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사는 입구부터 향냄새가 가득했다. 취재팀이 7월 24일 찾은 민원실 앞. 14명의 위패가 놓인 합동분향소가 있었다. 직원 2명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있었다. 분향소 옆 의자에는 수척한 여성과 넋을 잃은 듯한 노인이 보였다.

조문하러 왔다는 시민 박인기 씨(67)는 청주 오송의 궁평2지하차도 참사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참사 다음 날 현장에 12시간을 있었다. (현장을) 알려줄 테니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도청 앞에서 502번 버스를 타고 40여 분 갔다. 충청대 입구에 다다르자 그는 “이곳부터 (궁평2지하차도 일대까지) 다 물에 잠겼던 곳”이라고 했다.

폭우 흔적은 궁평3리 정류장부터 보였다. 다리 아래로 내려갔더니 강물이 범람했던 땅은 진흙투성이였다. 바닥에 발이 푹푹 빠졌다.

▲ 지하차도 참사 당일과 7월 24일 모습(윗 사진은 차효순 씨 제공)
▲ 지하차도 참사 당일과 7월 24일 모습(윗 사진은 차효순 씨 제공)

지하차도 현장은 참사가 언제 있었냐는 듯 조용했다. 위 철창엔 음료수병, 빗자루, 쇼핑백이 껴있었다. 그 뒤로 방호벽이 쓰러져 있었다. 바닥엔 물기가 여전했다.

차효순 씨(55)는 궁평1지하차도와 궁평2지하차도 사이에서 주말농장을 한다. “농장에 있는데 마당 멀리서부터 물이 스멀스멀 오더라고.” 물이 허리춤까지 한순간에 차올랐다. 차 씨는 무서워서 개만 데리고 대피했다.

다음 날 찾은 농장은 물바다가 됐다. 쌓아둔 장독대가 무너졌고 작물이 썩었다. 키우던 닭 100마리 중 60마리가 폐사했다. “살아남은 애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살 수 있었어요.”

차 씨의 주말농장 뒤 비닐하우스엔 흙이 남긴 갈색 선이 보였다. 강물 수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박 씨는 다 썩어서 못 쓰게 됐다고 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주위를 살피니 퉁퉁 불은 농작물이 버러져 있었다.

▲ 인근 비닐하우스
▲ 인근 비닐하우스

궁평1지하차도를 향해 5분 정도를 더 걷다가 노부부를 만났다. 물에 잠겨 시든 참깨 줄기에서 살아남은 부분만 잘라내고 있었다. 참깨 줄기의 아랫부분은 갈색으로 시들었고 조금 남은 윗부분만 초록빛을 띠었다.

궁평리의 지하차도는 오송역을 가기 위해 지나는 곳이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은 “참사 당일 오송역을 향하는 길에 지하차도를 지났다”며 “(참사 발생) 2시간 후에 가서 이미 지하차도가 차단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우리 딸은 버스 창가에 앉아있었고···.” 분향소 옆 의자의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곧이어 또 다른 검은색 차림의 젊은 여성이 왔다.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대화하다가 어깨를 어루만지며 울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20~30분이 지났다.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분향소에 들어섰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재단이었다. 가족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 15명이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족을 위로하러 찾아왔다. 국화꽃을 놓고 향을 피웠다.

“실례가 되겠지만 힘을 내셔야 합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남성이 말했다. 다른 이들도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 의자에 있던 노인은 대화를 듣다가 눈을 질끈 감곤 고개를 하늘 위로 들었다.

▲ 오송역 버스정류장의 추모 공간
▲ 오송역 버스정류장의 추모 공간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는 “조문객 쉴 곳도 없고 대화 나눌 곳도 없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분향소 옆에는 ‘분향소 조문객 휴게공간’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그곳은 민원실이었다. 민원실 구석의 휴게공간에 앉으니, 민원을 처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족은 휴게공간 대신 민원실 앞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마저도 오가는 시민이 있어 앉았다 서기를 반복했다. 분향소에는 유족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유족을 위한 배려도, 떠난 사람을 향한 추모도 찾기 어려웠다. 향을 피운다는 말 그대로 ‘분향’만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은 조문록을 쓰고 떠났다. “다시는 이런 참가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 지하차도 희생자 유족도 떠났다. 조문록에 유족이 쓴 듯한 글이 보였다. “엄마,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편안하세요.”

합동분향소를 찾은 추모객 윤정수 씨(63)는 “참 안 됐죠. 젊은 나이에···”라고 말했다. 이날 179명이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7월 20일~24일까지 방문한 사람은 1358명.

직원 둘만 남은 분향소를 뒤로 하고 버스를 타고 오송역으로 향했다. 오송역 7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 추모 공간엔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오늘 버스를 타고 오송역을 지나면서 내내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남겨진 유가족분들의 시간이 멈춰있지 않고 흐를 수 있게 함께할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들아! 내 아들로 32년 동안 살아줘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 행복해야 해. 아들 많이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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