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준비생 이지민 씨(22‧여)는 2022년 3월, 데이팅 앱을 내려받았다. 지운지 2년만이다. 애인과 헤어지고 1년쯤 지나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앱에 다시 가입해 잘 나온 사진 3장을 등록하고 키와 체형, 성격, 직업, 학력, 거주 지역을 입력했다.

‘딩동’하는 알림이 쉴새 없이 울렸다. 남성의 관심 표시가 쏟아졌다. 부산에 사는 모델 지망생, 옆 동네 주민인 명문대 대학생, 패션 감각이 좋은 힙합 마니아 등.

5명의 구애를 승낙하고 연애 스타일과 취향에 관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 3명과 약속을 잡았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붐비는 카페로 남성을 불렀다.

“앱이라는 온라인 공간이 아니면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효율적이고 깔끔하죠.”

데이터 분석 플랫폼 데이터에이아이(data.ai)에 따르면 한국인은 2022년 데이팅 앱에 9579만 시간을 썼다. 전년보다 7% 늘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매출 상위 30개 앱 중 3개(위피·글램‧틴더)가 데이팅 앱이다.

기자는 5월 1일부터 6월 1일까지 틴더와 글램, 위피, 아만다, 골드스푼, 스카이피플, 정오의 데이트 등 7개 앱을 써보고, 사용담을 들었다.

이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한국소비자원의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이용 실태조사’(2020년 12)에서는 응답자 300명 중 56.3%가 사진을 골랐다. 지역(16.7%)과 나이(12%), 성격 및 취향(5.7%), 직업(3%)보다 사진으로 확인하는 외모가 중요하다는 얘기.

▲ 위피의 ‘우리 동네 랭킹’ 화면
▲ 위피의 ‘우리 동네 랭킹’ 화면

기자가 쓴 7개 앱은 모두 얼굴이 잘 드러난 사진을 2장 이상 등록해야 가입을 승인한다.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의 준말인 아만다는 20분 동안 기존 회원에게 외모를 심사받아야 회원이 될 수 있다. 5점 만점에 3점 미만을 받으면 불합격. 글램과 스카이피플도 외모를 등급으로 매긴다. 글램 등급은 다이아몬드와 골드, 실버, 브론즈 순서다.

이지민 씨는 데이팅 앱의 외모 평가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어 매칭 성공률을 높인다는 설명. “저는 (사진 심사가 있는) 글램과 아만다를 주로 썼어요. (제가) 높은 등급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면 좋을테니까요.”

위피에서는 사진과 프로필을 바탕으로 이용자 랭킹을 매기는 놀이도 한다. 기자도 5월 1일 동네 인기 투표에 참여했다. 7시간 뒤 결과가 도착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56위. 오늘 위피를 이용한 25~29세 동성 친구(여성) 중 인기도는 상위 40%입니다.”

데이팅 앱은 연애‧결혼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바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배우자 선택 기준에서 직업 비중이 1996년 6.1%에서 지난해 13.7%로 늘었다. 성격(63.1%)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재산(경제력)도 같은 기간 5.4%에서 10.7%로 2배 가까이 늘어나 3위가 됐다.

▲ 스카이피플 가입 조건
▲ 스카이피플 가입 조건

직업과 학력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데이팅 앱도 등장했다. 스카이피플과 골드스푼이 대표적. 남성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거나 대기업‧전문직 종사자여야 스카이피플 가입 자격이 생긴다. 골드스푼은 자산과 수익, 직업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내야 한다.

여성의 가입 조건은 다르다. 스카이피플은 사진을 올리고 나이와 키, 체형, 종교, 거주 지역을 입력하면 끝. 골드스푼은 기존 사용자에게 사진 3장과 소개글을 평가받고, 5점 만점 중 3.4점을 넘겨야 한다. 직업과 학력 인증은 요구하지 않는다. 기자는 첫 시도에 3.2점을 받아 불합격했다. 낮은 점수를 받은 2장을 더 잘 나온 사진으로 바꾸고, 재도전해서 승인받았다.

직장인 유재호 씨(31‧남)는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애인과 2년 가까이 연애한다. 남성에게 학력과 직업 인증을 요구하는 앱은 쓰지 않았다. 다만 유 씨는 성별에 따라 다른 가입 기준을 적용하는 앱을 두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봤다.

