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6m, 세로 3m 크기의 흰 천막 7채. 옆 전봇대에 ‘구룡마을(4지구) 화재민 비상대책위원회’라고 적힌 현수막이 있었다. 바닥에는 연탄재와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지구. 이곳에서 원인 모를 불이 1월 20일 났다. 화재로 68명(44세대)이 집을 잃었다. 당시 강남구는 임시 숙소를 한 달 간 제공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4월 21일 찾았다.

마을에 남은 이재민은 모두 60대 이상의 가난한 노인이다. 유일한 생계 수단은 1달에 30만 원 정도인 노령연금.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집을 구할 돈이 없어 잿더미가 된 집터에 천막을 치고 20명 정도가 함께 산다.

천막 4채는 남자 숙소 2채, 여자 숙소 2채로 나뉜다. 1채에 4~5명 산다. 화재 직후에는 1채에 10명 정도씩, 2채를 숙소로 쓰다가 숫자를 늘렸다. 안에 들어가니 바닥에 얇은 이불 여러 개가 덧대어 깔려있었다. 천장에는 어두운 전구 1개. 휴지와 옷가지 같은 생필품이 보였다.

나머지 3채는 부엌과 창고, 교회다. 부엌에서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음식을 기름에 튀겼다. 식재료는 1~2월에 기업과 교회, 시민이 보낸 후원금으로 샀다.

종이 달력 뒷장에 굵은 펜으로 쓴 후원자 명단 7장이 부엌 안쪽 벽에 붙어 있었다. 이마저도 3월부터는 후원이 뜸해져서, 지금은 이재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화재민 비상대책위원장(74)은 “사람 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낮에는 더워서 천막 안에 있기 힘들다. 책상과 의자가 놓인 쉼터 위에는 햇볕을 막는 검은 천이 있었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사는 모습을 알리고 싶지 않다”라며 이름을 기사에 싣지 말라고 했다.

이재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강애자 씨(90)는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라고 말했다. 잿더미가 쌓인 울퉁불퉁한 흙바닥 위에서 지낸 탓이다. 밤에는 땅에서 습기가 올라와서 잠자리가 불편하다.

강 씨는 “문을 닫으면 코가 닿는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화장실은 양변기 하나가 놓인 가로 세로 1m 남짓의 컨테이너 상자 2개. 변기와 문 사이에는 발을 둘 공간이 거의 없었다.

안디옥교회의 장원식 목사(73)는 샤워실을 보여줬다. 여자용은 산에 버려진 지름 약 2m의 파란 물탱크를 주워 만들었다. 벽을 잘라서 문을 만들었다. 천장에는 전구가 1개 있었다. 바닥에는 물양동이와 비누가 보였다.

남자용은 각목으로 뼈대를 세워 두 칸으로 나눴고, 바깥에 천을 둘렀다. 바닥에는 슬리퍼와 비누 조각이 있었다. “바깥에서는 여기 실정을 모르고, 여기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요.”

구룡마을에 35년째 산다는 장 목사는 집이 있었던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쓰레기가 뒤섞인 흙바닥 위에 그을린 집이 내려앉아 있었다.

불이 나기 전에는 집 옆에 교회를 세워 주민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저는 원래 저쪽, 나무 너머 빨간 지붕 저기서 살았어요. 저기가 원래 교회 자리고. 지금은 다 타가지고….”

교회 전도사(73)가 목발을 짚고 천막에서 나왔다. 며칠 전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천막생활만으로도 힘든데, 다리까지 다쳐서 이중고라고 했다.

“나이가 70이 넘어가니까 할 것도 없고, 이리 다쳐놓으니까 더 할 게 없고. 식구들이 많으니까 밥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그 역시 구룡마을에 사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지구
▲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지구

구룡마을은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준비로 강남구가 개발되면서 생겼다. 도시정비사업에서 밀려난 철거민이 구룡산 인근 농지에 무허가 판자촌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2011년 공영개발 방식으로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강남구와의 마찰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2015년에 거주민 1107세대의 공공임대주택 정착을 돕는 사업을 재추진하려 했지만, 토지주와 거주민 민원으로 미뤄졌다.

이러는 동안에 화재와 수해 피해가 계속됐다. 비닐과 판자, 부직포처럼 재해에 취약한 소재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도시개발사업을 발표한 2011년 이래 마을에서 화재 9번, 수해 1번으로 거주민 412명이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그간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임대보증금 납부 유예와 임대료 40% 감면 조건으로 임대주택을 제공했다. 이번 이재민 44세대 중 12세대도 이곳으로 이주했다. 나머지 32세대 중 일부는 가족이나 지인 집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1107세대 중에서 540세대가 마을에 남았다. 임대료를 낼 수 있는 거주민은 나갔지만, 남아있는 이재민은 그럴 돈이 없어서 못 나갔다.

서울시와 SH는 5월 1일부터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를 전액 지원하는 대책을 3월 30일 발표했다. 1107세대 중 천막 이재민을 포함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자에게 전액 지원하는 내용. 나머지 거주민에게는 임대보증금을 전액 지원하고 임대료는 60% 감면한다.

그러나 화재민 비상대책위원장은 SH가 말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전액 지원 내용이 담긴 기사를 들고 4월 21일, SH에 찾아갔다. 내용이 맞는지 물었더니 담당자는 임대료를 60%만 감면한다고 대답했다.

“자기들이 보도자료에 이렇게 발표해놓고, 기사가 잘못됐으니 기자한테 가서 따지래요. 화재민 포함해서 차상위 수급자랑 같이 (지원)해준다고 해놓고 다른 말 하면 되겠느냐, 내가 따졌어요.”

전액 지원받지 않으면 임대주택에서 살기 힘들다. 임대료에 관리비까지 내면 생활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바깥 사람들은 화재민이 무슨 큰돈이나 벌려고 여기 죽치고 사는 줄 아는데. 노령연금 30만 원 갖고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처박혀 있는 거지.”

SH는 이재민에게 임대료를 전액 지원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4월 24일, 홍보부에 물었더니 담당자는 “보증금은 무기한 납부 유예, 임대료는 60% 감면”이라고 답했다.

보도자료와 다르지 않냐고 묻자 “천막 거주자를 포함한 1107세대에게 임대료를 지원하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자는 100%, 그 외는 60% 지원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SH 설명대로라면, 임대료로 한 달에 5만~15만 원을 내야 한다. 보증금은 기간에 상관없이 전액 지원한다.

이재민은 SH 설명을 못 믿겠다고 했다. 특히 계약서에 ‘보증금 유예’로 표시된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위원장은 “SH가 말을 자꾸 바꿔서 믿을 수 없다”라며 나중에 보증금을 다시 내라고 하거나, 임대료를 올릴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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