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이어폰을 끼고 걸을 때 전동킥보드가 쌩 달려와서 위협을 느낀 적이 많아요.”

강남역에서 만난 서유찬(26) 씨는 전동킥보드와 부딪힐 뻔한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9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사고가 빈번한 지역 8곳은 강남역사거리, 신사역사거리, 선릉역, 강남구청역 남쪽, 언주역 동쪽 등이다. 사고 다발 지역의 절반 이상이 서울 강남권에 몰려 있는 셈이다. 기자가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걸어가며 전동킥보드 운행 실태를 취재한 지난달 28일 저녁, 조금씩 비가 내렸지만 9대의 전동킥보드가 지나갔다. 퇴근 시간대의 많은 인파 속에서 전동킥보드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를 위태롭게 달렸다. 9대의 전동킥보드 중 안전 장비를 착용한 이용자는 한 명도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전동킥보드에서 내려 보행한 사람도 없었다.  

▲강남역 근처에 쓰러져 있는 전동킥보드
▲강남역 근처에 쓰러져 있는 전동킥보드

소비자원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2월, 26세 남성이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입술에 열상을 입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전동킥보드에 타고 있다가 인도 턱에 부딪혀 넘어진 것이다. 2017년 5월에는 9세 아동이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일시적인 기억 상실, 타박상, 골절 등으로 4일간 입원하기도 했다. 2인 이상 전동킥보드를 타는 것, 만 16세 미만이 전동킥보드를 운전하는 것 모두 현행 도로교통법에 어긋난다.

전동킥보드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관련 시장의 규모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동킥보드 안전 시스템은 부실하고 보험 제도에도 허점이 많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 전동킥보드 이용자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이용자가 많아지는 만큼 사고도 증가하는 추세다. 2021년 삼성화재에 접수된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는 2177건이었다. 878건이 접수된 2019년에 비해 약 2.5배 증가한 수치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전제호 책임연구원은 “전동킥보드 운행 대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주행 환경과 운행 행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며 “이제는 운행 속도 관리를 통한 사고 예방 정책을 추진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2022년 발표한 『전동킥보드 사고 실태 및 최고 속도 하향 필요성』에서 현재 시속 25km인 전동킥보드 최고 속도를 20km로 줄이면 충격량이 36% 감소하고, 15km로 줄이면 64% 감소한다고 밝혔다. 정지거리 측정 실험에서는 시속 25km로 운행 시 7m였던 정지거리가 20km일 때 5.2m, 15km일 때 4.5m로 나타났다. 운행 속도를 낮추자 돌발상황을 인지한 지점부터 멈출 때까지 주행한 거리가 짧아진 것이다. 현재 업체·지자체별 최고 속도의 규정에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현행 도로교통법은 전동킥보드의 최고 속도를 시속 25km로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고 속도를 더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전동킥보드의 속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호주는 주정부 차원에서 전동킥보드를 규제하고 있다. 따라서 주마다 전동킥보드가 주행할 수 있는 최고 속도가 다르다. QLD(퀸즐랜드주)와 ACT(호주 수도 준주)는 시속 25km로 규제하는데 반해, VIC(빅토리아주), WA(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등은 시속 10km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도 주별로 최고 속도를 달리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워싱턴 D.C에서는 시속 16km 이하로 주행해야 한다. 지난 4월 공유 전동킥보드 폐지를 결정한 프랑스 파리는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 11개 구역을 ‘슬로우존’으로 규정해 전동킥보드가 시속 10km 이하로만 주행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사고 확률이 높은 구역에서 전동킥보드의 최고 시속을 낮춰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김 교수는 “슬로우존을 시스템에 맞게끔 도입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최고 속도를 시속 15km 이하로 낮추고 헬멧을 쓰지 않게끔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 대한민국 법령상 슬로우존을 적용할 만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경현 변호사는 “슬로우존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이 제정돼야 할 것”이라며 “특히 보행자와 전동킥보드가 함께 다니는 도로에서는 시속을 10km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책임연구원도 “사고 위험이 높은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이나 생활도로, 자전거도로에서는 더 속도를 줄여야 한다”며 “야간(18~06) 시간 또한 사고 위험이 높아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광역시는 2020년 12월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안전 증진 조례’를 제정해 대여 업체들이 전동킥보드의 최고 운행속도를 시속 15km 이하로 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권고 사항일 뿐이다. 아직 전동킥보드의 최고 속도를 낮추는 법안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동킥보드가 시속 15km보다 높은 속도로 달려도 단속을 할 수도 없고, 당연히 규제도 불가능하다.

길거리에서 2인 이상이 탑승한 전동킥보드, 헬멧을 쓰지 않은 전동킥보드 이용자, 횡단보도에서도 주행하는 전동킥보드 등을 마주하는 건 흔한 일이 됐다. 김 교수는 시스템의 규제와 더불어 안전조치와 반복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교통안전공단, 관련 업체(킥고잉 등)와 함께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광주시와 청주시 등도 안전 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스윙, 지쿠, 빔 등 개인형 이동장치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중이다. 그러나 안전 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안전 교육의 대부분이 참가자들이 신청하는 구조라서, 관심이 없는 이용자들은 쉽게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 교육 및 캠페인은 시청과 경찰 모두의 관할인 만큼 협업해 활발한 홍보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역삼역 근처에서 한 시민이 안전 장비 없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역삼역 근처에서 한 시민이 안전 장비 없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보험에도 문제가 많다. 기자가 취재를 하면서 만난 시민 5명 모두 전동킥보드 보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전동킥보드의 위험성을 많이 생각해왔다는 전혜인(24) 씨는 “보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전동킥보드의 안전을 고려하는 태도가 확산되려면 일관적인 보험 체계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2021년 정부가 공유전동킥보드 업체에 제시한 보험표준안에 따르면 대인 4000만 원 이하, 대물 1000만 원 이하의 피해액이 보상 범위에 속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단체보험의 보상범위가 너무 제한적이라 보험의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보험연구원 황현아 연구위원은 “보상 범위가 자동차보험에 비해 낮은 수준인 것은 맞다”면서도 “중량 및 속도를 고려할 때 전동킥보드는 자동차에 비해 가해의 정도가 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공유전동킥보드 단체보험의 보상범위 자체가 불합리하게 제한적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향후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위해 자동차보험 수준으로 보상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는 있다”고 했다. 전동킥보드 사고로 인한 피해가 단체보험의 보상범위를 넘어설 경우, 이용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몇몇 국가들은 전동킥보드 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과 일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동킥보드 보험 의무화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김 교수는 법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 의무화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면서도 “지금 시점에서는 전동킥보드법이 제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전동킥보드 법률이 먼저 개정된 후에 보험을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책임연구원은 “보험 의무화는 장기적으로 당연히 필요하다”면서 “우선 공유서비스 업체의 보험가입 의무화부터 도입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업체가 보험 가입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황 연구위원은 보험 의무 가입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전동킥보드는 자전거와 자동차의 중간적인 성격을 갖고, 통행 방법은 자전거와 유사하다”면서 “현재 자전거에 대해서 보험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기에, 전동킥보드 보험 의무 가입의 필요성에 대한 실증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전동킥보드의 위험성 및 보험가입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확인되면, 일반적인 의무보험의 예에 준해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가능하면 전동킥보드 자체의 위험성을 고려해 별도의 보험이 마련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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