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어 능력 기준을 가지고는 한국에서 유학 생활하기 어려워요. 한국어 기준만 믿고 들어왔다가 사실상 방치되는 거죠.” 유학생 관리 회사 영업팀의 히가와 유우카 씨(26)는 교육부가 발표한 유학생 한국어 기준 완화 정책을 우려했다.

교육부는 지역 소멸 위기 해소와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Study Korea 300K Project)’을 8월 16일 발표했다.

외국인 유학생을 2027년까지 2배 가까이 늘리기 위해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제’를 손보기로 했다. 유학생에게 요구되는 요건을 완화하는 게 주요 내용. 국내 대학 입학에 필요한 한국어 기준 완화도 포함됐다.

지금까지는 유학생의 한국어능력시험(TOPIK) 성적만 인정했다. 한국어능력시험은 가장 낮은 1급부터 가장 높은 6급까지 있다. 국립국제교육원에 따르면 국내 대학 입학 조건은 보통 3급이며 졸업 조건은 4급이다.

앞으로는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또는 세종학당 교육 이수 이력도 대학 입학 조건으로 인정한다. 한국어 능력 외에 한국 문화에 관한 교육을 강화할 취지로 언어 기준을 완화했다.

▲ 한국어능력시험(TOPIK) 등급(출처=한국어능력시험)
▲ 한국어능력시험(TOPIK) 등급(출처=한국어능력시험)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제’에서 새로 인정될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과 세종학당 교육 이수 이력은 한국어능력시험보다 한국어 능력을 입증하기 어렵다. 한국어능력시험이 한국어 능력 위주라면 사회통합프로그램은 한국 문화와 제도, 법령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은 모두 5단계. 사전 평가를 통해 단계를 배정하고 교육과 평가를 거쳐 이수하는 구조다. 한국어능력시험 자격증이 있으면 연계 배정도 가능하다.

세종학당은 3~6개월의 교육을 거친 뒤 평가를 통해 수료증을 준다. 세종학당 관계자는 “유학과 관련된 것이라면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는 것이 더 빠르다”라고 말했다.

취업이나 유학에서도 (세종학당의 교육을) 일정 부분을 인정하지만, 대학은 TOPIK을 원한다. 초급 교육과정은 한국어능력시험 1~2급, 중급 교육과정은 3~6급에 해당한다. 현재 졸업 조건(4급)보다 낮은 3급 수준으로도 중급 교육과정을 수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유학생들은 완화 이전의 한국어 능력 입증 기준이 낮아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는데 이보다 더 낮아지면 제대로 된 유학 생활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보낸다.

다부치 미도리 씨(23)는 “한국어능력시험의 최고등급(6급)을 따서 대학에 들어왔는데도 전공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며 “실질적으로 대학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6급은 최소요건”이라고 했다. 4급으로는 교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며 기준 완화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온 이네스 씨(22) 씨도 “한국어능력시험 4급을 받았는데 대학 수업을 듣는데 자신이 없다. 예를 들면 시험을 보거나 에세이를 쓸 때 한국어로 대답하기가 어렵다. 한국어 기준이 낮아진다고 좋은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어 입증 기준으로는 대학 수업은 물론이고 졸업 후 취업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의견이 많다. 히가와 유우카 씨는 취직을 통해 한국에 정착하는데 입학 때부터 한국어 능력 기준을 완화하면 유학생의 한국 적응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어능력시험 5~6급부터가 정치, 경제에 대해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며, 전문성을 가지고 배우기에 TOPIK 4급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교 수업에는 발표, 팀플, 토론 등이 있기에 한국 대학생과 같이 수업에 참여하려면 토픽 4급으로도 부족하다.”

실제로 한국 대학 입학 시 언어 능력 기준은 완화 이전에도 해외보다 낮은 편이다. 일본은 자연스러운 회화가 가능하고 신문 기사를 이해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일본어능력시험J(JLPT) N2 레벨이 입학 조건이다.

▲ 일본어능력시험(JLPT) 레벨과 인정 기준(출처=JLPT)
▲ 일본어능력시험(JLPT) 레벨과 인정 기준(출처=JLPT)

미국은 더 엄격하다. 명문 대학은 토플(TOEFL) 100점이라는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싱가포르조차 2021년 토플 평균 점수가 98점으로 100점을 넘지 못했다. 이에 비해 간단한 회화만을 요구하는 한국어능력시험 3급은 낮은 수준이다.

한국 학생들도 기준 완화를 통한 유학생의 입학 확대 정책에 비판적이다. 대학생 이원호 씨(21)는 “유학생이 많이 오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한국어 능력 기준을 낮추는 것은 반대한다”라고 했다.

유학생이 한국어를 못하니 의견 반영에서 번역기를 써야 하는 상황이며, 조별 과제에서 유학생이 참여하면 고칠 내용이나 단어가 너무 많아서 일을 두 번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고 했다.

국내 대학의 도우미 프로그램은 외국인 학생과 학부생이 1 대 1 또는 그룹으로 만나서 한 학기 동안 교류하는 형태가 기본이다. 한양대는 ‘1 대 1 한국어멘토링’을 만들었다. 한번 파트너가 된 도우미와 한 학기 동안 계속 같이 활동하는 방식.

▲ 한양대학교 멘토링 예약 표(히가와 유우카 씨 제공)
▲ 한양대학교 멘토링 예약 표(히가와 유우카 씨 제공)

세종대는 도우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소그룹 서울명소나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언어 교류 외에 다양한 문화 체험이 가능해 유학생에게 인기라고 한다.

서울의 사립대에서 유학생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처와 어학당 관계자는 한국어능력 기준 완화 추진에 대해 “외국인 유학생이 원활하게 수업을 따라가도록 일정 정도 이상의 한국어 능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국어능력시험 등급은 정부가 제시한 최소한의 제한일 뿐 이후의 유학생 관리는 대학의 영역”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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