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법 형사1단독(오기두 부장판사)이 담당하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의 4차 공판은 5월 31일 오전 10시 20분 열렸다. 일명 ‘건축왕’ 남모 씨(61) 등 4명이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과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나머지 6명은 불구속 상태.

이날 방청석이 전부 찼다. 판사는 오전에 신문하려던 검사 측 증인 3명 출석을 확인했다. 첫 번째 증인(32)이 증인석에 앉았다. 나머지 2명은 법정 밖에서 대기했다.

판사가 검사부터 신문하라고 안내했다. 증인이 수사기관에 제출한 고소장과 진술서, 전세 계약서가 모니터 화면에 나왔다. 검사는 사실대로, 직접 작성했는지 증인에게 확인했다.

증인은 지난해 3월 23일 전셋집을 계약했다. 2년 동안 보증금 1억 원. 스마트폰 부동산 앱으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았다.

근저당권(채권 최고액 1억 2840만 원)이 설정된 집이었지만, 공인중개사는 증인을 안심시켰다. “한 번도 문제 된 적 없고, 사고가 생겨도 책임지겠다”는 말로 증인을 설득했다고 했다.

근저당권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후순위 채권자보다 먼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다. 문제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소송 없이도 담보로 잡힌 부동산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근저당권이 설정된 집주인이 빚을 갚지 않으면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 피해는 세입자 몫이다.

검사는 공인중개사가 근저당권이 설정된 집임을 계약할 때 설명했는지 증인에게 물었다. 증인은 “서류를 넘기며 (근저당권이) 있다고만 말했다”며 “근저당권이 위험하지 않냐고 묻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법한 과정이었다”고 답했다.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들지 않았는지도 물었다. 증인은 “공인중개사가 집주인과 연락했는데 (보험 가입을) 거절당했다고 했다”며 “이유는 모르고 가입할 수 없다고만 들었다”고 했다.

이 공인중개사는 남 씨에게 급여를 받았다. 부동산 매물 역시 남 씨 소유다. 검사가 이 사실을 알았냐고 묻자, 증인은 “전혀 몰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알았다면 계약했을지 물으니 “문제가 생기면 전세 보증금을 받을 수 없으니까 절대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인은 지금도 피해 주택에 산다. 전세 보증금은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처벌을 원하냐는 검사의 질문에 증인은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답했다.

이번엔 남 씨 변호인이 신문을 시작했다. 증인이 예전에 살던 집의 전세 보증금을 물었다. 증인은 부모 집이라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자 질문을 바꿨다. 지금 집을 계약할 때 주변 매물 조건은 어땠는지 물었다. 증인은 “전세 보증금 9000만 원, 1억 원 정도로 비슷했다”고 답했다.

변호인은 다른 매물보다 지금 집 조건이 더 유리해서 계약하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증인이 계약 체결한 3월 23일은 입주 두 달 전인데, 미리 가계약금을 지급한 걸 보면 새로운 주택으로 입주하는 게 이익이 될 것 같아서 계약한 것 아니에요?”

증인은 억울함을 나타냈다. “전세계약에서 저한테 어떤 이익을 자꾸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는데, 계약하려고 가계약금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님이 저한테 말씀하시는, 계약으로 저한테 돌아오는 이익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변호인은 증인에게 계속 물었다. “보증금 1억 원에 전용 면적 25평. 이 근처에서 이 정도 되는 아파트를 전세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방청석이 술렁였다. 50대로 보이는 남성 방청객이 “그게 사기 아니냐”고 소리쳤다.

질문이 이어졌다. 변호인은 근저당권이 있음을 알고도 계약한 이유를 물었다. 증인은 “공인중개사가 안전하다고 한 말만 믿고 계약했다”고 답했다. 공인중개사가 보증금을 보장하겠다는 확인서를 따로 써줬다고도 말했다.

다른 변호인은 “증인의 피해가 현실화했다”는 검사 주장을 반박했다. 계약 기간이 남았고 집이 낙찰되면 보증금 잔액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변호인은 피해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음을 증인에게 재차 확인했다. 증인이 한숨 쉬며 맞다고 답했다. 방청석에서 탄식이 들렸다.

집주인 신용 등급을 조사하지 않은 이유도 물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집주인 자산 현황이 중요하다고 했던 증언에 대한 질문이다.

증인은 어떻게 조사하냐고 반문했다. 변호인이 “고려신용정보에 들어가라”고 말하자 방청객이 코웃음을 쳤다. 박순남 씨(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가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사는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이 동업 관계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를 알았다면 증인이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란 논리로 신문을 마쳤다.

나머지 두 증인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두 번째 증인은 지난해 12월(2년, 보증금 7500만 원), 세 번째 증인은 지난해 5월(2년, 보증금 7500만 원) 계약했다.

