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서울역 근처 만리동이 가까워지니까 고소한 참기름과 버터 향 가득한 빵 냄새가 났다. 노인과 노숙자 등 100여 명이 보였다.

기자가 10월 5일 오후 4시 찾아간 곳은 무료 급식소 ‘참좋은친구들’의 옛 건물 앞. 추석 연휴가 끝나고 무료 급식을 9일 만에 재개했다. 배식 시간(오후 5시)이 되자 노인과 노숙자가 따뜻한 도시락을 차례로 받아서 주변 바닥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혼자 밥 챙겨 먹기 힘든데 다리 성할 때 이런 데 와서라도 먹어야지.” (85세 노인)
“가족은 나 여기 오는 거 몰라. 자식들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 그냥 와.”(77세 노인)

▲ 서울역 근처에서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모습
▲ 서울역 근처에서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모습

참좋은친구들은 형편이 어려운 노인과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무료 급식을 34년째 제공한다. 대부분의 무료 급식소는 점심을 제공하는데, 이곳은 저녁을 제공한다. 1주일에 나흘, 하루 평균 170여 명이 찾는다.

처음부터 야외에서 무료 급식을 하진 않았다. 새 건물주가 4월 3일, 퇴거를 요구하면서 어쩔 수 없이 야외 급식을 하게 됐다.

“건물이며 쓰던 살림살이이며 모두 압류가 됐어요. 사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장소가 없어진 거죠. 여기서 밥을 해결하던 사람은 뿔뿔이 흩어져 굶주림에 고통스러워했어요.” (참좋은친구들 신석출 이사장)

새 건물주는 건물 매입 가격의 2배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고 명도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소송이 끝나고 건물주는 용역업체를 불러 참좋은친구들을 퇴거시켰다.

참좋은친구들은 무료 급식을 중단해야 했다. 거리로 내몰렸는데, 서울역 주변 노숙인을 찾아다니며 도시락을 나눠주다가, 임시방편으로 옛 건물 앞에서 무료 급식을 재개했다. 5개월 만이었다.

“라면만 먹고 살았어. 있어야 할 곳이 없어지니까 막막했지, 그럼.”

영등포에서 왔다는 김창호 씨(70)는 무료 급식이 중단된 당시를 회상하며 “너무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무료 급식이 재개될 때까지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우는 등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했다고 전했다.

▲ 참좋은친구들이 나눠준 도시락. 메뉴는 흑미밥과 불고기, 계란말이, 채소볶음, 도넛 등이다.
▲ 참좋은친구들이 나눠준 도시락. 메뉴는 흑미밥과 불고기, 계란말이, 채소볶음, 도넛 등이다.

참좋은친구들에서 봉사활동을 5년째 하는 쿠프카 피오르트 씨(폴란드 출신)는 봉사를 마치고 “다시 봉사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여기는 코로나가 유행일 때도 멈추지 않고 운영했던 곳이다. 건물이 원상 복구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신석출 이사장은 “겨울이 오기 전에 (건물 문제를) 타협해서 여기 오시는 분께 밥도 드리고 재워 드리고 일자리 연결도 해드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인근의 무료 급식소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 역시 철거 위기. 1988년부터 36년째 했던 곳이다.

밥퍼는 철거하거나 강제 이행금(2억 8300만 원)을 내라는 처분을 지난해 12월 동대문구청으로부터 받았다. 건축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건축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청 관계자는 “내진설계나 소방시설 같은 안전 점검이 되어 있지 않아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른다”라고도 했다.

밥퍼는 서울시가 애초 건축허가권자(동대문구청) 허락을 받지 않았고, 전임 구청장이 증축을 허용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필형 현 구청장이 ‘밥퍼 정비’ 공약을 내세워 지난해 6월 당선되면서 부당한 처분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동대문구청과 밥퍼는 행정재판 중이다. 법적 다툼이 이어지지만, 밥퍼에는 여전히 하루 600명 정도가 찾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을 무료로 제공한다.

김미경 밥퍼 부본부장은 “80세 이상 노인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노숙인, 일용직 근로자”라고 설명했다. 혼자 생활하며 집세나 생활비를 낼 형편이 없는 20대 청년도 가끔 있다고 한다.

▲ 밥퍼를 찾은 이들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 밥퍼를 찾은 이들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기자는 밥퍼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봉사를 했다. 직원과 자원봉사자는 분주히 움직였다. 배식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낮 12시 30분까지. 기자가 찾은 오전 9시에도 노인 50여 명이 식당 안에 있었다.

