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8m, 세로 2m 크기의 벽에 메모지 수백 장이 붙었다. 흰 국화 꽃바구니 1개와 꽃송이 10여 개가 그 아래 있었다. 벽 한편에는 안내문이 걸렸다. ‘10.29 이태원 참사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을 위한 준비 중입니다.’

이곳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옆 골목. 기자는 5월 26일 오후 2시 40분에 찾았다. 지난해 10월 29일, 압사 사고가 일어난 지 약 7개월 만이다. 거리는 한적했다.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이 가끔 벽 앞에 섰다.

▲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옆 골목
▲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옆 골목

참사 7개월이 지난 지금, 상권은 어떨까. 골목 입구의 신발 가게 ‘밀라노’에 들어갔다. 주인 남인석 씨(82)는 다음날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근처로 가게를 옮긴다며 짐을 쌌다. 남 씨는 같은 곳에서 11년간 장사했다. 매출이 참사 이후 크게 떨어졌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태원 일대 상가 40%가 아마 임대를 내놨을 거예요. 원래 (참사 전) 주말엔 하루에 몇십 명씩 손님이 와서 가게 문을 새벽 2시까지 열었는데, 요즘은 하루에 1~2명도 올까 말까죠.” 그는 한숨을 쉬며 “이태원 상권이 빨리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 씨 가게에서 나와 왼쪽으로 50m가량 올라가면 세계음식거리가 나온다. 한때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이날 오후 3시 5분에는 조용했다. 가게 20곳 중 6곳이 임대 표시를 했거나 안이 비었다. 6곳은 영업 중. 나머지는 불이 꺼졌다.

‘PUB&CLUB(펍 앤드 클럽)’이라는 천막을 내건 술집. ‘임대’라고 쓴 종이 2장이 보였다. 가게 안은 불이 꺼졌다. 짐이 아무렇게나 쌓였다. 술집 ‘아뜰리에’ 앞에는 국민건강보험 통지서 2개가 있었다. 도시가스 점검 안내문도 문손잡이에 붙었다.

▲ ‘임대’ 종이가 붙은 상가
▲ ‘임대’ 종이가 붙은 상가

술집 ‘질’에서 희미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인 권구민 씨(30)가 장사 준비에 바빴다. 가게를 연 지 1년째. 참사 직후와 비교하면 매출이 꽤 많이 회복됐다고 한다. “주변 상가는 거의 망했는데, 저희는 그래도 버텼어요. 매출로만 따지면 참사 직후보다 50% 정도 늘었어요.”

참사 전에는 손님으로 붐볐다고 했다. 특히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까지 하루에 120팀 정도 몰렸다고. “요즘은 하루에 70팀 정도 받는데, 그래도 작년 말보다는 많이 늘었죠.”

케밥 가게 주인 셀칸 씨(Selkan·27) 역시 참사 직후보다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튀르키예에서 와서 1년째 장사한다. 수입이 예전만 못하지만, 가게를 옮길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참사 전보다는 매출이 절반 정도 떨어졌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추모 벽으로 내려가니 관광객 3명이 보였다. 싱가포르에서 온 조이 씨(Zoey·22)는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한국 여행은 처음이다.

그는 “이태원 거리를 구경하러 왔다가 들렀다”며 메모지를 붙였다. ‘Rest in peace, from Singapore.(편안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싱가포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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