검사는 공인중개사가 계약 때 근저당권을 어떻게 설명했는지에 집중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았는지, 처벌을 원하는지 물었다. 변호인은 주변 매물 조건을 알아봤냐고 했다. 증인이 전세 계약한 이유가 이익을 얻기 위함이 아니냐는 논리.

오전 공판은 12시 31분 끝났다. 방청객 여럿이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법원 정문 앞에서 시위하기 위해서다. 5명이 피켓을 들고 섰다. 남 씨 일당 엄벌을 촉구하는 구호가 보였다. ‘주범 공모자들 모두 구속하라!’ ‘남모씨 일당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적용하라!’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의 몫’….

▲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피해자
▲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피해자

5차 공판은 이날 오후 2시 20분 시작했다. 증인 6명이 출석하기로 했지만, 1명이 불출석했다. 오전에 왔던 방청객이 대부분 돌아왔다. 방청석이 가득 찼고, 9명은 뒤에 섰다.

오후 공판은 오전과 비슷했다. 검사와 변호인이 번갈아서 증인을 신문했다. 변호인은 오전과 같은 내용을 물었다. 계약할 때 알아본 주변 매물 매매가격은 어땠냐는 질문.

첫 번째 증인(46)이 “매매가 아니고 전세라서 모른다”고 답했다. 변호인은 “전셋값도 매매가격이 있어야 형성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박 씨가 소리쳤다. “근거도 없이 (신문)해요, 이 사람들은!”

이후에도 방청객 여러 명이 소리를 질렀다. 변호인이 증인에게 전세사기특별법 내용을 재차 물었기 때문. “국토부 장관이 국민 세금으로 개인 사기 피해를 배상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아서 특별법을 마련한 게 맞죠?”

검사는 “증인이 경험한 내용도 아니고, 논지와 어긋난다”며 판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방청객이 술렁였다. “인터넷 뒤지세요! 뉴스 보면 다 나오는데 뭐.” “거짓말하지 마세요. 왜 질문하는 거예요?” “모르는 게 자랑이다!”

변호인은 공인중개사가 사기에 가담한 일을 두고 계약을 성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도 설명했다. “상인들이 물건 팔 때처럼 중개사들이 중개할 때는 계약을 성사하려고 노력하는 게 상식이죠.” 증인이 격앙된 목소리로 “상식에 거짓말을 더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50대로 보이는 남성 방청객은 시뻘건 얼굴로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물건 팔 때도 거짓말하면 되겠네?” 옆 방청객이 “그만하라”며 남성의 팔을 잡았다. 남성은 몇 차례 더 소리치다가 법정을 나갔다.

변호인은 증인 직업과 학력을 묻기도 했다. 사건과 관련 없는 인물 이야기도 꺼냈다. 판사는 대답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증인에게 알렸다. 증인은 답변을 거부했고, 방청객은 탄식했다.

다음으로 앳돼 보이는 여성이 증인석에 앉았다. 노란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증인(24)은 판사 안내에 따라 선서했다. 긴장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중간중간 심호흡을 했다.

증인은 전세 보증금 8500만 원을 잃었다. 집은 경매에 넘어갔다. 근저당권 설정된 집이었지만, 공인중개사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근저당권이 왜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고요. 제가 걱정된다고 물었을 때 전셋집은 원래 이 정도 융자가 있다고 안심시켰어요.”

검사가 공인중개사 말을 믿은 이유를 물었다. 증인은 적어둔 내용을 보고 읽겠다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임대인은 4년 동안 대출이자를 잘 지급해왔고, 한 번도 문제 된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문제가 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변호인은 집이 높은 가격에 낙찰돼 증인이 배당금을 받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만약 한 5억에 낙찰되면 배당받을 수 있잖아요?” 방청객이 실소를 터뜨렸다. 증인은 “1차 경매에서 유찰돼 (가격이) 그렇게 나올 일이 없다”고 말했다.

유찰 가격은 2억1000만 원. 변호인은 만약 이 가격으로 낙찰됐다면 배당금이 얼마인지 물었다. 증인이 모르겠다며 계산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변호인 역시 나중에 계산해보라고 했다. 방청석에선 욕설이 들렸다.

변호인은 증인이 무엇에 속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증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절대 그럴 일 없다고 그렇게 여러 번 누누이 말을 했는데. 경매 넘어갈 일 없다, 보증금 못 받을 일 없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신문이 끝나자마자 증인은 울먹이며 법정을 나갔다. 복도 의자 앞에 무릎을 꿇고 고꾸라졌다. 그는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 함께 나간 박 씨가 휴지를 주며 눈물을 흘렸다.

한참 울던 증인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증인이 밖으로 나왔다. 증인은 박 씨 품에 안겨 울었다. “우린 잘못이 없는데, 진짜 저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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