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지난해 5월 새벽 귀가하던 여성을 10분간 쫓아가 오피스텔 1층에서 무차별 폭행했다.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은 경찰 조사 단계에서 신상 공개가 결정되지 않았다. 그는 1심에서 살인미수 혐의가 인정돼 징역 12년을 받았다.

검사는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피고인은 양형이 너무 무겁고, 살인을 저지를 의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에서 성범죄 정황이 드러나자 검찰은 강간살인미수로 공소장을 변경하고 징역 35년을 구형했다. 선고 공판은 6월 12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렸다.

301호 법정 앞은 취재진과 방청객으로 가득했다. 1시간 전부터 20여 명이 기다렸다. 검은 원피스 차림의 피해자는 지인으로 보이는 여성들과 함께 법정 입구에 앉았다. 재판 10분 전, 법정 직원이 사건 당사자, 기자, 일반 방청객 순으로 입장하라고 말했다.

▲ 부산고등법원 301호 법정 앞
▲ 부산고등법원 301호 법정 앞

문이 열리자 피해자와 이석재 변호인이 먼저 들어갔다. 방송국 카메라 기자가 피해자 머리카락을 가리켜 “가발인가? 머리채 끝이 갈라졌네”라고 말했다. 피해자 지인이 눈을 흘겼다.

이어서 취재진 40여 명과 방청객 30여 명이 들어갔다. 80석이 모두 찼다. 법정 직원은 방청객 10여 명에게 자리가 없어 더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재판은 오후 2시 시작했다. 피해자와 변호인은 왼쪽 가장 앞줄에 앉았다. 피고인이 연한 갈색 수의를 입고 들어왔다. 그는 손을 앞으로 모았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었다.

판사는 살해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 머리 부분을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머리에 다량의 피를 흘리는 위중한 상황에서도 7분간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청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그대로 현장을 이탈했으며….”

피고인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내용도 증거로 채택했다. 그는 범행 직후 ‘살인사건 수사 과정’, ‘살인사고 미수’ 등을 찾아봤다. 피해자가 숨질 수 있었음을 알았다는 뜻이다.

피고인은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술을 마신 상태였고,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라고 했다.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씨가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다는 자료는 있지만 범행 이틀 전 복용했다는 이유다.

이어 판사가 새로 추가된 성폭력 혐의에 대해 읽었다. 오피스텔 입주민이 발견한 피해자의 청바지와 속옷이 벗겨져 있었다. 바지 안쪽에서 피고인 유전자가 발견됐다.

판사는 강간살인미수죄(성폭력처벌법 15조)를 인정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피해자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리고 손으로 부채질하며 울음을 참았다. 판사와 피고인을 번갈아 쳐다봤다. 피고인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래를 봤다. 판사는 양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성적 욕구 대상으로만 봤다. 최소한의 인격체로 배려하는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족은 신체와 정신에 중대한 피해를 입고 일상이 송두리째 파괴됐다. 피의자는 수감된 뒤에도 전 여자친구와 피해자에게 보복하겠다며 자신의 잘못을 돌리거나 법원에 대한 강한 적의를 표출한다.”

피고인은 자신을 욕하는 환청을 들었다거나 술에 취해 여성인 줄 몰랐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폐쇄회로(CC)TV에 남지 않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판사는 어머니 가출로 정상 교육을 받지 못하고 친척 집을 전전하는 등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친 점을 참작하겠다고 밝혔다. 방청객 사이에 한숨이 들렸다. “이러한 양형 이유와 판례를 종합해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했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취재진의 타이핑 소리도 멈췄다.

“피고인을 징역 20년에 처한다. 출소 후 10년간 정보통신망을 통해 신상 정보를 공개한다. 아동청소년 관련된 일에 10년간 취업을 제한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장치를 단다.” 이외에도 성폭력 교육을 80시간 이수하고 흉기 소유와 피해자 접근을 금지한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렸다. 30대로 보이는 남성이 소리쳤다. “반성해라, 반성. 20년 동안 반성해.” 법정 직원이 남성을 저지했다.

재판이 끝났다. 변호인이 법정 앞에서 취재진을 만났다. 그는 성범죄 혐의를 인정한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폭력 자체가 강력 범죄이니까 경찰 조사 단계에서 신상 정보를 공개했어야 한다, 정보 공개 기준이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부산 토막살인 정유정 사건은 잔인하고, 이 사건은 잔인하지 않습니까? 강원도 동해에서 부사관이 아내 살해하고 사체 손괴한 사건은 잔인하지 않습니까? 수사 기관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언론이 집중한 사건만 공개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변호인은 모호한 법률은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법 개정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국회 법사위에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또, 명확하지 않은 법률은 위헌적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피해자가 취재진 앞에 섰다. 변호인은 모자이크나 실루엣 처리에 신경을 써 달라고 당부했다. 피해자는 울면서 나왔다. 눈이 빨갛고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마스크 안으로 눈물이 흘렀다.

▲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어느 카메라 기자가 피해자에게 자기 카메라를 봐 달라고 말했다. 다른 카메라 기자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변호인이 “피해자 편하신 대로 하겠다”고 막았다.

피해자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울부짖었다. “저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0년 지나서 출소하면 그 사람은 겨우 50살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변호인은 여기까지 하겠다며 막았다.

피해자가 떠나자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소리친 남성이 취재진 앞에 나섰다. 이름은 엄태웅, 피고인과 구치소 동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3달 만에 피고인을 보니 살이 더 찌고 건강해 보여 화가 납니다. 그는 구치소에서 출소하면 피해자를 더 때려주겠다, 죽이겠다고 2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말했습니다.”

엄 씨는 피고인이 보복하겠다며 피해자 주소가 적힌 노트를 자신에게 보여줬다고 했다. “피고인은 부모님 돌아가시면 장례식 가서 탈옥하겠다. 다치면 병원 가서 탈옥하겠다고 했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 신상 정보를 어떻게 알았냐고 취재진이 묻자, 엄 씨는 외부 심부름업체와 지인, 민사사건 재판 자료를 통해 알아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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