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는 연말마다 ‘볼 드롭(ball drop)’ 행사가 열린다. 타임스퀘어에만 5만 명 넘게 몰린다. 그런데도 대형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뉴욕 경찰이 매뉴얼에 따라 군중 이동과 출입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홍콩은 1993년 란콰이퐁 거리에서 21명이 숨지는 사고를 겪고 해마다 핼러윈 축제가 다가오면 인파 통제에 나선다. 일부 도로를 폐쇄하고 응급 상황에서 사용할 비상로를 확보한다.

▲ 뉴욕 볼 드롭 현장 인파 통제 안내(출처=뉴욕 경찰)
▲ 뉴욕 볼 드롭 현장 인파 통제 안내(출처=뉴욕 경찰)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택한 건 하드웨어 정비였다. 지난해 12월 25개 자치구에 다중인파 밀집 사고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특별조정교부금 311억 원을 지급했다. 자치구는 교부금으로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도로를 정비했다.

다수 전문가는 이런 사업이 사고를 막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다중인파 밀집 사고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문제로 생기기 때문이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학교 교수(소방방재학과)는 “도로 정비와 노후시설 개선이 인파 밀집 지역 안전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사고 자체를 예방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교수(재난과학과)는 “(인파 사고가) 시기적으로 특별할 때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하드웨어적 수단으로 제어하는 것은 비용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박준영 금오공대 교수(기계설계공학과)는 “제일 중요한 건 (지형) 구조가 아니라 인구 밀도 조절”이라고 말했다. 인파가 순간적으로 몰리지 않도록 통제하면 압사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드웨어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에는 소프트웨어가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군중 통제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함승희 교수는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이 원인인 압사 사고의 경우, 피해를 제로화하는 방법이 존재한다. 사람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보고서(신종 대형 도시재난 전망과 정책방향)에 따르면 신종 대형 도시재난은 불확실성이 높고 예측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시설물 중심의 방재 대책으로는 모든 재난을 예방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보호할 수도 없다.

보고서는 “행정기관의 역량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라며 “자치구, 공공기관, 군, 경찰뿐만 아니라 협력관계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중앙정부, 인접 지자체, 시민단체, 대학 등 다양한 기관과 주체의 참여와 지원·응원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소통하고 재난 대응을 위한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인파 통제에 주민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이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알고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사건 발생 4시간 전인 오후 6시 34분부터 인근 주민과 방문객은 군중 통제가 필요해 보인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기민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11월 행정안전부는 대규모 밀집 행사에 대한 민관협력체계 구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서울시 일부 자치구는 주민단체와 협력했다. 관악구는 경찰·소방·자율방범대·자율방재단이 모여 인파가 몰리는 관악산 해맞이 명소와 샤로수길 일대를 미리 점검하고 당일에 순찰했다.

▲ 수능 직후 순찰 중인 자율방범대(출처=자율방범대 카페)
▲ 수능 직후 순찰 중인 자율방범대(출처=자율방범대 카페)

지자체와 주민단체의 협동이 늘기는 했다. 이태원 2동 자율방범대장 홍창기 씨는 “6개월에 한 번 합동 순찰을 했는데 지금은 더 자주 돈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이라고 말했다. 라현숙 전국 자율방재단연합회장은 “지역 축제에 더 많이 참여해 질서 유지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하다. 자율방재단을 지원하는 서울시 박현희 주무관은 “(심폐소생술 등 기존 교육에서) 큰 내용 변동 없이 이태원 사고 이후 역량 강화 교육 횟수를 1회 늘려 운영하고 있다”라고 했다. 신윤재 서울시 자율방범대연합회장은 “오랫동안 법제화가 안 돼서 (방범대원이) 체계적인 직무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은 주민과 상인이 참여하는 예방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간 협력 방향으로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게 방향은 맞다. 그런데 위험 요소를 파악하려면 인프라 관리나 위험 요소 파악에 최소한의 지식과 역량이 있어야 한다.”

이수곤 전 교수는 “자율방범대 같은 조직은 옛날에도 있었다. 조금 더 확대해서 늘렸다는 건데 이렇게 땜질해서 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라며 “여러 (민간) 조직을 통폐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윤재 회장은 “지역에 대해서는 (주민이) 샅샅이 안다. 우리가 중심이 돼서 우리가 필요한 곳을 요청하는 거다. 주민이 주체적으로 준비해서 필요한 내용을 요청하고 그런 부분이 지원되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