 왔다. 2021년 하반기에는 47명이, 2022년 같은 기간에는 51명이었다. 황 센터장은 전수조사를 계기로 아기 숫자가 확 줄었음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수조사 이후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 와 바빴다고 회상했다. 지자체와 경찰, 그리고 친모가 연락하면서다. 전화가 너무 많아서 베이비박스 통화 상담을 한동안 중단했다.

▲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
▲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

베이비박스 아기는 오래 머물 수 없다. 먼저 교회와 가까운 서울 관악경찰서의 난우파출소에 신고된다. 관악구청이 유기 아동 발생 보고서 등의 서류를 확인하고 아기를 인계받는다. 병원 검사에서 큰 이상이 없다면 아동복지센터 등으로 아기를 보낸다. 이렇게 계속 옮겨 다니므로 나중에 행방을 찾기 쉽지 않다.

전수조사 당시에 지자체와 경찰이 베이비박스를 거친 아기들 생사를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친모 정보를 물었다. 몇 날 몇 시에 두고 간 게 맞는지, 그전에 센터장이나 직원과 상담했는지, 남긴 메모나 정보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친모를 조사한 뒤였다.

황 센터장은 전수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친모 전화가 자주 걸려 왔다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연락 줘라. 우리가 도와주겠다”라고 말했지만 친모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아기를 데리고 오겠다는 상담 전화가 꾸준히 걸려 온다. 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황 센터장은 그들이 주저하는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나타나지 않은 아기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걱정했다. “그렇게 많이 들어왔던 애들이 갑자기 어디로 갔을까요? 문제가 없으면 다행인데 문제가 있으면….”

베이비박스는 합법 시설이 아니다. 그러나 불법시설도 아니다. 이 시설을 불법으로 명시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관악구청 박지현 팀장(아동청소년과)은 베이비박스 업무를 ‘유기 아동 업무’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다만, 베이비박스가 운영된 지 15년이 돼가는 만큼 구청과 파출소도 암묵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이다. 박 팀장은 “기본적으로 아동 유기로 보지만 아동 보호 차원에서 협조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새가나안교회의 아기방
▲ 새가나안교회의 아기방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의 베이비박스도 사정이 비슷하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이어 국내에 두 번째로 생겼다. 새가나안교회 이기동 담임목사는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선례를 알게 된 뒤, 2014년 5월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이곳에 오는 아기 역시 2015년 36명이었다가 2019년부터는 한 자릿수로 줄었다. 2021년부터 최근 3년간 8명, 3명, 1명이 왔다.

주사랑공동체교회와 달리 이곳은 전수조사와 무관하게 영아 수가 줄었다. 기자가 찾아갔던 1월 17일에도 아기방이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전수조사 이후 겪은 일은 같았다.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 업무를 총괄하는 김은자 권사(70)는 경찰과 지자체 전화에 대응하고 친모를 안심시켜야 했다.

처음 찾아온 친모는 25살의 미혼 여성이었다. 어머니와 함께였다. “대학교 졸업하고 이제 취업해야 하는데 이 사건(수원 냉동고 영아 살해 사건)이 터진 거예요.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그래서 이 아이가 살아있느냐 어쨌느냐, 그걸 물어보러 왔더라고.”

김 권사는 생사를 확인해주지 못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아기를 ‘일시’ 보호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는 경찰 확인을 거쳐 경기 안양의 한림대병원에서 검사받는다. 그리고 군포시청을 거쳐 경기 지역의 일시보호소 2곳 혹은 위탁가정으로 향한다. 이후 행방은 교회도 알 수 없다.

전수조사를 위해 경찰이 전화를 걸자 일부 친모는 불안한 마음에 연락했다. 김 권사는 “(친모들은) 자기가 출산했다는 걸 숨기기 위해 아기를 갖다 놓은 것”이라며 “남편한테 과거에 아기를 출산했다는 얘기를 안 했을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 새가나안교회의 베이비박스
▲ 새가나안교회의 베이비박스

수원 냉동고 영아 살해 사건은 아동 보호를 촉구하는 움직임의 도화선이 됐다. 정부가 미등록 아동을 전수조사했고, 국회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를 통과시켰다.

출생통보제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7월 19일부터 시행된다.

출생통보제에 따라 아기가 태어나면 해당 병원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알려야 한다. 보호출산제는 경제·심리 등 다양한 이유로 출산에 어려움을 느낀 부모가 비식별화된 정보로 출산할 수 있게 한다.

두 제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김 권사와 황 센터장은 산모 익명성을 지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출생통보제로 영아의 관리 및 보호가 수월해지는 건 맞지만 병원 밖 출산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출생통보제를 긍정하고 보호출산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적 부모’팀이 대표적이다. 변호사와 보육원 간호사 등이 만들었다. 이들은 B형 간염 예방접종 기록을 토대로 미등록 아동을 찾는 방안을 감사원에 처음 제안했다.

‘사회적 부모’팀은 2022년 9월 이후 출생통보제 국회 통과를 위해 결성됐다. 그러던 중 2023년 수원 냉동고 영아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출생통보제가 6월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사건 발생 9일 만의 일이다.

그런데 보호출산제가 10월 6일 국회를 통과했다. ‘사회적 부모’팀의 이다정 간호사는 “출생통보제 통과 후 팀을 해체하려 했다. 그런데 보호출산제가 통과되자 상황이 우려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간호사는 출생통보제가 아동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법이라면, 보호출산제는 필요성을 찾을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산모가 익명 출산을 원하는 이유는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당사자와 직계만 알 수 있다. 즉, 산모 익명성을 이미 충분히 보장한다는 주장이다.

이 간호사는 보호출산제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했다. 먼저 인지청구권과의 충돌이다.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되지 못한 출생자가 친부 또는 친모를 상대로 인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민법상 시효가 없고 협상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출생자가 갖는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보호출산제로 출산하면 산모 정보가 처음부터 비식별화된다. 아이가 자라서 국가에 친모 정보를 요청하더라도 산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인적사항은 비공개처리된다. 아이가 친모 정보를 알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둘째, 보호출산제로 인해 비상식적인 권리가 생긴다. 부모에겐 아이를 양육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선택권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

“어떠한 이유로도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으면 보호로 출산을 맡길 수 있게 되잖아요. 보호라는 이름 때문에 좋아 보이는데, 결국에는 어른들의 권리로 작동되지 않을까…. 그게 심히 우려스럽죠.”

그는 아동을 귀여워하고 보호할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출생신고는 아이를 보호하는 방안이자, 아이가 마땅히 가질 ‘등록될 권리’라는 의견이다.

영아 살해 사건이 불러온 두 제도에 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논의가 오간다. 베이비박스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주사랑공동체교회와 새가나안교회는 베이비박스가 ‘생명을 살리는 시설’이라고 말한다. 두 곳 베이비박스에도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하지만 아동 유기를 묵인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이 간호사는 ‘나보다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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