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세요, 누가 암경험자고 누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나요?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고 누구나 회복해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어요.”

서울 중랑구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홍유진 캔프협동조합(캔프·Can.F) 이사장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19일이었다. 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그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캔프를 만든 암경험자 8명과 가족의 모습이었다.

▲ 캔프 설립자들
▲ 캔프 설립자들

 

국내 암유병자는 약 247만 명. 그중 72.1%가 암에 걸리고 5년 이상 생존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2021년 국가암등록통계’의 수치다. 국가암등록통계는 ‘암 관리법’에 따라 매년 2년 전 기준으로 나온다.

암환자는 계속 늘었다. 2018년 24만 7251명, 2019년 25만 8121명, 2021년 27만 7523명. 다행스럽게도 생존율 역시 높아졌다. 10년 전에 65.5%에서 2021년에 72.1%가 됐다.

암경험자와 가족은 해마다 늘었지만 지원은 회복이나 힐링 위주다. 홍유진 이사장은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단계를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을 위해 캔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 홍유진 캔프협동조합 이사장
▲ 홍유진 캔프협동조합 이사장

 

캔프(Can.F)는 암을 뜻하는 ‘캔서(Cancer)’에서 ‘캔(Can)’을, 친구(Friend) 가족(Family) 자유(Free)를 뜻하는 단어의 첫 글자에서 ‘프(F)’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암경험자와 가족, 즉 암과 친구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모여 암으로부터 자유로운 지구를 꿈꾼다는 뜻이다.

홍 이사장 역시 희귀혈액암을 경험했다. 31세에 암에 걸렸고, 치료 과정을 거쳐 지금은 약을 먹으며 지낸다. 현재 41세인 그가 암경험자의 사회 복귀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이유다.

“어떤 형태로 캔프를 만들지 많이 고민했어요. 암경험자랑 가족이 함께 운영하면서 교육이나 훈련을 제공하면서도 조합원 기여만큼 경제적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캔프는 지난해 6월 1일 설립했고, 7월 1일부터 조합원을 모집했다. 8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80여 명이 참여한다.

▲캔프협동조합이 발간한 소설집과 판매 제품
▲캔프협동조합이 발간한 소설집과 판매 제품

 

조합원 기여도에 맞게 보상하려고 캔프는 여러 수익사업을 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문화예술창작사업 콘텐츠 1호로 펴낸 소설집 <인생은 아름다워>다. 

집필에 참여한 9명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가 완치됐거나 치료 중이거나 가족의 투병을 이겨냈다. 책에는 각자의 경험을 담은 단편 소설 9개를 실었다. 이들은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받는다.

캔프는 현미로 만든 시리얼과 미숫가루 세트와 잇몸에 도움이 되는 치약을 판매한다. 홍 이사장은 현대인에게 암이 많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로 건강하지 못한 생활환경을 꼽는다. “암 환자도, 암 환자가 아닌 사람도 마음 놓고 먹고 사용할 수 있는 건강한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수익용 상품은 캔프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한다. 지난해 11월 이후 쇼핑몰 방문자는 약 1500명으로 치약은 2000여 개가 선주문된 상태다. 

캔프는 암 투병으로 얻은 깨달음을 암 예방 치유 사업으로 나누기도 한다. 기자는 서울 중랑구 사가정 마중 마을활력소에서 홍유진 이사장을 지난해 12월 22일 다시 만났다. 중랑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캔프협동조합이 주최한 토크 콘서트 현장에서다.

토크 콘서트 주제는 암과 음식이었다. 환자에게 맞는 음식을 만드는 리커버리 셰프, 중랑구의 먹거리와 환경을 고민하는 마을활동가가 연사로 같이 참여했다. 홍 이사장은 음식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환경이 나빠지면서 암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음식 습관과 생활 습관은 나빠지는 환경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방패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환경을 주고 싶다면 우리가 같이 이렇게 모여서 얘기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해요.”

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저희 중에 누구도 나나 내 가족이 암에 걸릴 줄 몰랐거든요. 아직도 암이 굉장히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이미지로 비춰지는데, 인생의 끝이 아니라 잠깐 쉬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세상에 복귀해서 우리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캔프협동조합은 국립암센터가 주최하는 암생존자 창업가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암 관련 활동에 힘썼다. 올해는 중랑구 사회적경제포럼이나 중랑동부시장협동조합과 협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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