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이 사건 심판 청구를 기각한다.” 헌법재판소가 7월 25일 오후 2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관 9인의 전원 일치 의견이었다.

재판관들이 나가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보라색 스카프를 맨 중년 여성이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이태원 참사 유족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탄식했다. “이게 법이야?”,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태원 참사는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옆 골목길에서 일어났다. 159명이 숨지고 320명이 다쳤다. 국회는 올해 2월 9일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청구했다. 부실 대응의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였다.

쟁점은 ▲ 사전 재난 예방조치 의무 ▲ 사후 재난 대응 ▲ 사후 발언. 헌재는 모든 측면에서 탄핵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피청구인이 행안부 장관으로서 재난 대응 과정에서 최적의 판단과 대응을 하지 못했더라도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헌법상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

헌재는 이 장관이 참사 예방 부분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핼러윈 축제처럼 주최가 없는 행사는 재난안전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사고를 예상하기 쉽지 않았고, 신호와 위험성을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가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했다.

사후 재난 대응도 마찬가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 재난안전법,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행정안전부에서 ‘유가족협의회’ 등 지원을 위한 ‘행안부 지원단’ 설치를 발표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의 사후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으로 평가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입구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입구

문제의 발언은 크게 두 가지다. 이 장관은 참사 다음 날, 취재진 질문에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27일 국정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늑장 대응을 비판하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라고 반박했다.

헌재는 두 발언이 오해 소지가 있지만,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고 봤다. “압사나 피해자 용어 사용 관련한 발언, 유족명단에 관한 발언은 다소 정돈되지 못하거나 불분명한 부분이 존재하지만, 피청구인이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하였다거나 행정안전부 장관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한 취지로 보기 어렵다.”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별개 의견을 내고 이 장관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참사를 인지하고 현장 지휘소에 도착할 때까지 85~105분이 걸렸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일부 사후 발언은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를 어겼다고도 지적했다.

정정미 재판관도 이 장관 발언에 관해서는 세 재판관과 의견을 함께했다. “공직자가 하는 말의 무게는 그가 가진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다.” 당시 발언은 참사 책임 회피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언행이었다고 했다. 다만 네 재판관은 국민 신임을 박탈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행위는 없다고 봤다.

이날 방청객 5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이상민 장관과 탄핵소추위원(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은 출석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박주민 의원 등 야당 의원 4명은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았다. 탄핵 심판은 30여 분 후에 끝났고, 이 장관은 장관 직무에 즉시 복귀했다.

▲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의 기자회견
▲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의 기자회견

유가족은 헌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지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파면되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데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고, 헌법재판소는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라며 “헌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다”라고 반발했다.

기자회견은 오후 2시 50분쯤 외부인 난동으로 중단됐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이 헌재를 규탄하던 때였다. 어느 남성이 “이태원 (참사는) 북한 소행이다”라고 외쳤다.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중계하며 “좋은 날에 뭐하냐”라고 소리쳤다.

분노한 일부 유가족이 이들을 향했다. 경찰 통제로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유가족 여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2명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흐느꼈다. 119 신고를 요청하는 다급한 목소리와 통곡, 욕설이 뒤섞였다.

구급차는 오후 3시쯤 도착해 실신한 여성을 병원으로 옮겼다. 이후 3분 간격으로 2대가 더 출동해 부상자를 싣고 갔다. 시민대책회의 TF 위원인 권영국 변호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의 고통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스스로 되돌아보기를 바란다”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은 10분쯤 지나서 다시 시작했다. 이 직무대행은 감정이 북받치는 듯 목을 여러 번 가다듬었다. “방금 목격했듯, 같은 국민으로서 유가족에 공감하지 못하고 조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못된 기관을 응징하지 못하면 계속 이런 일이 생길 것입니다.”

유가족은 끝으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최선미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은 “사법은 오늘 죽었고, 국민을 보호할 대한민국 법은 없다”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먼저 지옥 불에 떨어진다. 특별법을 꼭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시민대책회의 TF 단장인 윤복남 변호사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특별법 제정 의지를 내비쳤다. 윤 변호사는 “헌재의 오늘 판결로 특별법이 더 중요해졌다. 특별조사기구를 통해 이상민 장관의 책임을 묻고, 국민에 의한 파면 운동을 전개하겠다.”

기자회견이 끝나씨만 유족은 헌재 앞을 바로 떠나지 못했다. 이 직무대행은 기자에게 헌재가 159명의 생명보다 행정부 수장을 더 중시한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오늘이 선례가 되면 아무리 많은 국민이 희생되어도 행정부에 있는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죠. 가장 우려했던 부분인데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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