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보면 성공한 것만 적혀 있잖아요. 사실 그걸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한 건데요.”
더 많은 것을 탐하고, 더 높은 곳을 선망하는 성공 지상주의 시대. 화려한 ‘성공’보다 모두가 외면하고픈 쓰디쓴 ‘실패’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
목표를 이루기까지 쓰러지고, 부서지고, 무너졌던 나와 당신의 실패담을 찾아 듣는 기자, 바로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다.

▲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 (김지은 제공)
▲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 (김지은 제공)

김지은 기자는 올해 2월부터 한국일보 인터뷰 시리즈 <실패연대기>를 연재하고 있다.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한 이들이 주인공이다. <실패연대기>는 지금까지 배우 김혜수, 피겨 국가대표 차준환, 탈가정 청년 배혜림 씨 등 18명의 실패담을 담았다. 과거 마약중독자였던 이가 지금은 마약 중독자를 돕는 삶을 산다. 십수 년 전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이가 우울증에 빠진 이들을 돕는 이야기도 있다.

▲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실패연대기 (출처=한국일보)
▲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실패연대기 (출처=한국일보)

김지은 기자는 단순히 인물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만 하는 기자가 아니다.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와 감정을 포착해낸다. 누굴 인터뷰할지,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물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24시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지은 기자의 문체는 늘 담담하지만, 인물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진다. 타인을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으로 바라보는 그다.

 

◇ 김지은은 왜 ‘실패’에 집중할까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논설위원을 지낸 기자 김지은. 그는 어쩌다 누군가의 실패담을 찾아 듣는 기자가 된 걸까. 9월 20일 유선상으로 김지은 기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지은 기자는 2002년부터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좋은 기사는 세상을 바꾼다는 초심으로 뛰어든 길이었다. 2017년 정치부 기자로 일할 당시, 기자로서 살았던 지난날을 돌아봤다. 세상을 바꾼 건 아닌 것 같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다 독자들의 댓글을 읽으며 ‘기사 하나가 세상은 바꾸지 못해도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속 서랍에 넣어두고 힘들 때나 위로받고 싶을 때 꺼내볼 수 있는 기사를 쓰자고 다짐했다. <실패연대기>의 시작은 실패에 갖는 고정관념을 반전시키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 <실패연대기>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셨나요.
“기자들도 실시간으로 조회수를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과정의 소중함을 저도 모르게 잊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과정이 주는 기쁨과 성찰이 떠올랐어요. 누군가의 이력서를 보면 성공한 것만 적혀 있지만, 사실 그걸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한 거잖아요. 처음 콘셉트는 ‘전국민 실패자랑’이었는데, 실패를 중심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려고 하다 보니 지금의 실패연대기가 탄생했어요.”

- 어떤 이들이 실패연대기의 주인공이 되나요.
“실패를 겪은 사람, 실패를 겪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 누구나. 실패가 없는 사람은 없거든요. 실패를 겪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의 실패는 독자들한테 의외성을 줄 수 있어요. 김혜수 씨도 그렇고요.”

▲ 김지은 기자가 ‘콩쿠르 여제’로 불리는 백혜선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를 2월 9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클래식 전문 연습실 로베르트 뮤직 스튜디오(Robert Music Studio)에서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출처=한국일보)
▲ 김지은 기자가 ‘콩쿠르 여제’로 불리는 백혜선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를 2월 9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클래식 전문 연습실 로베르트 뮤직 스튜디오(Robert Music Studio)에서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출처=한국일보)

◇ 어쩌면 ‘실패’는 ‘삶’ 자체이기 때문에

<실패연대기>는 유명인의 실패만 다루는 연재작이 아니다.

남동생의 폭력에 '탈가정'을 선택한 청년의 이야기도, 성매매 당사자에서 벗어나 성매매 피해 여성을 돕는 활동가의 이야기도, 자살을 시도할 만큼 좌절했던 이가 다시 일어나 세상에 나아가는 이야기도 다룬다.

<실패연대기> 인터뷰이들은 실패를 ‘삶’ 자체로 받아들인다. 모든 것은 실패로부터 나오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든 것도 바로 실패라는 것.

나와 다른 듯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던 ‘실패’가 떠오른다. <실패연대기> 속 그 누구도 실패자가 아니다. 실패를 거쳐 온 사람일 뿐이다.

▲ 실패연대기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실패’란 (한국일보 기사 재편집)
▲ 실패연대기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실패’란 (한국일보 기사 재편집)

- 실패연대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실패할 때는 아프고 힘들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렇지 않다는 게 공통점이었어요. 실패는 아프고 힘들지만, 꼭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 실패연대기 기사에 직접 댓글을 달기도 하시던데요.
“맞아요. 인터뷰 비하인드를 남기거나 기사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덧붙여요. 기자가 기사에 댓글을 남기면 독자들이 신기해해요. 그리고 저는 독자들의 댓글도 다 읽어요. 한 독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댓글로 남기면, 또 다른 독자가 공감을 누르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요. 어떤 댓글은 제가 텍스트로 다 긁어서 저장까지 해요. 독자들의 댓글은 실패연대기를 지금까지 연재할 수 있었던 힘이에요.”

▲ 김지은 기자가 실패연대기에 남긴 댓글 일부. 스타강사 문단열, 성우 서혜정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네이버)
▲ 김지은 기자가 실패연대기에 남긴 댓글 일부. 스타강사 문단열, 성우 서혜정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네이버)

- 김지은 기자가 생각하는 ‘실패’란 무엇인가요.
“실패란, 그 가치를 모르기 쉬운 보석. 그러나 날이 갈수록 빛이 발하는 걸 알 수밖에 없는 보석이에요. 저도 예전에는 실패하면 힘들고 수습하느라 바빠서 그 가치를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실패했던 거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 빛을 발하는 보석이 바로 ‘실패’였다는 걸요.”

- <실패연대기>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기자 김지은의 존재 이유입니다. 고맙습니다.”
실패연대기의 한 독자는 김지은 기자의 4번째 연재물에서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언제나 안 될 거라 지레짐작하고 포기해 버린 어린 날의 내가, 실패를 느끼며 좌절해 보지 않았던 지난날이 후회된다”라고.

실패가 두렵고 괴롭다면 김지은 기자의 <실패연대기>를 찾아보라. 실패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서 <실패연대기>는 마음 놓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응원을 보낸다. 두렵기만 했던 실패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신도 비로소 ‘실패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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