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 좋음’, ‘영업직과 잘 맞음’ 권지현 씨(24·여)는 인터넷에 뜬 AI 채용 면접 결과를 보고 당황했다. 30분가량 면접을 했는데 AI가 인성과 적성을 모조리 단정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는 입사 한 달 차 직장인. 취업준비생 시절에 지원했던 회사의 30% 정도가 AI로 면접했다고 한다. “AI 면접의 평가 기준을 몰라 답답했다. 항상 웃고 있을 수는 없는 건데, 안 웃고 있다고 영업을 잘 못 한다 평가하는 게 과연 공정한지 의문이다.”

AI 면접은 국내 채용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국내 기업에 AI 역량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다스아이티에 따르면 지난해 630곳 정도가 AI 역량 검사를 도입했다. LG전자, 현대차그룹과 같은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도 포함된다.

지난해 진보네트워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공공기관 45곳이 인공지능 채용을 도입했다. 이중 강원랜드, 수자원공사, 한전케이디엔은 1차 서류전형과 2차 면접전형을 인공지능에 맡겼다.

청년은 어떻게 생각할까. 6월 28일~7월 12일, 대학생 및 취업 준비 경험이 있는 20~30대 남녀 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네이버 오피스로 문항을 만들고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과 취업준비생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올렸다. ‘만일 귀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채용 과정에서 AI에 면접을 받겠습니까, 사람에게 면접을 받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7.5%(31명)가 사람을 택했다.

▲ 설문조사 결과
▲ 설문조사 결과

사람 면접관을 택한 이유는 다양했다. AI는 말에 담겨있는 간절함이나 감정을 판독하지 못할 것 같아서, 감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AI가 나를 판단할 때 오류나 편향이 있을까 봐….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공정과 신뢰, 상호작용의 부재였다. 설문에서 사람 면접관을 선택한 직장인 이승재 씨(26)는 “취업준비생 때 지원한 회사의 60~70%는 AI 면접을 했다”며 “실시간 상호작용이 없어서 잘하고 있는 건지 방향성을 잡기 힘들었다”라고 밝혔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류는 AI에 인간의 수행 능력 그 이상을 기대하는데 여전히 AI에 대한 불신이 있다”라며 “면접에서도 AI가 인간을 대체할 만한 도구로 인식되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AI 채용이 사교육 시장을 조장한다는 우려도 있다. 학원가에선 특강이 성행하고, 공간대여 사업까지 등장했다. 권지현 씨 역시 시간당 1만 원 이상을 지불하고 공간을 예약했다. 대여비가 비싸긴 했지만, 방송용 조명이 있어서 얼굴이 밝아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중학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AI 채용은 알고리즘이 어떤 데이터를 학습하고, 어떻게 결정하는지 밝히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AI 면접을 대비한 고액 과외가 생기는지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심리적으로는 도움 될지 몰라도, 점수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

황용식 교수는 국내 대학에서 관련 비교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대안으로 꼽았다. “대학에서 지원사업으로 AI 면접 준비에 대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한다면 사교육 의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명주 서울여대 바른AI연구센터장은 “대학입시든 기업 입사든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피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사교육 시장이 AI 면접관 사업을 구현하거나 시행하는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8월 중순부터 신입직원 채용을 시작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역시 채용 절차에 AI 면접 단계가 있다. 공사 관계자는 “AI 면접 과정이 있긴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합격·불합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다음 전형(실무면접)에서 참고 자료로만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AI 채용의 공정성을 담보할 장치는 없다. AI 면접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은 AI 규제법안을 6월 14일 통과시켰다. 인공지능을 위험도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하고 위험 등급에 비례해 관리한다. 이중 채용은 2단계 ‘고위험(High risk)’ 영역으로 분류됐다.

미국 뉴욕시도 AI 채용을 규제할 ‘NYC144’ 법안을 7월 5일 도입했다. 채용이나 승진에 AI를 활용하는 기업이 인종이나 성차별 가능성을 매년 점검 및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김명주 센터장은 기업이 AI 면접에 대해 면접자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기업은 AI 면접관을 통해서 어떤 인재상을 뽑기를 원하는지 미리 고지해야 하고, AI 면접 여부에 대한 면접대상자의 선택권 보장, AI 면접 녹화물에 대한 처리 선택권 등도 명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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