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핸드폰 화면이 반짝하더니 알림이 왔다. LH청년전세임대 전담 부동산 네이버밴드에 새 매물이 올라왔다는 글이다. 권혁범 씨(25)는 부동산에 바로 전화했다.

“저 방금 올리신 매물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지금 찾아가도 될까요?”
“아, 방금 매물 보셨구나. 지금 벌써 2팀이나 보러 오고 계세요. 오실 거면 빨리 오셔야 돼요.”

권 씨는 통화를 하자마자 인천 본가에서 서울로 갔다. 앞서 찾아온 사람들이 계약하지 않아 지금 집(서울 관악구)에 들어갔다. 다른 계약자가 나올까 서둘러 집을 둘러보고 가계약금을 넣었다.

권 씨는 2022년 4월 1일 LH 청년 전세 임대 3순위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고 전쟁 같은 매물 찾기를 거쳐 6월 6일 결국 입주에 성공했다. 전세가로 7500만 원인 집이지만 7300만 원을 LH 전세 대출로 충당했다.

보증금은 200만 원. 매달 관리비와 보증금 이자로는 15만 원을 낸다. 가격 면에서는 분명 강점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LH 전세 대출이 가능한 매물 자체가 별로 없는데, 이 제도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극심한 경쟁에 내몰려요.”

서울 강동구에 사는 장은아 씨(25). 출퇴근 시간이 길어도 상태가 좋은 집을 찾고자 오랜 기간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해서 직장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앞이 막히지 않은 25㎡짜리 집을 찾았다. 그런데 계약 와중에 시세가 내려가 버팀목 대출을 받지 못할 처지가 됐다.

청년 전용 버팀목 대출은 전세자금이 부족한 청년(19~34세)에게 2억 한도 내에서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다. 금액은 집의 공시가 혹은 KB부동산시세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집 값이 떨어지면 대출 가능한 금액도 줄어들 수 있다.

“집 시세가 내려가면 전세금도 낮춰서 계약을 해줘야 하는데 집주인은 그렇게 잘 안 하죠….” 장 씨는 결국 매달 5만 원을 집주인에게 내는 조건으로 전세 보증금을 1000만 원 낮춰 버팀목 대출 기준을 맞췄다. 기본 자금이 넉넉지 않은 청년에겐 이런 점도 혼란이다.

집값은 올랐고 조건에 맞는 매물을 찾기는 힘들고, 찾더라도 만족도가 떨어진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만만치 않다.

대구 출신 김세훈 씨(25)는 서울권 대학에 입학해 자취를 시작했다. 부동산 중개 앱을 통해서만 집을 구하니 정보를 얻을 길이 많지 않았다. 괜찮은 매물을 발견해 KTX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보면 허위 매물이 많았다.

“집을 알아보려고 서울로 올라왔다가 호텔에서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시간뿐 아니라 부가적인 비용이 많이 들었죠.” 그렇게 해서 찾은 집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은 전형적인 대학가 주변의 월세 50만 원짜리 집이었다. 창이 작고 햇빛이 들지 않았다.

역세권청년주택 혹은 행복주택을 알아본 적은 없냐고 묻자 그는 “해본 적 있어요. 근데 문제는 당첨 확률이 로또 같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제대 후에 집을 구할 땐 거의 매일 행복주택 사이트에 들어갔다. 올라오는 매물은 모두 신청했다. 하지만 모두 떨어졌다. 결국 군대에서 모은 돈과 부모 지원을 받아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0만 원인 지금의 집을 구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직장인 김민주 씨(24)는 본가가 수원이다. 가격을 택하고 집 컨디션은 포기했다. 창을 열면 맞은편 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소득공제를 이유로 계약이 파기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김 씨는 평수가 넉넉하고 남향에 가격까지 만족스러운 집을 찾아 계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월세 소득공제를 신청해도 괜찮다던 집주인이 얼마 안 가 입장을 바꿨다. 공제 신청을 안 하겠다고 설득했지만 집주인은 직장인 말고 학생만 받겠다며 계약을 거절했다.

▲김세훈씨 집 부엌 모습(왼쪽). 김민주씨 집 창문을 열자 바로 벽이 보인다.
▲김세훈씨 집 부엌 모습(왼쪽). 김민주씨 집 창문을 열자 바로 벽이 보인다.

취업준비생 송모 씨(25)도 작년 8월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해 12월 입주했다. 코로나가 풀리며 서울로 오는 학생이 늘어 부동산 중개인들이 역대급이라고 말할 정도로 매물이 없었다. 20만 원 정도씩 오른 시세도 부담. 전세 사기 보도가 쏟아질 때라 전세 매물을 구하기 겁났다.

2021년 수도권의 PIR(price to income ratio) 지수는 10.1. PIR 지수는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수를 뜻한다. 10년 동안 번 소득을 모두 모아야 집 1채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의 PIR은 15.4로 더 높았다.

평생을 세 들어 산다는 렌트제너레이션(Rent Generation)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가구주가 만 19세~34세인 청년 가구의 81.6%가 임차 형태로 거주한다는 국토교통부 발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청년들은 ‘서울 집중’이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도, 직장도, 문화공간도 다 서울에 집중돼니 돈 없는 20대도 무리해서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실정인 거죠. 서울 외 지역에 거주해도 괜찮은 사회가 오지 않으면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권혁범 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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