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과 에스파와 블랙핑크의 멤버 수를 더한 값은?

2022년 SBS PD 공개채용 필기 시험때 출제된 문제다. 핵심은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수였다. 기획사가 발표한 8인조냐 실존 인물의 수 4명이냐 묻는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당시 시험 감독관 측은 후자를 택했다.

▲실존인물 카리나와 가상인물 ae-카리나가 함께 등장한 인터뷰 캡처 (출처: SM엔터테인먼트)
▲실존인물 카리나와 가상인물 ae-카리나가 함께 등장한 인터뷰 캡처 (출처: SM엔터테인먼트)

'광야(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유니버스)에서 뱀(블랙맘바)을 때려 잡는' 수식어로 유명한 에스파는 공식적으로 8인조다. 4명의 실존 멤버는 리얼월드라고 불리는 현실 세계에서 활동하고, 짝꿍으로 이어진 4명의 가상 멤버는 메타버스 세계에서 활동한다. "미래 세상은 셀러브리티와 로봇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당시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의 판단에서 비롯됐다.

버추얼과 함께 하는 에스파가 지난 8일, 미니 3집 <MY WORLD>로 컴백했다. 169.8만장의 음반을 팔며 역대 케이팝 걸그룹과 SM 초동 1위에 올라섰다. 초동은 한터차트를 기준삼아 발매일로부터 7일간의 음반 판매량을 뜻한다.

선주문도 180만장을 돌파하며 역대 케이팝 걸그룹 2위란 기록을 세웠다. 1위는 블랙핑크가 정규 2집 <BORN PINK>로 기록한 200만장이다. 또 컴백일 8일 기준 447만 구독자를 보유한 에스파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신곡 'Spicy' 뮤직비디오는 공개 즉시 유튜브뮤직 인기 급상승 동영상 2위에 올랐다.

▲ 나이비스 (출처: SM엔터테인먼트)
▲ 나이비스 (출처: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의 이번 앨범은 SM의 버추얼 아티스트 데뷔와 연관됐다.

'Welcome To MY World'란 선공개 곡에 AI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nævis)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성수 SM 대표이사는 지난 1월 매일경제(23.01.25) 인터뷰에서 나이비스의 목소리를 "성우 12명의 목소리를 분석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SM은 지난 2월 2023년 연간 계획을 발표하며 버추얼 아티스트를 전담하는 가상 아티스트/IP 제작 센터를 신설했다고 밝혔다.

▲ 메이브 (출처: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 메이브 (출처: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이후 새롭게 SM의 경영권을 쥔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도 지난 1월 버추얼 아티스트 그룹을 데뷔시킨 경험이 있다. 바로 넷마블과 합작해 제작한 4인조 걸그룹 메이브(MAVE:)다. 가상인물 4명으로 이뤄진 이 그룹은 MBC<쇼!음악중심>에 출연해 데뷔곡 'PANDORA'의 무대를 꾸몄고 유튜브 조회수 320만회를 기록했다.

▲플레이브 (출처: 블래스트)
▲플레이브 (출처: 블래스트)

MBC도 사내벤처 1기로 독립한 블래스트(VLAST)에서 제작한 플레이브(PLAVE)란 버추얼 5인조 보이그룹이 있다. <쇼!음악중심>에 출연하는 것 뿐만 아니라 팬들과 영상통화 팬사인회를 진행하며 케이팝 아이돌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확장된 버추얼 아티스트들의 활동은 초기 모델의 행보와 비교했을 때 크게 진보했다.

▲(왼)다테 쿄코와 (오)사이버가수 아담 (출처:지디넷코리아)
▲(왼)다테 쿄코와 (오)사이버가수 아담 (출처:지디넷코리아)

버추얼 아티스트의 초기 모델은 1996년 일본에서 데뷔한 세계 최초의 버추얼 아티스트 다테 쿄코와 한국의 사이버가수 아담이다. 이들은 불쾌한 골짜기 현상 때문에 인기를 얻지 못해 수익을 내지 못했다.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란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처음 소개한 이론으로 로봇이 사람의 모습과 비슷해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지만, 그 유사성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오히려 강한 거부감을 유발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다테 쿄코는 인간을 어설프게 닮아 소비자들에게 호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셈이다.

