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제43주년 기념식이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월 18일 열렸다. 기념식 주제는 ‘오월정신, 국민과 함께’다. 국가보훈처는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낸 오월정신을 기억하고 국민과 함께 책임 있게 계승하자”는 의미라고 했다.

기자는 오전 9시 35분경 묘지 입구에 도착했다. 경찰 50여 명이 형광 조끼를 입고 길을 따라 섰다. 이들 뒤에서 30명 정도가 구호를 외쳤다.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

묘지 입구로 관광버스 2대가 들어섰다. 버스 앞 전광판을 보니 국민의힘 의원들이 탄 버스였다. 한 여성이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는 피켓을 들고 차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경찰이 “길 가로막지 말고 빨리 건너라”고 하자, 이들은 “퇴진하라! 퇴진하라!”라고 외치며 도로 한복판에 섰다. 경찰 2명이 여성을 제지했다.

▲ 국립5·18민주묘지 입구
▲ 국립5·18민주묘지 입구

기념식은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여기에 들어가려면 민주의 문을 지나야 했다. 안내 직원이 “내부는 초청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라며 가로막았다. 입장권이 없으면 민주광장 옆의 5·18 추모관 옆 공간에서 생중계를 볼 수 있다고 안내했다.

광장 내부로 들어가거나 추모관으로 가려는 행렬이 이어졌다. 주차장에서 고성이 들렸다. “제 말이 틀립니까?” 유튜버 ‘황기자TV’가 휴대전화로 촬영을 하며 60대로 보이는 남성 1명과 실랑이를 벌였다.

주위의 다른 유튜버 5명도 휴대전화로 현장을 찍었다. 지나가던 시민이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냐”라며 눈을 흘기며 지나갔다.

기자는 오전 9시 57분, 추모관 옆 공간으로 들어갔다. 기념식을 중계하는 전광판 앞으로 의자가 10개씩 10줄 있었다. 비가 와서 안내 직원이 우비를 나눠줬다. 80명 정도가 앉거나 서서 기다렸다.

미국에서 온 줄리아 씨(26)는 5월 18일에 맞춰 기념식에 오고 싶었다고 했다. 전남대 언어교육원을 다니며 광주에서 2년을 살았다. “5·18민주화운동을 한국에 와서 배웠다. 직접 행사에 와 보고 싶었다. 더 배우고 싶어서 한국 대학원을 가려고 한다.”

기념식은 오전 10시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월의 어머니’들과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오월의 어머니’는 5·18 민주화운동 유족 등으로 구성됐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여야 의원도 참석했다.

행사는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여는 영상, 경과보고, 헌정 공연, 기념사, 기념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진행했다. 5·18민주유공자 및 유족, 정부 인사, 학생, 시민 등 3000명 정도가 초청됐다.

▲ 5·18 추모관 옆 공간. 기념식을 전광판으로 생중계했다.
▲ 5·18 추모관 옆 공간. 기념식을 전광판으로 생중계했다.

윤 대통령은 5분가량 기념사를 했다. 그는 “오월의 정신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며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광주와 호남이 자유와 혁신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과 첨단 과학 기술의 고도화를 이루겠다”라며 “미래 세대에게 계승시킬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라고 했다.

“여러분! 대통령이 지금 저거 말하러 여기까지 왔습니까?” 기념사가 끝나자 최애경 씨(58)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고 했다. “대통령이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하겠다고 했으면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비까지 오는데 약속도 안 지킬 거면 뭐하러 온 건가 싶다”고 했다.

기념식은 오전 10시 45분 끝났다. 모두 나가고 20명 정도가 남았다. 손중호 씨(78)는 광주에 55년 동안 살았다.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했다. 당시 상황이 떠올라 기념식에 매년 참여한다고 했다. “5·18이라는 게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맞다. 그런데 국가적 차원에서 이 상처를 치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정래 씨(73)는 광주에 50년 동안 살면서 당시 기억만큼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그때 처자식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오전 11시 4분, 민주의 문 앞에서 취재진과 만났다. 유튜버들도 주위에 모였다. 이 대표는 “광주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수록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며 “정부 여당은 말로만 반성하고 추념하고 기념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자 한 남성이 “화천대유, 대장동 의혹이나 제대로 밝혀라!”라고 소리쳤다. 이 대표는 남성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60대 여성 2명은 “사랑해요, 이재명”, “힘내세요, 이재명”을 외치며 쫓아갔다.

▲ 국립5·18민주묘지 묘역
▲ 국립5·18민주묘지 묘역

오전 11시 15분, 민주의 문을 통해 묘지 내부로 들어갔다. 민주광장과 추념문을 지나니 참배광장이 나왔다. 그 뒤로 희생자 묘역이 있었다.

묘지 앞에 꽃을 놓거나 기도하는 시민, 휴대전화로 현장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유튜버…. 40명 정도가 보였다. 기자들은 언론사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추모객을 취재했다.

이서담 양(17)은 교사, 친구들과 함께 기념식을 보기 위해 대전에서 왔다. “많이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책에서만 봤는데 이렇게 와서 보니 더 와 닿는다.”

전주에서 온 김점옥 씨(71)는 당시 피해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묘역을 자주 찾는다.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광주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고(故) 마순란의 묘’. 김향란 씨(65)는 어머니 묘라고 했다. 5·18 당시 막내 남동생을 찾으러 나갔다가 총을 맞았다.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야기하는데 유튜버 2명이 다가왔다. “유가족이세요? 저희 유튜버인데 대화해주시면 안 돼요?” 김향란 씨가 거절하자, 짧게라도 이야기하자며 계속 물었다. 다섯 번 거절하니 다른 곳으로 갔다.

기자가 묘지 앞으로 나가는데, 이건희 씨(62)는 초등학생 아들과 들어오는 중이었다. 현장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왔다고 했다. “43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때가 명확하게 기억 납니다. 직접 이 자리에서 5월 정신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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