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헌혈의 날을 맞아 헌혈 버스가 6월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들어섰다. ‘헌혈로 사랑을 전하세요’라는 문구가 보였다. 주변은 한산했다. 시민 대부분이 그냥 지나쳤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6시간 동안 25명이 버스에서 헌혈했다.

버스 안에는 침대 4개가 보였다. 이 중 침대 1개에만 헌혈자가 있었다. 취재를 요청하자 간호사가 기자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취재하러 왔어요? 일단 문진부터 해봐요.” 헌혈에 참여하려면 문진표를 써야 한다.

기자는 6월 1일과 7일, 14일, 15일에 서울 시내 헌혈의 집 2곳과 헌혈 버스 1대를 찾았다. 하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 검사를 했다. 기자에게 이렇게 권하는 이유는 ‘젊은 피’가 부족해서다. “젊은 사람들, 특히 고등학생은 거의 보기가 힘들죠.” 류금영 헌혈의 집 신촌센터장의 말이다.

6월 15일 오후 2시쯤 서울 마포구 헌혈의 집 홍대센터에는 대기자가 4명 있었다. 이 중 20대로 보이는 이는 1명이다. 전에는 젊은 층이 많았다고 한다. 엄희정 헌혈의 집 홍대센터장은 “10년 전만 해도 중장년층 헌혈이 부족하다고 홍보했는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라고 했다.

▲ 서울 서대문구 헌혈의 집 신촌센터
▲ 서울 서대문구 헌혈의 집 신촌센터

서대문구 헌혈의 집 신촌센터도 마찬가지. 6월 7일 낮 12시, 3명이 있었는데 대학생은 1명이다. 서강대 장주형 씨(25)는 이날 처음 헌혈했다.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혈액을 구하는 글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 시험 기간이라 미루다가 시간을 냈다. “혈액형이 AB형인데 흔한 형이 아니어서 끼리끼리 돕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헌혈하러 왔다.”

헌혈의 집 벽에는 ‘헌혈하고 열공해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2장 붙었다. 센터는 헌혈자에게 근처 스터디카페 이용권을 준다. 10~20대를 겨냥한 이벤트. 류 센터장은 “헌혈자가 하루 평균 50명 오는데 20대는 30% 정도이고 10대는 거의 없다. 우리 센터는 대학가에 있어서 그나마 젊은 사람이 많은 편이다.”

헌혈은 만 16세부터 69세까지 할 수 있다. 그간 10대와 20대가 혈액 수급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학교와 군대에서 단체 헌혈을 많이 했던 덕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전체 헌혈 건수에서 16~29세가 78.7%였다. 이 비중은 2017년까지 70%대를 유지하다가 2018년부터 줄기 시작해 2022년에는 54%까지 떨어졌다.

인구구조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70만 명대이던 출생아가 2000년대 들어 40만 명대로 줄었다. 저출생·고령화로 피를 공급하는 인구가 줄고, 피를 받아야 하는 고령층이 늘었다.

특히 10대 헌혈자가 부족하다. 적십자사에서 25년 일한 류 센터장은 고등학생 헌혈 참여가 크게 줄었다고 느낀다. “요즘 헌혈하러 오는 10대는 전무해요.” 헌혈의 집과 버스를 나흘간 취재했는데 기자는 10대를 보지 못했다.

광화문 헌혈 버스 앞을 지나던 예일디자인고 2학년 윤채린 양(18)은 헌혈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단체 헌혈에 참여하면 과자를 준다고 하는데 과자 먹으려고 헌혈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친구들도 학교에서 단체 헌혈할 때 말고는 헌혈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만 16~19세 헌혈은 2012년 104만 8434건에서 2022년 46만 2186건으로 10년 사이에 절반 넘게 줄었다. 엄 센터장은 “코로나19 이후로 학부모 반대 때문에 단체 헌혈을 안 하는 학교가 많아졌다”고 했다. 감염이나 부작용을 걱정해서라고.

대학 입시에 봉사 시간 비중이 줄어든 점도 원인이다. 교육부가 2024년부터 대입에서 봉사활동 점수 비중을 크게 줄이는 바람에 봉사 시간을 채우려고 헌혈하러 오는 10대도 이제 거의 없다고 류 센터장은 말했다.

청년층의 헌혈 공백은 중장년층이 메운다. 엄 센터장에 따르면 중장년층은 베이비붐 세대로서 과거에 활발히 헌혈했던 만큼 지금의 젊은 층도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위해 헌혈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헌혈의 집 신촌센터에서 만난 이상훈 씨(47)는 젊은 시절부터 헌혈에 여러 번 참여했다. 처음 헌혈한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여러 이유로 헌혈을 꺼리는 사람도 가벼운 마음으로 가까운 헌혈 센터에 가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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