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끊임없이 뜨잖아요. 다이어트 콘텐츠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보면서 다이어트가 뭐였는지, 도대체 다이어트로 뭘 얻고 싶었는지는 잊어버리고 그냥 무조건 살을 빼야만 하는 루틴 속으로 들어갔던 것 같아요.”

웹툰 작가 박종은 씨(29)는 3년 넘게 섭식장애를 앓았다. 섭식장애는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신경성 폭식증, 회피제한성 섭취장애를 포함하는 정신질환이다.

시작은 2020년 처음 도전했던 다이어트. 살이 쭉쭉 빠지는 모습을 보며 재미를 느꼈다. 체중감량 성공에 사람들이 건네는 축하 인사와 칭찬이 좋았다. 하지만 눈치채지 못할 사이에 강박이 일상을 지배했다.

그는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이어트 정보를 얻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사람을 팔로우하고 방법을 따라 했다. 극단적으로 식사량을 제한하는 사람과 자신의 식습관을 비교하며 그런 방법이 괜찮다고 착각했다.

당시 보육교사였던 그는 어린이 식판에 아이의 절반도 안 되는 음식을 담아 먹었다. 성인 여성에게는 하루에 약 2000㎈가 권장되지만 그의 하루 섭취 열량은 700㎈ 안팎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람 중에도 섭식장애로 보이는 환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섭식장애인 사람과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섞여 있었는데 알고리즘으로 인해 옳지 않은 정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던 것 같아요.”

폭식 후 구토, 설사약 복용 등 제거 행동을 하는 ‘신경성 폭식증’은 다이어트 5개월부터 시작됐다. 정해 둔 식사량보다 많이 먹은 날엔 죄책감을 느끼고 구토했다. 주기가 짧아져 일상이 됐다.

매일 퇴근길, 마트에 들러 음식을 5만~6만 원어치를 사서 전부 먹고 토했다. 폭식과 구토가 끝나면 또 다른 죄책감이 느껴져 자해했다. 무월경, 치아 부식, 위 천공 같은 부작용도 겪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신경성 폭식증으로 1만 1630명이 진료받았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진료받지 않은 환자가 빠졌기 때문이다.

섭식장애 전문가인 인제대 서울백병원 김율리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섭식장애 유병률은 전 세계 인구의 3%라고 말했다. 한국 인구에 적용하면 155만 명으로 추정된다.

미국 하버드대 챈 공공보건대학원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섭식장애 유병률은 9%에 이른다. 김 교수는 극동아시아의 섭식장애 유병률이 서구보다 더 높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한국의 섭식장애 환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을 잘못된 식습관으로 이끌거나 강박을 심어줄 수 있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는 SNS 플랫폼이 섭식장애를 확산시킨 데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 ‘소셜미디어의 섭식장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작년 2월 발표했다. 한두 개의 다이어트 콘텐츠만 시청해도 사용자의 피드(feed·관심 있는 콘텐츠를 둘러볼 수 있는 페이지)를 유사 콘텐츠로 채우는 알고리즘을 문제로 꼽았다.

SNS 플랫폼은 시청 기록,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 팔로우한 계정 등 과거 행동에 기반을 둔 머신러닝을 통해 사용자에게 맞춤형 피드를 제공한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알고리즘이 사용자 선호도에 맞춰 너무 잘 작동해 사용자를 해칠 수 있는 콘텐츠까지 퍼붓는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체 만족도가 낮은 사람이 다이어트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섭식장애가 발생하거나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자는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성인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SNS사용과 다이어트 강박 및 섭식장애에 대해 5월 22일부터 2주 동안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67%가 SNS 알고리즘이 다이어트 관련 콘텐츠를 추천한다고 대답했다.

또 60%는 초절식, 굶기 등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담은 콘텐츠를 추천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SNS 사용이 다이어트 강박 증상을 유발한다고 생각한 비율은 67%였다.

▲ SNS 사용이 다이어트 강박 증상을 유발한다고 생각한 이유
▲ SNS 사용이 다이어트 강박 증상을 유발한다고 생각한 이유

대학교 4학년 변 모 씨에게는 올해 2월부터 폭식과 거식 증상이 나타났다. 그도 SNS를 사용하며 다이어트 강박이 심해졌다. 체중을 줄이려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올라오는 연예인 식단을 따라 했다. 다이어트 인플루언서도 여러 명 팔로우했다.

