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좋은 지면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백수라 시간이 아주 불규칙해요(웃음). 기자님이 원하시는 날짜를 두세 개 주시면 맞춰보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만남을 기대해 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흔쾌한 인터뷰 허락이었다. 출판사(북드라망)를 통해 섭외 시도를 했지만, 몇 주 째 묵묵부답. 수소문하여 알아낸 작가 이메일로 연락하니 곧장 답이 왔다. 첫 인터뷰이(interviewee)가 그녀라서 진심으로 기쁘다고 답했다. 2023년 10월 2일.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추석 연휴. 대중지성과 시민대학의 혁명을 이끈 고전 평론가 고미숙 씨를 스토리오브서울이 만났다.

▲ 충무로역 1번 출구, 필동 길 안내도
▲ 충무로역 1번 출구, 필동 길 안내도

충무로역 1번 출구, 필동으로 향했다. 남산 자락에 있는 감이당. 고미숙 고전 평론가가 친구들과 공부하는 지성 공동체이다. 고미숙은 연암 박지원의 21세기 '페르소나'를 상징하듯, 그녀의 서재 또한 '북학파' 지식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서울 산기슭에 자리 잡았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준 고미숙 작가는 기자가 건넨 허브 차 9종 세트를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우와! 이거는 본 중 최고야! 난 페퍼민트가 제일 좋아요!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녀의 재기 발랄한 목소리가 중년의 희끗희끗한 머리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명랑한 '문학소녀'가 있다면 아마도 고미숙씨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녀는 타칭 '로드 클래식' 덕후다. <서유기> <돈키호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걸리버 여행기> <하멜표류기> 등 온갖 기행문을 섭렵했다. 유람 장르에 얼마나 심취했던지 아랍권의 여행기 <이븐바투타>까지 읽다가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아랍인들의 이름이 평균 한 줄 이상이 되어서 중도에 포기했을 정도다. 고미숙은 18세기 조선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끈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재치 있게 재해석해 일약 인기 작가 대열에 오른 사람이다. 2003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초판이 출판사 그린비에서 발행된이후 지금까지 10만 부 이상 팔리는 등 크게 사랑을 받았다. 2012년에는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작은 길 출판)를 쓰고, 2022년에는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사는 법>을 연이어 펴내 꾸준히 '연암 돌풍'을 일으키며 전 세대가 아우를 수 있는 버전으로 <열하일기>를 소개해 왔다.

이후 JTBC '차이 나는 클래스'와 유튜브 MKTV 김미경 TV를 통해 동양철학의 명강연을 선보여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했다. 고미숙 작가의 출판을 담당하고 있는 북드라망은 “고미숙 선생님 고전은 고리타분한 책이 아니라, 여전히 동시대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참신한 독법으로 독자들에게 큰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말과 글이 있는 아카데미아(academia)에선 고미숙 작가의 고전 번역은 빼놓을 수 없는 필독서다. 지난해 스토리 오브 서울에 여행 칼럼을 게재한 심재철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는 고미숙 평론가를 언급하며 "트래블 저널리스트뿐만 아니라 기자나 PD 지망생이라면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일독을 권한다"고 했다.

▲ 스토리오브서울과 인터뷰하는 고미숙 작가
▲ 스토리오브서울과 인터뷰하는 고미숙 작가

40대의 인생 리셋

1994년 고미숙 씨는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에 임용되지 못 했다.

더 이상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40대에 인생을 리셋해야 했다. 느닷없는 중년 백수로 전락한 그녀는 자신에게 이롭고 세상에도 이로운 밥벌이로 고전 공부를 선택했다. "고전 공부는 실용적으로 이롭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나는 노후 또는 심지어 사후에, 내가 죽은 다음에도 이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공부가 그렇듯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학연은 끝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야 했다. IMF 때 강북구청 매점 사무소에서 '수유너머' 연구실을 열고 세미나 모임을 시작했다. 교수가 되지 않은 지식인들이 모여 동서양을 넘나드는 철학을 함께 공부했다. 1997년에 소위 명문대 석박사, 40대 남성들이 주류가 되어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그러다 보니 불꽃도 튀었다. "여러 문제가 생기죠. 왜냐면 한 번도 집에서 밥을 한 적이 없는데 여기 와서 같이 해 먹고 하니까요 (웃음) 이게 되게 어색하잖아요. 지식이나 이념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한 번도 없고 전부 생활윤리가 부딪혔죠."

불과 몇 년 후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제도권 밖의 초대형 지성 공동체가 됐다.

"1997년도부터 디지털이 본격화되기 전이니까 2009년까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또 그들이 결혼하고 애를 낳아서 어린이 방까지 있었다니까요, 그리고 영상팀, 카페도 있었고, 탁구장까지요." 고 작가는 정의상, 공부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공부는 공부 자체가 네트워크거든요. 지금 현대인들이 이런 거를 많이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공부와 삶 그리고 생명은 기본적으로 네트워크가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거를 한 번도 나는 의심해 본 적이 없어요."

