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전세 사기로 인천 미추홀구에서 숨진 피해자 숫자다. 이들은 일명 ‘건축왕’ 남모 씨(61) 일당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남 씨 일당은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미추홀구 일대에서 전세 계약한 공동주택 533채 보증금 약 430억 원을 세입자로부터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들 중 10명은 재판에 넘겨졌다.

남 씨를 포함한 4명은 올해 2월 구속됐다. 나머지 6명은 불구속 상태.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과 사기 혐의다.

재판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인천지법 형사1단독(오기두 부장판사)이 5월 22일, 324호 법정에서 3차 공판을 열었다. 공판 2번(4월 5일, 5월 3일)을 마친 뒤다.

방청객 2명이 오전 10시 법정 앞에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남 씨 일당이) 벌을 받긴 하겠지만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은 못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50대로 보이는 여성은 “조직범죄로 기소된 건 처음이라 처벌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5분가량 지나자 10명이 더 왔다. 취재진과 피해자로 보였다. 잠시 후 법정 직원이 피고인과 변호인부터 먼저 입장하라고 외쳤다. 기다리던 이들이 문 앞으로 몰렸다.

방청객은 10시 10분에 들어갔다. 방청석(34석)이 모두 찼고, 30여 명은 뒤에 섰다. 제일 앞줄에는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 6명이 앉았다.

▲ 인천지방법원
▲ 인천지방법원

공판은 10시 20분 시작했다. 피고인 4명이 연녹색 수의 차림으로 들어왔다. 남 씨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남성, 30대로 보이는 남성 2명.

판사는 피고인이 범죄 증거를 숨기려 했다는 의혹을 가장 먼저 물었다. 변호인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다음 공판 때 이야기하겠다고 답했다. 방청석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어 증인신문 날짜를 정했다. 판사는 검찰이 증인 18명을 신청했다며, 5월 31일(오전 10시 20분, 오후 2시 20분)을 제시했다. 변호인은 남 씨가 이날 수사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판사는 “6개월 안에 재판을 열지 않으면 피고인을 석방해야 한다”며 심리를 계속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논의 끝에 다음 공판은 5월 31일로 정했다.

증거 채택에 대해서도 말했다. 판사는 “공범자로 조사받은 공동 피고인 진술조서는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 진술조서는 진정성이 인정되면 증거로 채택하겠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증인 2명 진술조서를 증거로 신청했다.

판사는 방청석 의견을 마지막으로 듣겠다고 했다. “피해자가 제출한 탄원서 읽어봤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은 이번 주에 방청하시는 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혹시 얘기하고 싶으신 분 있으면 얘기해보세요.”

박순남 씨(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가 방청석 두 번째 줄에서 일어났다. ‘공모자 엄중 처벌’이라 적힌 검은 마스크를 썼다. 검은 티셔츠에도 같은 문구가 적혔다.

그는 자신을 한마음아파트(인천 미추홀구 수의동) 전세 사기 피해자로 소개했다. 140세대 중 20세대가 이미 매각돼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고 했다.

“정부가 특별법을 내놓는다고 했지만 피해 변제금으로는 단 1원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국회 소위에서 답했습니다. 전세를 다시 구하면 이자 지원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에 굉장히 화가 납니다.”

이어 떨리는 목소리로 전세 사기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저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습니다. 3000 세대가 넘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을 파탄 낸 책임을 반드시 물어줄 것을 촉구합니다. 저희한테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 같은 돈입니다. 더 죽어 나가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면 재판장님, 반드시 죄과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훌쩍이는 소리가 방청석에서 들렸다. 40대로 보이는 여성은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판사는 “조직적 전세 사기 범죄는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전세 맹점을 파고들어, 5000명 이상의 돈을 빼앗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말했다. 공판은 10시 52분 끝났다.

▲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정호진 씨
▲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정호진 씨

한마음아파트 피해자 정호진 씨(40)가 복도를 서성였다. 박 씨와 같은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썼다. 그는 전세 보증금 7300만 원을 잃었다. 방청은 이날이 처음이라고 했다.

정 씨는 피해자들이 생업에 지장을 크게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건축·설계 일을 하는데 수입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지금 이거(전세 사기) 때문에 일도 못 나가고 있어요.”

한마음아파트는 대부업체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재판 와중에도 몇 집은 경매에 낙찰돼서 쫓겨났고, 저희집도 지난주 17일이 (경매) 2차 기일 이틀 전이었는데 그때서야 중재할 수 있었어요. 채권을 가진 조합이 돈이 회수되지 않을 것 같으면 대부업체로 집을 넘기는 경우가 많아서….”

정 씨는 정부가 나서서 경매를 중단했지만, 강제성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했다. 경매 중단 명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 피해자는 낙찰자에게 집을 결국 비워줘야 한다. 집을 비웠다는 확인서가 있어야 법원에 제출하고 배당금이라도 신청할 수 있다.

“저희 아파트에서도 배당금을 신청했는데 법원에서 950만 원만 확정해줬어요. 보증금은 수천만 원인데 1000만 원 배당금 받고 쫓겨난다니. 저희는 피해자인데, 당당하게 받아서 나갈 수 없는 입장이에요.”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