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을 수 있다. 재판에 혼자 참석하는 이른바 ‘나홀로 소송’이다. 9월 11일 서울서부지방법원. 기자가 방청한 형사재판 13건 중 6건은 변호인 없이 피고인만 참석했다.

오전 10시 열린 재판의 피고인은 50대 무직 남성이었다. 2022년 6월 15일 택시 기사를 폭행하고 차 키를 20분 동안 돌려주지 않아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관 복부를 1회 때리기도 했다.

그는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형사8단독 이우정 판사는 피고인에게 비슷한 사건 중에서 차 키를 뽑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피고인은 “실랑이를 하다가 차 키를 뽑았다”라고 말했다.

법정에선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블랙박스 영상이 재생됐다. 택시 밖에서 실랑이가 벌어져 차 내부가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에선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

판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있냐고 물었다. 피고인은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판사가 ‘폭행은 합의하면 (혐의가) 없어진다’라고 합의 여부를 물었다. 피고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검사는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오전 11시 열린 재판의 피고인은 40대 무직 여성. ‘퇴거불응’ 혐의로 기소됐다. 3일간 카페 좌석에 짐을 방치한 혐의가 있냐고 판사가 물었다.

피고인은 “음료와 빵을 시키고 정당하게 돈을 냈다”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카페 측은 짐이 몇 개까지 가능하다 등의 규정도 제시하지 못했다”라며 언성을 높였다.

판사가 피고인에게 변호인은 없냐고 물었다. 피고인은 없다고 답했다. 이에 판사는 법원 1층에서 국선 변호인 선정 청구서를 내고 가라도 했다. 국선 변호인 선정 제도는 사선변호인이 선임되지 않은 경우에 피고인을 위해 법원이 국가 비용으로 변호인을 선정하는 제도다.

판사는 국선 변호인 선임에 시간이 걸릴 것을 고려해 이후 재판은 10월 말로 늦추겠다고 했다. 기자가 이날 방청했던 나홀로 소송 6건 중에서 유일하게 이우정 판사가 국선 변호인 신청을 피고인에게 권유했다.

▲ 9월 11일 오전 열린 서울서부지법 공판 안내
▲ 9월 11일 오전 열린 서울서부지법 공판 안내

형사사건은 구속기소 사건을 제외하고 불구속 기소 사건에서는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형량이 무거운 사건 또는 자력으론 충분히 자기 입장을 피력할 수 없거나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건에 대해선 변호인 없이 재판을 열 수 없지만, 일부 혐의는 자력 변론이 가능하다.

법률저널에 따르면 2017~2021년 1심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변호인 없이 단독으로 진행한 비율이 45%나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나홀로소송 비율이 35.3%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징역형 등 중형이 아닌 이상 굳이 변호인을 쓰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기자가 지켜본 서부지방법원의 재판에서도 징역 6개월이 넘는 중형을 구형받은 나홀로 소송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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