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서…워…요.” 낙마가 무섭지 않냐고 물었더니 신민기 씨(23)가 웃으며 답했다. 그는 뇌병변 1급 장애. 5음절을 말하는 데 5초가 걸렸다.

사지 경직으로 인해 팔다리가 따로 놀았다. 몸 뒤편으로 꺾인 오른손이 허공에서 타원을 계속 그렸다. 질문이 이어질수록 머리가 시계 방향을 그리다가 이내 반대로 돌았다.

신 씨와 같은 장애인 승마 선수 10명이 6월 24일 오후 1시쯤 경기 화성시 궁평캠프승마장에 모였다. 제2회 경기도장애인승마협회장배 전국승마대회를 하루 앞두고 코스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3시간 30분가량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이튿날, 대회가 열리는 실내승마장으로 갔다. 오전 10시 30분쯤 대한장애인승마협회 최지훈 사무국장이 경기 방식을 설명했다. 선수는 장애 정도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장애가 심할수록 등급이 쉽다.

대회에서는 장애인 선수가 마장마술을 펼친다. 비장애인 승마대회와 달리 평보(110m/분) 속보(220m/분) 구보(320m/분)로 코스 20여 개를 정확하게 완주해야 한다. 신 씨는 장애 정도가 가장 심한 ‘Grade 1’이라서 평보로만 완주하면 됐다.

▲ 신민기 씨가 말에 올랐다.
▲ 신민기 씨가 말에 올랐다.

‘Grade 5’의 심영철 선수가 오전 11시에 먼저 마장마술을 펼쳤다. 왼쪽 다리에 장애가 있어 왼발을 말 등자(발 받침대)에 묶었다. 심판이 자명종을 울려 경기 시작을 알리자 말 ‘코삿’이 앞발을 높게 치켜들었다.

가로 20m, 세로 60m의 코스를 가볍게 평보로 지나고 대각선을 그렸다. 구보까지 끝난 트랙 위에 말 발자국이 유선형으로 찍혔다. 57.897점. 국가대표 선발전은 아니었으나 선발 기준(55점)을 넘었다. 경기는 Grade 4, 3, 2, 1 순으로 이어졌다.

신 씨는 ‘Grade 1’ 부문에서 61점을 넘겨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말에 오르는 순간부터가 힘들었다. 대회 전날에도 말에 오르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성인 남자 둘이 부축했지만 그는 말 등자에 발을 걸 때도 자꾸만 헛디뎠다. 말에 오른 몸이 2시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경기도장애인승마협회 박윤재 국장이 신 씨 허리춤의 끈을 안장 쪽 쇠붙이에 묶었다.

걱정하는 박 국장을 뒤로하고 신 씨는 고삐를 꽉 붙잡았다. 코스를 완주하고 그는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재밌다.”

승마 사랑은 15살에 싹텄다. 재활치료에 승마가 특효약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다. 다리에 근육이 붙자 말 사랑에도 탄력이 붙었다.

승마는 삶의 유일한 낙. 어머니 최상숙 씨(50대 초반)는 “취미도 없는 아이였는데 말 타는 건 참 좋아했다”고 말했다. 수차례 낙마했지만 말은 여전히 그를 미소 짓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보다는 완주에 의의를 뒀다. 점수가 발표되기 전에도 “완주했다는 사실 자체가 만족스럽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른 선수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롤모델”이라고 덧붙였다.

▲ 허준호 씨
▲ 허준호 씨

대회 인기스타는 ‘Grade 3’의 허준호 씨(21)였다. 갈색 ‘울프컷’ 머리를 하고 벨기에 태생의 ‘Sir 오제이(이하 제이·16)’를 몰자 이목이 집중됐다. 핑크색 안장과 엉덩이에 갈색 털을 깎아 만든 하트는 제이의 트레이드마크다.

허준호 씨는 11년차 승마 선수. 명실공히 장애인 승마계 1인자다. 66.422점을 받아 Grade 3 부문과 전체 1등을 차지했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전남영산강배 전국장애인승마대회에 이어 2연패다.

어느 심판은 “이 정도면 비장애인도 참가하는 엘리트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라고 했다. 코치 박경희 씨(40)도 그의 장점을 ‘레인백(후퇴)’으로 꼽고 허 씨가 속보, 2횡·4횡보에 모두 능통하다고 했다.

허준호 씨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팔·다리에 편마비가 왔다. 컴퓨터 마우스, 야구 글러브 등 초등학교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건 오른손잡이와 비장애인의 전유물이었다. 장애인이자 왼손잡이에게 승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승마 덕분에 장애를 이겼다. 오른쪽 다리에 근육이 붙어 혼자서 걷게 됐다. 오른손 마비는 현재진행형이다. 보톡스를 맞으면 손을 펼 수 있지만 ‘죔죔’이 되지 않아서다. 허준호 씨는 보톡스를 맞은 날에는 고삐가 손에서 빠져나간다고 했다.

그런 허준호 씨에게 아버지(허윤 씨·55)는 든든한 존재다. 대한승마협회가 장애보조기구를 지원하지 않자 유럽에서 직구했다.

지난해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정기룡장군배 전국승마대회’에서 허준호 씨는 꼴찌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다. 비장애인 선수가 함께 뛰는 엘리트 시합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장애인은 애초에 시작점을 꼴찌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비장애인 선수 5명을 제쳤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인 셈”이라고 조언했다.

“준호 최대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에요.” 아버지 허 씨의 말이다. 두 부자는 이번 대회를 더 큰 꿈을 위한 발판으로 여겼다.

올해 목표를 묻자 허준호 씨는 웃으며 “1등을 달려가는 만큼, 장애인 승마의 새로운 길을 여는 선구자가 꿈”이라고 했다. 국가대표에 선발돼 유럽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국내 최초 패럴림픽 선수가 되는 게 버킷리스트다.

▲ 장애인 선수들
▲ 장애인 선수들

경기를 보던 강명숙 씨(58)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는 “부모가 헌신적으로 보살핀 끝에 선수들이 완주하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안양에서부터 경기를 보러 왔는데, 강 씨는 경기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자명종이 다시 울리고 신 씨가 심판에게 인사했다. 허리춤에 묶인 끈을 풀고 말에서 쓸려 내려온다. 기자를 보고 신 씨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안…녕…히…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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