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주민들이 커피를 손에 쥐고 이야기하고 반려견과 공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

주민 이순영 씨(62)는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갈 만한 공원도 없는데, 다 부수면 폐허처럼 동네만 무서워질까 걱정이야.”

플래카드에는 ‘혁신파크의 새로운 변화,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라!’, ‘상업 개발 반대! 공공의 공간으로 유지하라!’라는 문구가 보였다.

혁신파크는 총면적 11만㎡. 광장과 운동기구가 있는 공원, 그리고 건물 14동과 카페가 있다. 사회혁신 생태계 조성과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만든 복합문화공간. 스타트업과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시민단체 등 약 220개 기관이 입주했다.

▲ 서울혁신파크에 걸린 현수막
▲ 서울혁신파크에 걸린 현수막

서울시가 2022년 12월 ‘서울혁신파크 부지 활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변화가 예상됐다. 60층 규모의 대형 쇼핑몰로 바꾸겠다는 계획에 따라 입점 기관 대부분이 나갔다. 곳곳에 ‘폐쇄’, ‘이전 안내’, ‘무단 침입 경고문’ 같은 안내문이 붙었거나 자물쇠로 문이 잠긴 이유다.

“우리 공주랑 어디서 시간을 보내라고.” 녹번동에 사는 이복순 씨(78)는 매일 반려견 ‘공주’와 혁신파크로 산책을 나온다. 은평구에 이만한 공원이 없다고 말했다. 녹번동근린공원과 독바위공원은 경사가 있어 오래 걷기 힘들다. 혁신파크는 평지다.

이교범 씨(76)는 개발 소식을 듣고 상업 공간이 주민에게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다. 약 500m 거리에 NC백화점이 있고 약 6km 거리에 쇼핑복합시설인 스타필드 고양점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나가면 쇼핑센터가 있지만 걷기 좋은 공원은 여기밖에 없다. 주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

▲ 서울혁신파크 건물의 경고 문구
▲ 서울혁신파크 건물의 경고 문구

“우리 같은 노인이 쇼핑몰 같은 데를 갈 수 있겠어? 젊은 친구들이 다니겠지.” 따가운 햇살을 가리려고 모자를 쓰고 나온 이복임 씨(75)는 대형 쇼핑몰이 생겨도 갈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쇼핑몰에 헬스클럽이 생겨도 노인은 운동기구를 이용하지 못한다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매번 가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친구와 밥을 먹고 벤치에 앉아 쉬던 혁신파크 변화가 달갑지 않은 이유다.

일부 주민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혁신파크 변화에 찬성했다. 친구와 매일 운동하러 온다는 70대 남성은 광장을 5바퀴 돌고 벤치에서 쉬고 있었다. 그는 대형 쇼핑몰을 지어 유동 인구가 늘어나길 바란다면서도 누구나 이용할 시설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혁신파크 정문 경비실 옆에는 오두막처럼 생긴 건물이 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제로웨이스트 카페 ‘쓸’이다.

사장 배민지 씨(34)가 건물 철거에 대해 손님들과 이야기했다. 그는 혁신파크 입점 기관과 시민이 결성한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이다. 배 씨는 카페와 장애인 치과 센터를 포함해 3~4팀만 남았다고 했다.

▲ 서울혁신파크 정문 앞의 카페 ‘쓸’
▲ 서울혁신파크 정문 앞의 카페 ‘쓸’

이 모임은 혁신파크 운영 연장을 위해 시민 서명을 받았다. 덕분에 서울시로부터 운영 기간을 2년 연장한다는 결정을 이끌었다. 하지만 2026년까지 혁신파크가 공공 공간으로 제대로 기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연장 기간에도 시민은 일부 시설만 사용할 수 있고 철거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공사를 하면 지금처럼 공원을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죠.”

유아차를 끌던 유승주 씨(33)는 혁신파크를 다양한 사람이 즐기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건물이 많아 유아차를 이용해도 불편함이 없다. 넓은 광장과 공원, 문화 시설 덕분에 어린이와 반려견도 편하게 찾는다고 했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공간이 상업화·사유화되면 충분한 비용을 치를 수 없는 사회구성원은 교류와 만남으로부터도 배제되기 십상”이라며 “구매 여력을 갖춘 소비자만이 아니라 시민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 돼야 동등하게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사회 기반이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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