“우리 딸이 내가 귀찮고 싫은가 봐. 자기 집 오라고 안 해.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자꾸 와.” 95세 노인은 밥퍼에서 약 10년 동안 점심을 해결한다고 했다. 밥퍼 인근에서 혼자 산다.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지만 왕래가 거의 없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 혼자서 (밥 차려 먹기가) 힘들어서 여기 와서 밥을 먹어요.”

동대문구에 사는 김봉근 씨(87)는 밥퍼에 매일 간다. 그는 “아침에 라면 반 개를 끓여 먹고 점심을 먹으러 온다. 아내가 몸이 아프니 생활이 힘들어져서 (밥퍼에) 오게 됐다”라고 힘겹게 말했다.

밥퍼는 인근 주민의 철거 또는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몸살을 앓는 중이다. 청량리역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신축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서는데, 주민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고 한다.

동대문구청 온라인 민원 홈페이지에는 밥퍼 철거를 요구하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연초부터 꾸준히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 관계자 지정 민원 외 구청 다른 부서나 온라인을 통한 민원까지 집계하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철거를 요구하는 온라인 민원(출처=동대문구청 홈페이지)
▲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철거를 요구하는 온라인 민원(출처=동대문구청 홈페이지)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두 아이를 키운다는 주민은 “밥을 제공해 드리는 걸 반대하진 않지만, 가끔 노상 방뇨나 바깥에 누워계시는 등의 행위로 불안감을 느낀다”라며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 한적한 데로 옮겼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일부 주민은 철거 요구 서명 운동을, 밥퍼는 반대 서명 운동을 하는 중이다. 매주 자원봉사를 한다는 김병준 씨(65)는 “30년이 넘도록 운영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건물 문제로 없애려 하는 건 구청장이 잘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전부터 틈틈이 자원봉사를 했다는 정 모 씨(26)는 “(밥퍼는) 오래된 만큼 기반이 잘 되어 있고 사회에 너무 필요한 곳이다. 노인이 정말 많이 오는데 이런 곳을 더 많이 도와줘야 한다”라고 했다.

밥퍼가 있는 동대문구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19.38%로 서울시 전체(18.2%)보다 약간 높다. 초고령사회(노인 비율 20% 이상)와 비슷한 수준이다.

경기 안양의 ‘유쾌한무료급식소’는 26년간 취약 계층에게 무료 급식을 했다. 물가 상승과 운영비 부담에 모금 운동도 했지만 결국 문을 닫을 위기에 있다. 강원 원주와 강릉의 무료 급식소는 후원금과 자원봉사자를 확보하지 못해 추석 연휴에 무료 급식을 중단했다.

“아,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왜 이리 일찍 왔댜?”

참좋은친구들의 배식 시간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인사를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무료 급식소는 밥 한 끼를 해결하는 곳 이상의 역할을 했다. 공공의 손길이 닿지 못한 사회 취약계층을 돕기 때문이다.

성동구 성수동에서 밥퍼가 있는 청량리역까지 왔다는 75세 노인은 “운동 삼아 걸어서 온다. 세상 구경도 되고 좋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밥퍼에 15년째 온다는 88세 노인은 여기서 대화를 많이 하느냐는 물음에 “노인네들 뭉쳐서 얘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라고 했다. 그는 배식 1시간 전부터 도착해 같은 식탁의 노인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작년 서울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노인 중 11.9%가 지난 1주일 동안 우울 증상을 겪었다. 대부분 80세 이상, 무학, 독거, 월평균 가구소득 100만 원 미만이다.

사회복지사 박용화 씨는 “노숙인이나 독거노인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많다. 무료 급식소에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받아주는 데가 있다고 느끼면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라고 했다.

배식이 시작되는 오전 11시가 되자 김미경 밥퍼 부본부장은 마이크를 쥐고 무단횡단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전날 밥퍼를 이용하던 노인이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에 길을 건너려다 차에 치여 숨졌기 때문이다. 그는 일상생활에 장애를 줄 정도의 시력 문제가 있는 저시력자였다.

참좋은친구들은 노숙인이 잠을 잘 공간을 내어주고 병원을 연결하거나 의약품을 나눠주는 등의 의료연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김창호 씨는 “(참좋은친구들은) 아프면 감기약을 주고 다치면 치료약을 준다”라며 “도움이 많이 돼서 이런 데가 없어지면 막막하다”고 말했다.

무료 급식소가 없어지면 어떨 것 같냐는 물음에 노인들은 이렇게 답했다. “밥 준다는 다른 데 찾아서 그냥 떠돌아다녀야지.” “다른 데는 나는 몰러. 여기밖에 갈 데 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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