 

대중지성의 개념

고미숙 작가는 고전을 연구하기보단 대중화하기를 원한다. 대중지성이란 지성을 대중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중이 당대 최고의 지성을 만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대중들의 학력이 높아지면서 '지식인이 대중에게 지식을 쉽게 나눠준다'라는 계몽적인 방식은 20세기에 끝났다고 했다. 고 작가는 이어 "대학의 지식이 세상과 소통을 못 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대학은 어떤 점에서 이 세상의 흐름과 고립이 돼 버렸어요. 그러니까 대중들의 삶에 하나도 영향을 못 미치는 대학생들은 어떻게 보면 자격증 따러 가는 거 이상의 생각을 못 하게 되는 거죠. 이거는 대학의 몰락이에요 사실." 그녀는 이 점이 크게 아쉬웠다.

우리 사회 대중은 굉장한 지적 잠재력이 있지만 세대를 관통하고 초월하는 공부의 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IMF 이후에 세대 갈등이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했어요. 계급 투쟁의 시대가 아니라 세대 갈등의 시대다. 그래서 2060이 함께 만나서 공부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느낀 거죠. 대중지성이면서 트랜스 제너레이션. 각자 다른 세대에 대해서 거리감과 때로는 적대감 이런 것들이 공존하면서 네트워크를 구성합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진다고 해서 좋은 삶이 만들어질 리가 없잖아요. 시민대학 같은 대안을 구성하여 삶을 환기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모인 것 같아요."

▲ 고미숙 작가가 사인하고 있는 모습
▲ 고미숙 작가가 사인하고 있는 모습

연암 박지원에게서 배우는 21세기 글쓰기

<열하일기>는 조선 18세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생일)에 축하 사절로 중국, 열하로 떠나게 되면서 겪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담은 여행기이다. 고미숙 작가는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있었던 사건 중 지성을 통해 일어난 <열하일기>는 세계 기행문 중 가장 으뜸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조선의 선비가 중국을 횡단하면서 중국의 역사와 당대 최고의 청나라 문명을 꿰뚫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는 대작이라고 설명했다. 연암 박지원의 문체는 당시 왕과 사대부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문체반정'을 일으킬 만큼의 실험적인 글쓰기 형식이었다.

고미숙 작가는 "심오한데 심오한 사유를 유쾌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 유머와 역설, 그러니깐 기존의 통념들을 전복하고 사유를 뒤흔드는 상상력이 연암에게 내장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연암의 작품은 조선의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혔지만 18세기 양반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돌려 읽혔던 점을 생각하면 연암의 문장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고미숙은 연암과의 특별한 인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책을 쓸 때면 꼭 연암을 다시 만나는 거예요.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라고 연암과 다산(정약용)의 평전을 쓴 게 있어요. 교수가 못됐고 학교 밖에 나와서야 비로소 연암 박지원을 만나게 됐어요. 그것도 참 절묘하죠. 그래서 연암은 나를 계속 공부하게 하는구나. 이런 인연이 되게 특별하죠. 이런 게 운명이면 운명인 거고, 하여튼 신기해요."

2003년 그녀의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출판되자마자 우리나라의 모든 일간지의 주목을 받았다. '서양철학을 우리나라 고전에 적용해 참신하다'라는 평가였다.

한편 '공식주의'를 강조하는 국문학계에서는 '연암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라는 힐난도 들었다. 이에 고미숙 작가는 "그들과 정식적으로 논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연암을 재해석할 때는 이미 그런 논쟁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 한 때' 였다며 '자신도 한창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할 때 유명 작가에게 독설을 많이 날려봤기 때문'이라고 호방하게 설명했다.

 

고전을 통해 알게 된 삶의 핵심

고미숙의 연암 리라이팅(rewriting) 속에도 웃음과 유쾌함이 있다. 예수, 스피노자, 니체와 이탈리아 중국 선교사 마테오리치 등을 결합해 근대적 지식의 배치를 역으로 읽어냈다.

동양 사상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학제 간 연구인가의 질문에 고미숙 평론가는 "90년대 말 들뢰즈/가타리가 서양철학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이제 백수 돼서. 서양철학 공부를 열심히 했죠. 그때 아, 이제 사유하는 방식이 20세기하고 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포스트모더니즘은 결정되어 있었던 것들을 다 해체하는 거예요. 근데 이게 동양 사상과 굉장히 잘 매칭되는 점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 서양의 해체주의랑 연암의 텍스트를 해석하니까 잠재력이 폭발했어요."라고 전했다.