어느새 그의 피드는 다이어트 콘텐츠가 빽빽이 메웠다. 찾아보지 않아도 계속 보였다. “그분들은 엄청 마르고 살도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 모습이 계속 보이니까 그게 정답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방법이 어떻든 다이어트를 그만두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SNS로 인해 강박감을 느껴도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김 교수는 SNS에서 본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따라 하고 실제로 체중이 주는 경험을 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했다. 굶기, 먹고 토하기와 같은 극단적 행동에 문제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행동을 자극해주는 콘텐츠를 계속 시청하고, 또 그 행동을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강력한 중독성도 SNS를 끊기 어렵게 만든다. 이화여대 유승철 교수(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는 알고리즘에 기반한 맞춤형 피드는 중독 현상을 유발해 사용자를 ‘케이지에 갇힌 쥐’처럼 만든다고 했다.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콘텐츠에만 노출되기 때문에 몇 시간이고 계속 화면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는 얘기.

SNS를 보지 않으면 불안감이 생긴다. 변 씨는 다이어트를 그만둔다면 살이 찔 것을 알기 때문에 SNS를 보면서 계속 자극을 받아야 할 것만 같다고 말했다. “마음이 편한 것 자체가 불편한 거죠. 다이어트를 놔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SNS를 계속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김 교수는 SNS와 더불어 섭식장애를 일으키기 쉬운 한국의 문화적 기제로 타인의 외모를 쉽게 평가하는 분위기를 꼽았다. “우리나라에서 마른 체형을 평가하는 측면이 있어요. 또 그런 부분이 굉장히 노골적이에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인종에 대한 언급을 지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체중이나 체형에 대한 언급도 지양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말이 굉장히 자연스럽죠.”

무심코 건네는 칭찬도 상대에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김 교수는 ‘살 빠져서 예쁘다’, ‘넌 나보다 허벅지가 가늘다’와 같은 말은 듣는 사람의 내재적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독이 든 칭찬’이라고 했다.

박 씨에게 다이어트 강박이 생겼던 원인 중 하나도 ‘독이 든 칭찬’이었다. 과거 남자친구들은 그에게 ‘손목이 가늘어서 예쁘다’, ‘너는 말라서 좋아’ 등 체형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지인도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을 보고 예쁘다고 칭찬했다. 처음엔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자신의 날씬한 모습에 사랑을 주는 것 같아 마른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박종은 씨의 웹툰 〈나의 섭식장애 일기〉(출처=네이버)
▲박종은 씨의 웹툰 〈나의 섭식장애 일기〉(출처=네이버)

섭식장애 증상이 심각하면 자살로 이어지거나 영양실조로 숨질 수 있다. 신경성 신욕부진증(거식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치사율이 5%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거식증으로 인한 사망위험율은 일반인에 비해 6배가 높고, 거식증 환자 5명 중 1명은 자살한다.

김 교수는 정신적으로 취약한 청소년층을 특히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유해시설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법으로 제한하는데, SNS에는 그런 차단이 거의 없어요. 완전히 정글이죠…사용자가 청소년이라면 프로아나(찬성을 뜻하는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anorexia’의 합성어) 사이트 등 극단적인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게 필요해요.”

유 교수는 유해한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선 평소에 다양한 콘텐츠를 시청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릴수록 좋아하는 분야의 콘텐츠만 집중적으로 보는 특징이 있기때문에 청소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다이어트 관련 콘텐츠에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았다면 강박증이나 섭식장애가 악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치료 과정도 더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예인이 이야기하는 다이어트 방법, 인플루언서가 말하는 몸매 관리 방법, 이런 ‘꿀팁’이 사실은 섭식장애로 이어지기에 아주 좋은 요소이거든요.”

박종은 씨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완치에 들어섰다. 자신의 섭식장애 발병과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 ‘나의 섭식장애 일기’에 담아 네이버 베스트도전 웹툰에 연재 중이다. 9월엔 정식 작가로 데뷔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섭식장애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환자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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