“여성에겐 외모만 요구한다는 점이 불공평하긴 해요. 그런데 남성과 여성이 이성에게 크게 어필할 부분은 원래 다르다고 생각해요. 주변을 봐도 남성은 직업이나 학벌을 1순위로 보지는 않아요. 반대로 여성에게는 경제력이 주는 안정감이 중요할 수 있겠죠.”

편입을 준비하는 백재희 씨(22‧여)는 경제력과 학력을 검증하는 데이팅 앱을 선호한다. “출신 학교와 가정환경을 가장 중요하게 봐요. 연애를 한다는 건 결혼할 수도 있다는 건데 미래를 그려봤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 같으면 안 되잖아요.” 취업난, 물가상승 등 경기가 악화하면서 연애에서도 경제적인 조건을 더 따진다.

데이팅 앱을 쓰면 지인에게 소개를 요청하거나, 주선자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응답자 64.3%(중복응답)는 데이팅 앱을 이용하는 이유로 ‘주위에 부탁하지 않아도 돼서’라고 했다. ‘다양한 소개 상대를 선택 가능해서’(6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주점을 하는 배솔 씨(29‧남)는 틴더와 글램을 통해 여성 약 10명을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그중 2명과는 연애로 이어졌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낮에는 잠을 자다 보니 연애 상대를 접하기 어렵다. 이럴 때 온라인 만남은 좋은 대안이 된다.

데이팅 앱의 가장 큰 강점을 묻자, 배 씨는 “겹치는 지인이 없다는 점이죠”라고 답했다. “소개를 받으면 지인 눈치를 보고, 뒷말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부담이 훨씬 덜해요.”

▲ 틴더의 ‘안전한 데이트를 위한 도움말’ 화면
▲ 틴더의 ‘안전한 데이트를 위한 도움말’ 화면

부담 없이 이성을 접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사람일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도 크다. 배 씨는 두어 차례 불쾌한 경험을 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니까 제 의도와 전혀 다르게 관계가 진행된 적이 있어요. 저는 더 깊은 정서적 교류를 원했는데 원나잇스탠드를 유도하시더라고요.”

수도권 4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이현지 씨(25‧여)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앱에서 호감을 주고받은 남성이 첫 만남에 키스, 모텔 등 성적 함의가 있는 말을 이어 나갔다. “얼른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분이 전화해서 욕을 막 하더라고요. 제가 안 받으니까 친구한테도 전화해서 무서웠어요.”

앱에 올린 사진을 도용당한 적도 있다. 가입한 적 없는 데이팅 앱에서 이 씨 사진을 본 친구가 연락했다. “어렸던 때라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어요. 직접적으로 뭔가는 못 하고 그냥 넘어갔죠.”

기자가 만난 모든 취재원은 이런 위험이 있지만, 앞으로도 데이팅 앱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애를 원하는 지인에게는 앱 사용을 추천하겠다고 했다. 불확실성을 감수할 만큼 간편하고 효율적인 연애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다.

데이팅 앱을 통한 연애는 젊은 층 사이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 됐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11월 20대와 30대 남녀 250명(남 125명‧여 1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25.6%가 ‘데이팅 앱에 가입해본 적 있다’라고 답했다.

이자연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대면 소통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젊은 층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고 봤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행동 전환이 빠른 20대는 잘 모르는 상대를 만나 예의상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야 하는 옛날식 소개팅 문화를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20대가 데이팅 앱을 찾는 일반적인 이유는 새로운 만남 상대를 찾기 쉽고, 온라인 소통이 대면보다 더 익숙하고 편안하며, 관계에 대한 통제가 오프라인보다 쉽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성세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카센터를 하는 김인규 씨(47‧남)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사람이 많다고 잘라 말했다. “얼굴 보고 만나도 당하는 세상인데, 온라인에서 만난다는 건 이해가 안 돼요. 만약 우리 애들이 앱으로 연애한다고 하면 극구 말릴 거예요.”

직장인 권민숙 씨(43‧여)는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성숙한 사람이면 데이팅 앱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자녀가 앱을 사용한다면 반대하겠다고 했다. “작정하고 달려들면 누구든 속아 넘어가잖아요. 실제로 안 만나본 상태에서 연애 감정까지 섞이면 더 위험하죠.”

이지민 씨는 2022년 4월, 카페에서 만난 세번째 남성과 연애를 시작했다. 1주년이 지났다. 언젠가 헤어지면 데이팅 앱을 다시 내려받을 생각이다. 지인에게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가족이랑 친구는 앱으로 만난지 몰라요. 엄마는 남자친구가 카페에서 번호를 물어봐 사귀게 된 건 줄 알아요.”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