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선풍기 바람 쐬는 거예요. 참는 거예요. 더 어떻게 해요. 뭐 할 게 없잖아. 할 게 없으니까 참아 그냥.”

서종필 씨(58)가 여름을 나는 방법이다. 그는 약 3평 크기 쪽방에 15년째 산다. 선풍기 1대와 가로세로 60㎝의 창 하나로 더위를 견딘다.

참을 수 없이 더운 날에는 공용샤워실에서 하루에 다섯 번씩 찬물로 씻는다. 쪽방촌은 방 안에 화장실이 없다. 건물이나 층별로 공용화장실과 공용샤워실이 하나씩 있다. 서 씨는 “이런 데 산다는 사실 자체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김춘백 씨(75)의 방은 1평 남짓이다. 손바닥 크기의 선풍기 1대와 얼굴을 내밀기 힘든 크기의 창문. 밖으로 손을 뻗으면 옆 건물에 닿는다. 옛날 텔레비전, 탁상 등 가구가 방 절반을 차지하고 남은 공간에 몸을 누인다. 0.5평이 생활공간이다. 여기서 여름을 일곱 번 보냈다.

▲ 1평 남짓한 쪽방
▲ 1평 남짓한 쪽방

7월 6일은 지구가 가장 뜨거운 날이었다. 미국 메인대(University of Maine)의 기후분석기에 따르면 이날 지구 평균 기온은 17.23도로 1979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전날 세운 17.18도라는 최고 기록을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7월 5~6일, 태풍이 지나간 8월 13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과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다. 기후 취약계층이 많이 사는 곳. 기후 위기에 영향을 받는 쪽방촌 주민, 어린이, 노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3번 출구에서 60여m 걸으니 돈의동 쪽방촌이 나왔다. 두 팔을 겨우 벌리고 설 수 있는 골목.

건물 밖을 따라 설치된 관에서 물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지난해 서울시가 설치한 쿨링포그에서 나오는 냉각수다. 그 아래 의자에 주민 10여 명이 앉았다. 주민은 민소매나 반소매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쿨링포그는 돈의동 쪽방촌 골목 일부에만 설치됐다.

동자동 쪽방촌에는 쿨링포그가 없었다. 쪽방촌 골목의 음식점 문틈으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 옆으로 부채질하는 쪽방촌 주민 20여 명이 길바닥에 앉았다. 이들은 주로 그늘진 골목에 있거나 불 꺼진 방 안에서 방문과 창문을 열고 지냈다.

쪽방촌에서 40년째 여인숙을 운영하는 하문자 씨(88)는 골목 의자에 앉아 주민과 얘기했다. 그는 “더울 때는 그늘로 나와 찬물을 마신다. 여름에 더 더워지면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앉는다”라고 말했다.

하 씨와 이야기하는 동안 골목 끝의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물을 떠 오는 주민이 보였다. 쪽방상담소는 서울시가 지정한 무더위쉼터다.

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에 따르면 서울에는 무더위쉼터가 4098곳 있다. 경로당이나 주민센터 등으로 주민에게 물과 쉴 공간을 제공한다. 공용샤워실에 의지해 생활하는 주민을 위해 지하 1층에 샤워실을 만들었다.

열악한 공용샤워실은 여름 쪽방촌의 문제 중 하나다. 쪽방 건물 복도는 성인 1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 방 사이로 공용화장실과 공용샤워실이 하나씩 있다.

공용샤워실은 허리를 펼 수 없는 높이에, 팔을 다 벌릴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세숫대야 2개와 수도꼭지 2개가 전부다. 수도꼭지 하나는 청 테이프로 고무관을 연결했다.

▲ 쪽방 공용샤워실
▲ 쪽방 공용샤워실

여름이면 이곳은 전쟁터로 변한다. 평소에도 세수하고 목욕하는 주민으로 붐비는데 여름이면 더 심해진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완전 전쟁이야. 전쟁. 여름에 워낙 덥고 씻는 장소도 한정되니까 씻다 보면 ‘야, 빨리 나와 나도 씻어야 해’ 하니까.” 동자동사랑방에서 만난 차재철 동자동주민개발추진위원회 홍보이사는 “7개 방에 사는 사람들이 화장실 하나를 공동으로 쓰다 보니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고령자는 이마저도 이용이 쉽지 않다. 백광헌 동자동주민개발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노인 같은 힘 없는 사람은 아침에 숨죽인다. 공동샤워실과 화장실이 아닌 서울역이나 다른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70대인 김춘백 씨는 “면역력이 약한데 코로나19에 감염될까 걱정돼 공용샤워실에 잘 가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쪽방촌 안에서도 누군가의 여름은 더 더웠다.

대다수가 기초생활수급자인 쪽방촌 주민에게 화장실만큼 중요한 문제가 밥이다. 주로 컵라면 등 간편식품으로 끼니를 때운다. 건물에 부엌이 아예 없거나 공용부엌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7월 6일 오후 1시, 쪽방상담소 지하 1층 문 앞. 주민 20여 명이 햇볕을 피해 모였다. 쪽방상담소에서 ‘여름 나기’ 키트를 나눠주는 날이었다. 오후 3시부터 받을 수 있는데 주민들은 오후 1시부터 줄을 섰다.

여름 나기 키트가 실제로 도움이 되냐고 묻자 김춘백 씨는 “쪽방상담소에서 물품, 동행 식당 식권을 많이 지원해 준다”라며 무척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창열 씨(52)는 “키트에 라면, 통조림이 들어 있다”며 “곧 줄을 설 것”이라고 말했다. 동행 식당은 서울시가 민간 식당을 지정해 취약층에게 하루 한 끼 제공하는 사업이다.

▲ 서울역쪽방상담소 앞에 줄이 생겼다.
▲ 서울역쪽방상담소 앞에 줄이 생겼다.

서울시가 동행 식당, 쿨링포그, 에너지바우처를 통해 기후 취약계층을 지원하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빈곤사회연대의 이재임 활동가는 쪽방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쪽방촌은 안전과 편의를 생각해 설계된 건 아니잖아요. 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넣어 임대료를 받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기 때문에 기후위기 시대에는 더 열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활동가는 ‘에어컨과 쿨링포그 설치가 집과 골목을 시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긴 하다’는 주민의 말을 전하면서도 “이것만으로는 폭염과 한파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데 왜 매년 이렇게 반복될까 하는 답답함이 있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주택을 정비하는 일은 대표적인 기후위기 ‘적응’ 대책이다. 환경부는 6월 22일 발표한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에 취약계층 실태를 처음으로 조사해서 대책을 마련하고 취약 주택을 정비하겠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기후위기 대응책은 크게 완화와 적응으로 나뉜다. 완화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기후위기를 막는 것이고, 적응은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이 쉽지 않아지면서 적응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지난해 11월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도 기후위기에 대한 적응 문제를 논의했다.

정휘철 한국환경연구원 기후변화센터장은 적응을 강조했다. “바뀐 환경에 맞출 수 있게끔 우리가 바뀌어야 해요.” 이어서 그는 “기후 적응력을 높이는 교육, 기후 관련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사회 시스템, 녹지를 늘리는 도시 계획 등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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