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종 사건 희생자 故 김혜빈 씨 사진 (유가족 제공)
▲최원종 사건 희생자 故 김혜빈 씨 사진 (유가족 제공)

분당 흉기 난동 사건의 피해자 김혜빈 씨(20)가 8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8월 16일 수원시 아주대병원이 유가족에게 중간 진료비를 청구했다. 금액은 2300만 원. 혜빈 씨가 뇌사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은 지 13일째 되던 날이었다. 혜빈 씨의 부모님은 누워있는 딸만 보기도 괴로웠다. 그런데도 보상 절차를 안내해주지 않았다. 성남 시청은 범죄와 관련한 제도가 마련된 것이 없어 직접 지원은 어렵다고 했다. 가해자 최원종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배상금을 즉시 받을 수 없었다. 소송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이 경우를 고려하여 국가가 먼저 치료비 등을 지급하고 이후 국가가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대위 청구를 하는 법률이 있다. 하지만 유가족이 이런 사실을 알기에는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거액의 병원비를 해결하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절망했다. 이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지시해 검찰이 병원비를 지급했다.

이기인 경기도의회 의원(국민의힘, 성남시)은 유가족과 면담을 가진 후 SNS를 통해 "피해자 가족들이 의지할 곳이 없다"고 전했다. 검찰의 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은 약 한 달분의 연명 치료비 정도였다. 그마저도 '중복 지원'은 불가했다. 가해자 최원종이 가입한 자동차보험의 손해배상금 1500만 원과 센터 지원금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 제21조에 따르면 다른 법령에 따라 이미 보상받았거나 가해자로부터 합의금을 수령한 경우 중복 지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결국 거액의 병원비를 가족들이 스스로 부담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혜진 씨의 모교인 건국대 총학생회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아주대병원이 유가족에게 청구한 혜빈씨의 중간진료비. (출처=인스티즈)
▲아주대병원이 유가족에게 청구한 혜빈씨의 중간진료비. (출처=인스티즈)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검찰, 경찰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부서에서 예산을 편성, 집행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행정 시스템상 '절차'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빠른 지원을 받기 원하는 유가족들의 심정과는 다르게 보상 처리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논란이 되었던 중복 지급 금지 원칙은 치료비 전체를 넘어선 금액을 반복해서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목원대 경찰법학과 유재두 교수는 "정부가 형사 피해자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로 즉각적인 안내를 해야겠지만, 사실 절차적인 것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행정적인 처리가 느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범죄 피해자 보상 제도의 국회 개정 요구와 관련해 유 교수는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나라의 살인사건이 9시간 30분마다 하나씩 발생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행정 체계상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부각됐다고 하여 보상을 빨리해줘야 한다는 것은 법률 집행 규정상 굉장히 까다롭다"고 말했다. "범죄 피해자 보호법에 관해서도 여러 사안에 대한 '공정성' 과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2010년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가명)'에게 법무부가 지급한 구조금이 고작 600만 원에 그쳤다. 2차 피해를 입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에게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국가 보상 액수에 분노한 국민들은 '나영이 돕기 모금운동'을 펼쳤다. 당시 법규정상 600만 원은 국가가 지급할 수 있었던 최대 금액이기는 하지만, 법무부는 국가가 범죄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금전인 구조금이 일반회계예산에 편성되어 있어 국가 예산의 한계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2010년에 범죄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별도의 기금을 조성하는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법이 제정, 시행되었다.

13년 전 '나영이' 때의 '구조금' 은 법률상 범죄 피해자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금전을 뜻한다. 구조금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유족 구조금 (피해자 사망 시), 장애 구조금, 중상해 구조금이 있다. 이 재정적인 것과 관련된 내용은 범죄 피해자 보호법이 아닌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법에 규정되어 있다. 기금법은 두 번의 개정을 통해 현재는 두 배로 지원 규모가 늘었고 구조 대상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2023년 혜빈 씨의 친구들은 서명운동에 나섰다. 범죄 피해자 지원 관련 법을 강화하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 (가명) 당시 기사 사진 (출처=네이버)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 (가명) 당시 기사 사진 (출처=네이버)

경찰대 한민경 교수 (치안 대학원 범죄학과장)는 "단적으로 말해, 범죄 피해자 보호법 및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법은 문제가 많은 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법을 운용하는 법무부가 자금 운용에 전문적인 부처가 아니고 '나영이 돕기 모금 운동' 같은 국민 성금이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에 답지하는 상황이 늘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니 현재 기금은 늘어나기는커녕 적자가 발생하는 등 기금의 안정성에 큰 위기가 닥쳤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법이 존재하는 현재에도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는 한 장해구조금이나 중상해구조금에 큰 금액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 교수는 이어 "애초에 국가가 범죄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상시적이고 계속될 국가사무들에 대한 재정인 일반회계예산에서 기금으로 전환하면 범죄 피해자들에게 지급될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다른 정책에 대한 예산은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서 증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은 제정 당시와 금액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은 현재 시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사무국장 김지한 씨는 피해자 보호법 개정과 관련해 1) 구조금 대상을 다문화 가족, 과실 범죄를 포함하는 것 2) 중상해 구조 요건 완화 등 확대 3) 구조 금액 상향 4) 사망 피해자 연령에 따른 구조금 차별화 등이 대표적인 개선사항이라고 말했다.

범죄 피해자 지원과 보호 제도 자체가 '신청주의' 지침이다. 범죄 희생자들이 피해 사실을 정부나 단체에 선제적으로 요청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이 제도적인 부분을 알기 쉽지 않다. 실질적으로는 경찰과 검찰에서 사건 발생 초기 수사 단계에서 범죄 피해 지원의 필요성을 인지한 다음 각 지원센터에 의뢰한다. 그제야 단체나 센터가 직접 나서 개입할 수 있다. 합리적 형사정책 이론은 국가가 피해자에게 일정 보상과 지원을 함으로써 피해자의 사회복귀를 촉진할 수 있고 가해자에 대한 적대감을 완화하여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아울러 이전의 가해자 중심 형사정책에서 벗어나 피해자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형사사법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범죄 현상과 범죄자에게만 관심 두고 그 뒤에 남겨져 있는 범죄 피해자에게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과연 법무부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겠느냐"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이와 같은 제도는 어떻게 작동되고 있을까? 일단 우리나라 피해자 보호법 근간은 일본 법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일본의 쇼와 55년 법률 제36호 피해자급부 법과 유사하다. 한국형사•법무정책 연구원 안성훈 연구원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의 희생자 피해 보상의 법률 시스템은 구체적” 이라고 전했다. 피해자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피해자 의견진술권 확보, 국선 변호사 선제적 지원 등 구조금의 금액의 적고 많음을 떠나서 피해자 중심으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피해자 보상 제도 역시 대부분 보상금액 한도를 제외하면 제도가 유사하지만, 아쉽게도 전 세계적으로 범죄 피해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 문제는 사회복지국가를 표방하는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들도 크게 전향적이지는 않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도 우리나라보다 법 제도나 실질적인 지원 상황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범죄 피해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 관련 국외와의 비교 법제적 검토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난 31일 김혜빈 씨의 발인식을 마쳤다. 혜빈 씨의 부모님은 "최원종의 이야기보다 혜빈이가 기억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족은 혜빈 씨의 실명과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혜빈 씨는 줄곧 자신의 그림을 SNS에 올리며 '세상이 주신 것들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선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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