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특권폐지’라고 쓰인 주황색 수건을 펼쳐 보이며 “국회의원 특권 폐지” 구호를 외쳤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는 지난 4월 16일 광화문에서 발대식을 가진 후 ‘특권폐지 서명운동’을 벌여왔다. 집회의 주요 요구사항은 ▲국회의원 정원 감축 ▲국회의원 임금 삭감 ▲보좌진 감축 ▲불체포특권·면책특권 폐지 ▲선거비용환급 폐지 및 후원금 제한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이다. 당초 주최 측은 참가자들이 손을 맞잡고 국회 주변 2.5km를 포위하는 ‘인간띠 국민행동’을 계획했지만, 법원의 허가를 받지 못해 행진으로 대체됐다.

▲ ‘특권폐지’라고 쓰인 주황색 수건을 든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 ‘특권폐지’라고 쓰인 주황색 수건을 든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기자는 오후 1시 3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집회 시작 30분 전이었다. 시위 장소와 가장 가까운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입구에서 주최 측 관계자가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기자가 손을 뻗어 종이를 받아 가자 “젊은 사람은 처음 받아 간다”며 기뻐했다. 집회 현장은 50대부터 70대로 보이는 참가자가 대부분이었다. 30대 이하로 보이는 이들은 기자와 경찰, 유튜버뿐이었다.

최고 기온 28도를 기록한 한낮 무더위에도 집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1시 50분쯤 주최 측에서 준비한 1,000개의 의자가 가득 찼다. 마련된 자리를 채우고도 양쪽으로 인파가 줄지어 서 있었다. 실제 참가자는 대략 3천 명가량 추정됐다. 곳곳에 부산, 대구, 경남, 전주 등 지역 본부 깃발도 눈에 띄었다. 경남 창원에서 온 김혜실 씨(58)는 “신문에 실린 특권폐지운동 광고를 보고 집회 참가를 신청했다”고 했다. 그는 집회 참가를 위해 오전 7시부터 전세버스를 탔다. 주최 측에 따르면 사전 참가 신청에서 개인 대 단체 참가자의 비율은 1:1 정도였다.

▲ 발언하는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좌), 장기표 상임공동대표(우)
▲ 발언하는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좌), 장기표 상임공동대표(우)

오후 2시 5분쯤 최성해 상임공동대표의 개회 선언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첫 발언자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55)이 나섰다. 조 의원이 “대한민국은 일도 안 하는데 국회의원 숫자가 너무 많다”고 말하자 참가자들이 “맞다”며 큰 소리로 동의를 표했다. 조 의원은 지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공약했던 3폐 운동(비례대표제 폐지·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폐지·정당 국고보조금 폐지)의 내용을 읊으며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조경태·최재형·최승재 세 사람.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최승재 의원은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를 만들 때부터 국회 소통관과 소회의실을 빌려주는 등 단체의 활동을 지원했다.

장기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도 연설대에 올랐다. 장 대표는 "불법적인 특권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은 아무리 그것이 불법적이고 파렴치한 것이라 하더라도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며, "나라의 주민인 우리 국민이 나서서 간섭할 뿐만 아니라 폐지하라고 여기에 모였다"고 말했다. 최우성 청년위원장(28)은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국회의원 스스로) 포기할 수 있다. 의원 모두가 포기한다면 일시적으로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후 헌법 개정을 통해 완전히 폐지하는 순서로 가야 한다고 했다.

김인배 홍보위원장(61)은 “발대식 때보다 사람도 많아졌고 (열기도) 더 뜨거워졌다”며 그 원인을 ‘김남국 코인 사태’에서 찾았다. 그는 김 의원 관련 논란을 특권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국회의원은 연봉도 세고 갖은 특권도 가진다. 보좌관도 9명까지 붙여주는데, 돈 걱정, 사람 걱정 없으니 감히 허튼짓하는 거다. 자기가 발로 뛸 수밖에 없으면 못 그럴 텐데, 알아서들 해주니 그러는 거 아니겠나.” 집회 한쪽에는 “국회의원 특권의 끝판왕”이라며 김남국 의원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 특권폐지 사행시(대상작)를 쓴 종이를 보여주는 참가자(좌), 국회의원 관련 설문을 진행 중인 유튜버들(우)
▲ 특권폐지 사행시(대상작)를 쓴 종이를 보여주는 참가자(좌), 국회의원 관련 설문을 진행 중인 유튜버들(우)

이날 기자들이 만난 참가자들 대부분은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거나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김 홍보위원장은 참가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대체로 국민의힘 쪽이 많은 것 같다”면서도 특권폐지운동은 정파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원천적 방향은 좌우, 진보와 보수의 구별을 넘어 제도권의 기득권 카르텔을 없애는 게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에서 왔다는 이종열 씨(70)는 가장 시급히 폐지해야 할 특권이 뭐냐는 질문에 “이재명 불체포 특권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 국민의힘(의원)은 구속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였다는 김정은 씨(56)는 “(문재인 정부가) 사람이 먼저라고 하더니 아니더라”며 “지금은 양당제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싫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 본격적인 행진 시작 전 수건으로 띠를 만들어 보이는 참가자들(좌), 국회 건너편 인도로 행진하는 대열(우)
▲ 본격적인 행진 시작 전 수건으로 띠를 만들어 보이는 참가자들(좌), 국회 건너편 인도로 행진하는 대열(우)

3시 20분이 되자 행진이 시작됐다. 법원 미허가로 손을 잡고 2.5km의 인간띠를 만들려던 계획 대신 행진을 택했다. 대열은 소규모 국회 행진 조와 장기표 대표를 필두로 한 당사 행진 조, 국회 앞에 남은 조까지 크게 세 무리로 나뉘었다. 국회 주위 행진이 50명으로 제한된 탓이다. 영등포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오늘은 회기가 없어서 (일부라도 행진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허가된 50명을 넘어 일부가 국회 쪽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신고 좋아하네!” 참가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경찰의 제지에 따라 예정된 경로대로 행진하자고 중재하던 이도 있었다.

국회 담장 앞에서 버티던 무리는 경찰의 해산 명령으로 흩어졌다. 경찰이 주최 측 신고 내용을 근거로 50명 이외의 인원은 모두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해서다. 국회 쪽으로 행진하려던 일부가 경찰과 대치해 당사 행진 조가 모두 모이기까지 시간이 지체됐다. 선두에 선 주최 측 관계자는 “이 집회를 하기 위해 경찰과 무수히 많은 협의를 했다”며 경찰의 안내를 잘 따르라고 당부했다. 이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강조해야 한다”고 참가자들을 설득했다. 이들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지나는 경로로 행진했다.

국회 쪽으로 간 이들은 중간중간 멈춰 국회 쪽을 향해 “국회의원 특권 폐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 중년 여성은 울타리 안쪽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을 향해 “보좌진 니네도 똑같다. 지금 커피가 넘어가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50명의 참가자는 약 1시간에 걸쳐 2.5km를 행진한 후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인근에서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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