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충남 공주시의 공주대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 강당에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7·18공주사대부고병영체험학습참사 희생자 5명을 향한 노래. 7월 18일,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던 날이다.

이 학교 2학년은 2013년 7월 17일 충남 태안군의 사설 해병대 캠프로 수련회를 갔다. 학생들은 다음 날 오후 4시 30분쯤 교관 지시에 따라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구명조끼가 없었다. 학생 30여 명이 물살에 휩쓸렸다.

학생들이 보트에 올라타자 교관은 인원을 확인하지 않고 육지로 돌아갔다.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다섯 학생이 있었음에도. 교관은 1시간 지나서야 캠프에 사실을 보고했고, 학교 관계자들은 2시간 후에야 상황을 파악했다.

태안 해경에 첫 신고는 오후 5시 41분 접수됐다. 잠수 요원이 없고 날이 어두워서 수색이 늦어졌다. 실종 학생들은 다음날 새벽, 시신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동환 이병학 이준형 장태인 진우석.

▲ 병영체험학습 참사 희생자 기억의 날
▲ 병영체험학습 참사 희생자 기억의 날

추모식은 7월 18일 아침 10시에 시작했다. 희생자 4명의 유가족과 공주사대부고 및 공주대 교직원, 후배 재학생, 희생자 동문 등 약 400명이 참석했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삼풍백화점, 씨랜드, 대구지하철 등 다른 재난 유족이 함께했다.

“동환아, 병학아, 태인아, 준형아, 우석아.” 윤현수 공주사대부고 교장이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추모사를 낭독했다. “너희의 삶이 부끄럽지 않도록 언제나 안전을 먼저 생각할게.” 국민의 힘 정진석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전 국회의원이 애도의 뜻을 밝혔다.

공주사대부고 57회 동문 대표 강우승 씨(27)가 연단에 올라 편지를 읊었다. “너희를 생각하면 행복과 그리움이, 너희의 부재를 생각하면 슬픔과 황망함, 분노가 떠올라.”

유족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강 씨와 나란히 선 동문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추모객도 눈물을 훔쳤다.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슬픔을 넘어, 너희 죽음의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고 잊지 않으려 해. 여전히 많이 고맙고 그립고 사랑한다.”

이병학 군의 아버지인 이후식 씨가 유가족 대표로 추도사를 읽었다. “참사 당일 자식의 일탈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목이 메는지 잠시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그날 책임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자식이 참사에 희생됐어도 똑같이 행동하시겠습니까?” 10년이 지났지만, 가슴에 남은 상처는 여전했다.

이 씨는 뼈아픈 과거를 교훈으로 삼아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기댈 곳 없는 재난피해자들의 동반자가 되어 우리의 억울하고 참담했던 과거의 전철의 밟지 않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유족은 참사를 기억하고 안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오성장학회를 2014년 만들었다. 해마다 공주사대부고 재학생 5명에게 장학금을 보냈다. 이날은 10주기를 맞아 장학생을 10명으로 늘렸다.

이승준 군(18)은 교내안전의식고취 백일장 대회에서 ‘다섯 새싹들’로 입상해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참사가) 우리 사회의 일이라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나가고 싶다”라고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혔다.

“그 일을 겪기에는 너무나 작은 그 존재들의
고통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우리는
이렇게 그들을 매년 떠올리고 생각하며
그 마음들을 모아 뿌리를 다시금 내릴 수 있게 육지를 만들고
뿌리내린 새싹들 위로 그들을 위한 눈물을 주어
우리 속에서라도 그 새싹들의 꽃을, 미래를
사랑을 보고자 합니다.” (이승준, ‘다섯 새싹들’ 중)

▲ 추모 카페 ‘다섯손가락’
▲ 추모 카페 ‘다섯손가락’

추모식은 오전 11시에 끝났다. 참석자들은 교정 안의 추모 카페 ‘다섯손가락’으로 갔다. 1층은 참사에 관한 기록을 전시한 공간, 나머지 층은 도서관이다. 벽면에는 사고 경위와 함께 피해 학생들의 짧은 생을 담았다.

김동환 군은 화학자를 꿈꿨다. 난치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었다. 아버지 김영철 씨는 김 군을 떠나보내고 편지를 썼다. “내 사랑.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내 아들 동환아. 이 일만 아니었다면 너와 얼마나 행복한 동행을 할 수 있었을까.”

이병학 군의 희망은 프로파일러. 범죄 예방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에서도 운동을 잘해 인기가 많았고 친구들이 잘 따른다고 엄마한테 자랑하곤 했지요. 경찰대에 가서 프로파일러가 되겠다던 든든한 아들이었는데….” 이 군의 손목시계는 5시 48분에서 멈췄다.

이준형 군은 의사가 되어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다. “보기에도 아까운 감사한 존재.” 부모는 아들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군은 그날 바다에 뛰어들어 여러 친구를 구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여한 의사자 증서가 유품으로 남았다.

장태인 군은 수학을 좋아해 회계사가 되려고 했다. 바쁜 와중에도 어머니에게 편지를 쓸 정도로 살가웠다. “귀가하고 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 엄마한테 편지를 쓰는 거네요. 그만큼 가장 소중하고 귀하다는 거겠죠. (중략) 생신 축하드리고 건강하세요. 저도 안 아플게요.”

진우석 군은 방송기자나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중학생 때도 왕따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곁을 지켰다.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조금 일찍 데려가셨나 봐요.” 진 군의 부모는 아들 유품의 설명란에 이렇게 썼다.

공주사대부고 57회 박지수 씨(27)는 친구를 기억하고자 모교를 찾았다. 그는 유품을 한동안 들여다봤다. “이런 참사가 반복돼선 안 되는데 우리 사회에 계속 일어나는 게 안타까워요.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책을 세우길 바랍니다.”

▲ 유족이 천안공원묘원에서 헌화하는 모습
▲ 유족이 천안공원묘원에서 헌화하는 모습

참석자들은 오전 10시 반쯤 충남도교육청을 찾았다. 안전한 교육 현장을 만들자는 마음이 모여, 2019년 이곳 1층에 학생안전체험관이 생겼다. 병영체험학습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메모리얼관’에는 충남 전역의 안전사고를 담은 공간과 참사 희생자를 위한 애도 공간이 있다.

건물 뒤편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탑과 다섯 학생의 흉상이 세워졌다. 참석자들은 추모비 앞에서 묵념하고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흉상을 바라보던 어느 남성이 나지막이 말했다. “똑같이 생겼네.”

참석자들은 체험관을 둘러보고 천안공원묘원으로 갔다. 버스로 40분을 달려 오전 11시쯤 도착했다. 묘역에 커다란 노란색 천막 2개를 펼쳤다. 그 아래 유족과 공주사대부고 동문, 재학생, 교직원이 가득 섰다.

다섯 학생은 같은 묘비 아래 함께 잠들었다. “봉황의 꿈을 채 피우지 못한 맑은 영혼들. 두려움 가벼이 여기고, 기꺼이 자신을 불태워. 고이 잠들어 우리 사회를 비추는 등불이 되다.” 유족들이 하얀색 국화꽃을 한 송이씩 놓았다.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천막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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