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핸드폰을 머리 위로 든다. 그리고 동영상을 촬영한다. 듬성듬성 남은 머리카락이 찍혔다. 머리를 한번 넘겨본다. “나도 시작된 건가…?”

직장인 이종희 씨(35)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해가 쨍쨍한 날, 야외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정수리 부분이 눈에 띄게 비었다.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로 매일 혼자서 핸드폰으로 정수리 쪽 동영상을 찍었다.

탈모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보를 검색하기 바빴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제 에너지의 30% 정도는 탈모 걱정으로 소모했어요”라고 했다. 탈모약 복용을 망설이다 27살 무렵부터 ‘아보다트’를 먹었다.

기자는 5월 27일 낮 11시쯤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1번 출구 앞의 약국거리에서 ‘탈모성지’로 불리는 탈모 전문 병원 2곳을 지켜봤다. 20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15명이 올라갔다. 10분쯤 지나서 처방전을 손에 들고 나왔다. 그중 10명이 청년이었다.

이날 만난 김선홍 씨(29)는 “너 나이 때 딱 이랬다”는 형의 말을 듣고 탈모약을 먹었다. 그가 앞머리를 넘겨 헤어라인을 보여줬다. 이마 양쪽이 깊숙이 들어갔다. 이마 양쪽의 점을 가리키며 “22살 때까지만 해도 여기가 머리로 덮여있어서 점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전역하고 정육점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창유리에 비친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약을 먹기 시작해 올해로 5년째. 그는 멋쩍은 얼굴로 “바람이 불어 머리 가르마가 탈모된 쪽으로 나버리면 민망하다”라고 말했다.

▲ 코코이비인후과 의원 건물 1층 입구(왼쪽). 보람연합의원 내부 탈모약 처방비 안내표
▲ 코코이비인후과 의원 건물 1층 입구(왼쪽). 보람연합의원 내부 탈모약 처방비 안내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탈모 환자는 2019년 23만 3628명에서 2021년 24만 2960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20~34세 탈모 환자는 7만 5227명에서 7만 8267명으로 늘었다.

이날 지켜보던 병원 간호사도 환자 10명 중 20~30대가 6~7명은 된다고 말했다. “40~50대보다 많은가요?”라고 묻자 “훨씬 많죠”라고 답했다.

청년에게 탈모는 청천벽력이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뿐 아니라 연애, 결혼, 취업 때 외모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하기 있기 때문이다.

“제 친구는 탈모 때문에 결혼을 포기했어요.” 5월 31일 종로 약국거리에서 만난 백동수 씨(35)는 탈모가 연애, 결혼 시장에서 ‘등급’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했다. “여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탈모에 정말 민감하거든요.”

백씨 친구 중엔 손 써보기도 전에 탈모가 너무 많이 진행돼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그 친구는 아예 연예 생각을 접고 머리를 싹 밀고 다녀요. 어설프게 몇 가닥 있는 게 더 없어 보이니까요.”

탈모는 시작하면 완치가 힘들어서 더 신경 쓰인다. 김병찬 씨(27)는 할아버지가 탈모를 겪어서 자기도 그럴까 예방약을 8개월째 먹는다. 예방 차원에서 약을 먹기 시작한 백동수 씨도 “체중은 줄이거나 늘릴 수 있지만, 머리카락은 한번 날아가면 방법이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 병원 내부 게시판의 성동구 탈모치료 지원 설명문
▲ 병원 내부 게시판의 성동구 탈모치료 지원 설명문

탈모를 예방하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대개 비용과 노력 대비 효과가 좋은 탈모약을 복용한다. 이 외에 차가운 바람으로 머리 말리기, 빗으로 마사지하기도 필수다. 대학생 오태훈 씨(25)는 “두유와 모발 영양제로 머리카락을 관리하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고 했다.

이종희 씨는 TV에서 녹차 물로 두피를 닦으면 좋다는 말을 듣고 실천했다. 우려낸 녹차 물에 면봉을 충분히 적셔서 두피 곳곳을 문질렀다. 파마나 염색할 때, 미용사에게 두피에 닿지 않게 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임신 계획을 가진 이들에겐 탈모약 복용도 고민이다. 약사 최모 씨(35)는 아이와 탈모약 사이 갈림길에서 고민한 동료가 있다고 했다. “논문을 한참 보던 친구는 정자로 탈모약 성분이 거의 이행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야 안심을 하더라고요.”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 김광규의 탈모는 웃음 유발 코드지만, 현실에선 다르다. 탈모는 직접 겪지 않으면 고통을 알 수 없다. 젊을수록 탈모 스트레스가 크다. 탈모가 ‘사회적 질병’이란 말도 있다.

이런 이유로 서울 성동구와 충남 보령시가 청년의 탈모 치료비를 올해부터 지원한다. 5월 25일 기준으로 성동구에선 379명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보령시에선 약 150명이 신청했다. 부산 사하구와 대구광역시에서도 지원 조례가 통과됐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