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이 80대 노모의 휠체어를 밀고 두세 걸음 올라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20도를 웃도는 날씨에 여성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45도는 넘을 듯한 기울기의 오르막을 보고, 여성은 울상을 지었다. 청와대 관저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길에서다.

4월 27일 청와대 정문의 ‘청와대, 국민 품으로’라는 팻말을 통과하자 노란 조끼를 입은 직원이 외쳤다. “아버님! 잔디 위로 올라가시면 안 돼요! 줄 안에 들어가시면 안 돼요!”

하지만 청와대 본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관람객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여기 봐봐! 하나, 둘, 셋!” 물밀듯 들어오는 인파를 직원 2명이 통솔하기엔 무리였다. 며칠 전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잔디 위에서 볼일을 봤다.

▲ 청와대 정문에 줄을 선 관람객(왼쪽)과 본관 로비
▲ 청와대 정문에 줄을 선 관람객(왼쪽)과 본관 로비

연인과 가족, 지역에서 온 단체 관람객에 밀리듯이 본관에 도착했다. 시간별 인원 제한이 없어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

본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휠체어 장애인이 들어가지만 유모차는 못 들어간다. 카펫이 깔린 본관 특성상, 이용이 불가피한 휠체어와 달리 유모차는 제한된다.

고풍스러운 계단과 로비에 놀란 것도 잠시, 관람객은 정해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선 느낌이었다.

입구에서부터 15초 남짓 걷자,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전시된 세종실이 나왔다. 안내판의 설명문을 두 줄쯤 읽었을 때, 문화해설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동하시겠습니다. 이동하면서 보시겠습니다!”

4월 22일에도 이런 모습이었다. 어느 일행이 “야, 대통령님들이랑 사진 한 번 찍어보자”며 멈추자 뒤따르던 관람객이 모두 속도를 늦췄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오가니 어수선했다. 김다영 씨(25)는 “전시물을 조용히 음미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주황색 단체복을 맞춰 입고 청와대를 찾은 충남 보령시 문해교실 할머니들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란기 씨(73)는 “텔레비전에서 볼 땐 침실이랑 다 구경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못 봤어. 보면서 눈 운동이라도 해야 되는데 공개를 안 해주더라”라고 했다.

청와대에는 문화해설사가 건물을 차례로 돌면서 해설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당일 현장에서만 신청가능하다.

오후 2시경 본관을 나와 관저로 가는 길에 도착하자 기온이 20도에 달했다. 관람객은 겉옷을 벗어 팔에 걸쳤다. 가파른 언덕에 숨이 가빠지고, 걸음이 느려졌다. “또, 오르막이냐? 카트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소리가 들렸다.

80대 어머니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면서 김혜윤 씨(54)는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김 씨는 “웬만한 사람들은 휠체어를 끌고 가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관객이 휠체어를 끌고 관저로 올라가는 모습. 관저 입구의 휠체어와 뒷길(왼쪽부터)
▲ 관객이 휠체어를 끌고 관저로 올라가는 모습. 관저 입구의 휠체어와 뒷길(왼쪽부터)

김 씨는 힘겹게 휠체어를 끌고 관저 앞 입구에 도착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건물을 둘러싼 관람로에 계단이 있어서 휠체어는 입장 불가였다. 어머니 팔짱을 낀 채 부축하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관람객은 실내가 아닌 바깥 공간으로만 다닐 수 있다. 관저와 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창문을 통해 내부를 바라보는 식이다. “텔레비전에 본 것과 많이 다르네….” 김란기 할머니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장은아 씨(25)도 “건물 외관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을 위한 안내문은 청와대 입구의 영어 팸플릿이 전부다. 박물관이나 전시장과 같은 오디오가이드 기기는 없었다. 외국인과 함께 찾은 김진선 씨(30)는 “건물이나 유적에 대한 설명이 영문으로 안 돼 있는 것 같아요. 영어로 설명해주시는 분이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관람객은 곳곳에 설치된 벤치에 앉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할머니 2명은 백설기 떡을 꺼내 허기를 달랬다. 휴게소 안에선 중년 여성 2명이 사과를 먹고 있었다. 청와대 내에서 취식은 불가하다. 검은색 복장의 안전요원이 다가오길래 지켜봤는데 그냥 지나쳤다.

오후 4시경 청와대 입구로 돌아왔다. 그 시간에도 꽤 많은 관람객이 줄을 서고 살짝 들뜬 모습으로 입장용 QR코드를 준비했다. 잔뜩 기대하며 방문한 청와대에서 이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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