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뽀순이 추모식
▲ 뽀순이 추모식

“정말 작은 동물이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특이할 수 있지만, 저와는 많은 교감을 나눴고 제가 준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주고 갔어요.”

안효정(39)씨는 지난달 반려 고슴도치 뽀순이(5)와 이별했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펫포레스트’ 에서 장례를 결정하자 부고장이 나왔다. 가족들에게만 공유했는데 친동생이 보낸 부조금 5만원은 장례비용 30만원에서 차감됐다.

추모식에선 종교에 맞춰 십자가와 천사를 놓고, 향을 피웠다. 밥그릇과 엄지손톱만 한 베개도 놓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화장하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적은 유골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장례지도사가 직접 손으로 분골했다. 한 움큼 안 되는 뼛가루는 유골함에 담아 가져왔다.

“밤부를 만나고 이런 사랑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박희진(29)씨는 작년 11월, 골든 리트리버 밤부(10)와 이별했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21그램’에서 장례를 치렀다. 추모실에 있는 빔프로젝터에서 밤부의 사진이 나왔다. 회사 공장견이었던 밤부를 집에 데려오고, 말기암에 걸린 밤부를 위해 퇴사하고, 안락사를 고민하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화장하며 음식을 함께 태웠다. 평소 먹고 싶어 했지만 밀가루 음식이라 주지 못해 미안했던 흰 빵을 준비했다. 대형견 밤부의 화장은 3시간 걸렸다.

“딸이 내 수명의 반을 떼어주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했죠”

최남균(58)씨는 지난 달 말티즈 로또(18)와 이별했다. 장례는 ‘21그램’에서 치렀다. 꼭 다시 만나자는 의미에서 로또의 다리에 붉은 실을 묶어 추모식을 진행했다. 유골은 집에 가져왔지만, 추모 보석인 ‘루세떼’로 제작할까 고민 중이다.

이들은 키우던 동물이 죽으면 뒷산에 묻거나 생활폐기물 처리해 쓰레기봉투에 버렸던 과거와 달리 반려동물 장례식을 선택했다. 반려동물 장례 산업은 추모 방식이 다양해지고,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업체가 많아지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9월 2일, 반려동물 장례업체 ‘펫포레스트’에선 20건의 장례가 치러졌다. 하루에 21명, 동시간대 8명의 장례지도사가 근무하지만 찾는 이들이 많아 대기를 걸어놓는 경우도 잦다.

▲ 수의, 유골함, 관, 루세떼
▲ 수의, 유골함, 관, 루세떼

기본금 35만원부터 160만원까지. 장례비용은 반려동물의 무게, 수의 및 관의 종류 등에 따라 패키지 별로 다르다. 납골당 가격은 위치에 따라 40만원에서 90만원까지 차이난다.

가장 비싼 건 유골을 추모 보석으로 만들어 간직하는 ‘루세떼’ 패키지다. 현행법상 유골을 길가에 묻거나 강가에 뿌리는 것은 관련 법규가 미비해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다. 납골당 안치는 매년 재계약을 통해 연장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 영원히 옆에 둘 수 있는 루세떼를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장례를 치르는 동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90%. 나머지 10%에는 토끼, 앵무새, 햄스터부터 거북이, 이구아나, 닭, 뱀 등이 있다.

건물 3층과 4층엔 유골을 안치하는 납골당이 있다. 수용할 수 있는 납골함은 총 1000개.  반려동물이 좋아했던 장난감이나 간식, 외롭지 말라고 남겨둔 사진과 편지들이 납골당 내부를 가득 채웠다. 49재를 기리기 위해 장례를 치르고 49일 동안 매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 마리 납골당
▲ 마리 납골당

“저에게 이곳은 안식처에요.”

서울 강남에 사는 여밀림(38)씨는 2년 전부터 한 주도 빠짐없이 이곳을 방문했다. 반려묘 마리의 납골함이 있기 때문이다. 2시간 정도 마리의 사진을 보고, 납골당에 있는 사료와 물을 정리한다. 마리를 보내고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들었던 그녀는 동물 커뮤니케이터라고 알려진 ‘하이디’에게 상담받기도 했다.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2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현재 반려동물 양육비율은 25.4%다. 국내 전체 가구 4분의 1이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 1마리당 월평균 양육비용은 15만원이다.

동물의 평균수명이 사람보다 짧으니 양육의 증가와 함께 장례 수요 역시 증가했다. 한국동물장례협회가 운영하는 동물장례정보포털에 등록되어 있는 전국 합법 동물장묘업체는 70개다. 2016년 17곳이었던 것에 비하면 4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현장에선 반려동물 장례에 대한 인식 변화를 느낀다. 4년차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김원섭(29)씨는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에 이곳을 방문하는 어르신들은 “동물 장례를 왜 치르냐”며 가족과 함께 마지못해 방문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현재는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장례를 치른다는 것.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명칭이 바뀌고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며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 같다고 덧붙였다.

E.B.바텔스의 신간 ‘아는 동물의 죽음’에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러 방식이 나온다. 기원전 3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인은 고양이가 죽으면 추모의 의미로 온 가족이 눈썹을 밀었다. 1862년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키우던 고양이가 죽자 발 하나를 보존 처리해 편지 봉투 자르는 칼로 만들었다. 인류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추모해왔다. 오늘날 한국의 반려동물 장례문화 역시 이를 보여준다.

기자가 기사를 쓰며 만난 7명의 보호자는 모두 이별 후 저마다의 슬픔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알프레드 테니슨은 말했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것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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