유니티코리아 김범주 에반젤리즘 본부장은 지디넷코리아와의 인터뷰(22.07.01)를 통해 "가상으로 만들어진 인간형 캐릭터가 실재 연예인처럼 활동할수 있다는 개념적 사례로서 의미가 있었지만 제작비용이 매우 비쌌다. 또한 당시 기술 한계로 인해 가상인간은 미리 만들어진 그림이나 영상으로써만 존재할 뿐 현실 연예인들처럼 시청자와 실시간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실시간 소통의 한계는 이제 거의 없어졌다. 꾸준히 실존인물의 영상과 콘서트에 등장해 짝꿍 실존 멤버와 소통하는 에스파의 가상 멤버, 커뮤니티를 통해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메이브, 팬사인회를 진행하는 플레이브까지. 쌍방형 소통의 폭은 넓어지고 있다.

다만 초기 모델과 달리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줄이고 실존감을 크게 키움으로써 실존인물을 투영한 딥페이크 문제 등의 윤리적 문제가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정기간행물 <N콘텐츠>를 통해 같은 해 상정된 ‘디지털 성범죄 대응 4법’ 개정안을 꼽으며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 내지 만족을 목적으로 캐릭터(아바타, 가상 인간)에 성적인 언동을 하는 것을 정보통신망 상 유통이 금지되는 정보에 포함'시켰음을 재차 강조했다.

▲버추얼 걸그룹 이터니티 (출처: 펄스나인)
▲버추얼 걸그룹 이터니티 (출처: 펄스나인)

그러나 우려와 달리 최초의 가상 케이팝 걸그룹은 가짜뉴스에 활용되는 기술과 차별화하기 위해 EU(유럽 연합)의 윤리적 AI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제작됐다. 바로 버추얼 걸그룹 이터니티(Eternity)다.

이러한 연유로 지난해 12월 이터니티의 제작자 펄스나인의 박지은 대표가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BBC 100 women)에 소개됐다.

박지은 대표는 BBC와의 <케이팝: 가상 걸그룹의 부상(K-pop: The rise of the virtual girl bands)>인터뷰(22.12.12)에서 "항상 이터니티가 허구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라이브 채팅, 영상, 온라인 팬미팅 등 이터니티의 활동에 자사에 계약된 익명의 가수, 배우 및 댄서에게 아바타 얼굴을 투영하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딥페이크 필터처럼 작동된다.

사람들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조작하거나 위험한 오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우려에 박 대표는 "펄스나인이 아바타를 만들 때 유럽 연합의 윤리적 AI 지침 초안을 사용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지침에는 ▲인간의 통제 가능성 ▲안정성 ▲개인정보 보호 ▲투명성 ▲다양성, 비차별성과 공정성 ▲지속가능성 ▲책임성 등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지침은 의도하지 않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AI가 기술적으로 견고하고 안전해야 하며, 오류나 문제 발생 시 대비책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세계적 규범과 표준을 만들고자 제정됐다.

이어 BBC는 시공간과 언어의 장벽을 허문 점을 지적하며 버추얼 아티스트 산업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와 시간대, 언어 장벽과 상관 없이 언제 어디서든 아티스트와 팬들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BBC는 에스파를 예로 들었다. 네 명의 실존인물과 가상 상대인 아이-카리나, 아이-윈터, 아이-지젤, 그리고 아이-닝닝으로 구성돼 가상 아바타로 팬들과 함께 가상 세계를 탐험하고 여러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어서다.

또, 버추얼 시장의 규모도 언급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이머진 리서치(Emergen Research)는 2020년 100억달러(약 13조2000억원) 수준이었던 전 세계 버추얼 시장 규모는 연평균 36.4% 성장해 오는 2030년 5275억8000만달러(약 69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도 2025년 기준 버추얼 휴먼의 시장은 약 14조원 규모로 예상했다. 이는 인간 인플루언서의 매출 규모인 13조원을 추월하는 수치다.

BBC는 지난해 최고 수익을 달성한 5개의 케이팝 그룹 제작사(SM, 하이브, YG, JYP 엔터테인먼트)가 가상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어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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