이러한 고미숙의 글쓰기 철학에는 자율성과 능동성을 자신이 얼마나 발휘하고 있느냐가 담겨있다. 즉 연암의 유목주의와 동일하다. 고정된 가치관에 묶여 있지 않고 흐르는 대로 이동하는 존재를 뜻한다. 그는 이어 "만약 박지원이 여행 가이드나 기계 매뉴얼을 쓴다고 하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와 비유로 누구나 보면 읽고 싶게 쓸 거예요. 그게 바로 말의 힘인데, 연암이 어떤 사람하고도 친밀함을 만들어 내는 힘하고 관계가 있다고 보는 거죠. 즉 '우정의 윤리학'이죠. 사실 양반 시대잖아요, 근데 자기 하인의 얘기가 (정 진사)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고, 마치 친구처럼, 격이 안 맞는다 하면 어떻게 그런 글이 나오겠어요?"라고 말했다.

고미숙 작가는 연암의 <열하일기>는 기본적으로 21세기와 포물선을 이루며 현대의 담론에 도달한다고 했다. 박지원은 양반계급의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겪는 미시적인 욕망의 세계를 잘 관찰한 '여성주의'와 동물의 권리인 '동물권' 문제 또한 텍스트에 담겨있다고 했다. 그는 연암의 이야깃거리들이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심리적인 여러 문제를 총망라하기 때문에 지속해서 생명력을 창조하고 있다고 했다.

"연암이 지방에 가서 군수 노릇을 할 때 한 여인이 우물에 빠져 죽었던 사건이 있었어요. CCTV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가부장적인 당시 시대상에서 대충 남성 편에 서서 사건을 처리한 게 아니었죠. 여인이 성적인 협박을 받다가 죽었구나, 이걸 알아차린 거예요. 그 남자는 딱 잡아떼고 있는데 그 여인이 겪었을 압박을 고스란히 전부 재현해서 심판했죠." 또 "연암이 기르던 말이 죽었는데 그 하인들이 말고기를 먹다가 호되게 혼나는 장면까지 상세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고미숙씨는 이처럼 설명하며 진정한 지성은 유동성을 동반한 마이너리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경직된 메이저리그의 굳어져 버린 '엄숙주의'는 이미 반 생명적인 지식이라고 했다.

한편 문학 뉴스에 따르면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무라카미 하루키, 오에 겐자부로가 느닷없이 나온 게 아니라 일본 고전문학을 꾸준히 오래 번역한 토대 위에서 배출됐다"라고 언급했다. 한국 문학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 고전 번역의 해외 진출 방향성과 연구의 활성화에 대해 고미숙 작가는 "우리나라가 문화적인 영향력에서 일본을 압도하는 점이 훨씬 많지만, 일본의 기초 지식의 토대는 훨씬 튼튼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지속적인 기초과학 노벨상 배출의 이유로 "개인들의 집중력이 뛰어나다. 일례로, 자신의 후배가 조선 18세기에 관한 책을 출판했을 때 평범한 일본 사람으로부터 손 편지를 받았다. 학자도 아닌 사람이 조선의 지성사나, 괴테 같은 외국인 철학자를 평생 연구하고 박물관까지 세우는 일을 실제로 들어서 기초지식에 강한 일본이 납득이 갔다"며 우리나라의 '책 읽는 인구'의 감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 고미숙 작가가 기자 지망생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 고미숙 작가가 기자 지망생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언론인의 글쓰기

그녀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글쓰기는 심오하고 명랑해야 한다고 했다. 능동성과 자율성 그리고 생명 활동을 강조했다. "이제는 개인의 역량이 커졌잖아요. 왜냐면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정보에 접속이 되잖아요. 이거는 인류 사회의 대혁명이죠. 이 역량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접속할 것이냐 아니면 고립될 것이냐 이 선택지가 주어진 거예요.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느냐에 있어요. 내 능력이 뛰어나다가 아니고 연결될 수 있느냐가 능력이거든요."

그는 저널리스트를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좋은 세상과 연결됐다고 했다. "기자는 읽고 써야 하잖아요. 계속 기사를 읽어야 하고 이제 내가 그걸 생산해 내야 하잖아요. 이 시대에 내가 고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고양하는 일을 하는 데 얼마나 창조적으로 기사를 생성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인가가 관건이죠.."

"나 자신이 넓고 깊은 세계를 어느 정도 통찰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시야가 좁고 얇은 기사들이 너무 많아요. 예전에는 그것만 돼도 중요한 정보였는데, 지금은 차고 넘치니까 그런 기사 말고 창조적인 기사를 쓰려면 고전을 활용해서 최소한 삼천 년의 시야를 확보해야 해요."

"그 시야를 확보해야 지금 사람들의 삶이 어떤 지점과 좌표를 통과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생산하는 뻔한 정보를 재생산, 복사를 해내면 자괴감이 심해지겠죠. 천문학적으로 보면 이 시공간적인 좌표가 얼마나 깊고 넓습니까? 그러니까 고전을 읽어야 하고 이제 우주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하죠. 그 시야가 있어야 지금 이렇게 가변적으로 흘러가는 시대에, 인간의 삶에 대해서, 어떤 문제랑 딱 결합할 수 있는 통쾌한 기사 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고미숙씨가 기자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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