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권이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전세 대출금 상환기간을 늘리거나 낮은 이자로 대출해주는 방안 등이다. 정부는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경매를 중단시키거나 경매기일을 늦췄다.

부동산의 경매 과정은 이렇다. 부동산이 압류되면 감정평가인이 가치를 평가해 최저감정액을 정한다. 그 뒤에 법원이 부동산에 사건번호를 붙여 홈페이지에 올린다. 사건번호를 보고 입찰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입찰표를 작성해 매각기일에 입찰법정에 제출하면 된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경매는 인천지법이 담당한다. 이곳을 4월 19일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경매 중단을 지시한 다음날이다.

▲ 인천지법 입찰법정 앞
▲ 인천지법 입찰법정 앞

경매는 2층 219호 입찰법정에서 열린다. 오전 10시가 되면 법원 직원이 그날 집행될 경매의 사건번호가 적힌 종이를 법정 밖의 입찰게시판에 붙인다. 이날 부동산 50건이 경매에 올랐다.

법정 문이 열리자 30여 명이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은 120석 정도였다. 뒤쪽에 독서대같이 칸막이로 나뉜 책상이 놓였다. 보였다. 입찰자는 오른쪽 벽에 있는 서류를 가져가 책상에서 입찰표를 작성했다. 입찰표에 정보를 쓰고, 노란 봉투에 담았다.

오전 10시 20분이 되자 판사가 입찰표를 접수하겠다고 말했다. 사건번호를 일일이 읽었다.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제출해야 하는 사건 등 특이사항이 있으면 따로 고지했다. 법원 직원 앞으로 입찰자 열댓명이 줄을 섰다.

판사석은 앞쪽에 있다. 판사가 가운데, 법원 직원 둘이 양옆에 앉았다. 법원 직원은 사진 찍는 사람을 제지하거나 떠드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고, 입찰표를 받아 투명한 통에 넣었다. 입찰자는 신분증을 보여주고 번호표가 찍힌 종이를 받았다.

입찰표는 오전 11시 20분까지 받는다는 안내방송이 법정 안의 스피커에서 나왔다. 일부는 좌석에 앉았고, 몇몇은 밖으로 나갔다. 문이 양쪽으로 열려있어 사람들이 계속 드나들었다.

법정 밖에서는 경매꾼이 명함을 분주하게 나눠줬다. 사건번호와 부동산 주소, 주택 사진이 인쇄된 홍보전단도 보였다. 입찰에 참여하지 않고 그냥 보러 온 사람도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여성은 노후 준비로 상가를 얻으려 한다며 경매꾼에게 조언을 구했다. “비싼 물건 안 바라고 월세 달달이 받을 상가 한 채면 돼요. 이번 달부터 경매 학원도 다니는데 일단 현장을 봐야 이해가 쉬울 것 같아 나와 봤어요.”

이재철 씨는 1980년도부터 매일 빠짐없이 경매장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전세사기로 나온 매물을 건지러 경매꾼이 몰린다는데 오늘은 사람이 적은 편”이라며 빌라나 아파트 매물이 많은 날 입찰자가 는다고 말했다. 이날 경매에는 100여 명이 입찰했다.

일부는 전세 사기로 숨진 청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성 3명은 젊은 사람이 안타깝게 됐다면서 개찰이 시작되자 법정으로 들어갔다.

판사는 오전 11시 20분, 사건번호와 입찰번호, 입찰자 이름을 불렀다. 사건번호마다 입찰 금액이 가장 높은 순서로 3명을 호명했다. 제일 높은 금액을 적어 낙찰된 사람은 왼쪽 법원 직원에게 입찰표와 신분증을 냈다.

이날 경매에는 전세피해주택이 최소 2건 있었다. 여러 세대가 한꺼번에 묶여나온 사건 중 주소지를 검색해 피해 사실이 확인됐다. 어느 아파트는 100세대 중 3개 층 전체가 동시에 매물로 나왔다. 모두 피해가 집중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아파트다.

2건은 최초 감정평가액으로 경매에 나왔다. 부동산이 처음 경매에 나오면 최초 감정평가액에서 시작한다. 2건은 아무도 입찰하지 않아 유찰됐다. 사는 사람이 없어 유찰되면 가격이 30%씩 떨어진다.

유찰이 반복돼 가격이 떨어지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낮아진다.  낙찰 금액이 적을수록 세입자 몫으로 돌아오는 돈이 없다. 세입자는 채권자보다 채권 후순위로 밀려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매가 끝나자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법정을 빠져나갔다.

▲ 피해 대책위가 붙인 현수막
▲ 피해 대책위가 붙인 현수막

경매에 나온 집에 사는 세입자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사건번호에 적힌 주소지로 찾아갔다. 전체 세대가 경매로 넘어간 첫 번째 아파트. 공동현관이 굳게 닫혀있었다. 3개 동 13개 집의 창문에 빨간 현수막이 달렸다.

“구제방안촉구” 문구와 함께 반으로 잘린 집 그림이 붙어있다. 우편함에는 수도요금, 전기요금 고지서 등 우편물이 가득했다. 두껍게 쌓인 고지서 사이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적힌 법원경매 컨설팅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두 번째 아파트에 달린 현수막 문구는 경매꾼을 향했다. “사회적 재난 현장에서 경매 장사하는 당신도 가해자.”

1층에서 현수막을 찍는 카메라 기자가 있었다. 건물에 다가가자 카메라 기자가 다가왔다. “경매물건 보러 오셨어요? 집 보러 온 거면 인터뷰 좀 해줄 수 있어요?”

스토리오브서울 기자라고 했더니 그는 주차장으로 가면 피해자를 만날 수 있다며 그늘 쪽을 가리켰다. 남성 4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남성 한 명이 “오늘 기자 많이 오네”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정희 씨(26)는 전세사기를 알아챈 작년 7월을 기억했다. 고향에 내려가 부모를 만나고 돌아오니 우편함에 서류뭉치가 꽉 찼다. 법원 경매서류였다. 입주민이 모여 계약서를 펼쳐보니 집주인이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흰머리 노인’으로 불렸던 집주인은 가짜였다. 진짜 주인은 인천 미추홀구 일대 2864가구에 2700억 원대 전세사기를 벌인 ‘건축왕’ 남모 씨(61). 아파트 단지 전체가 남 씨 소유였다.

세입자들은 주차장과 베란다에 전세피해를 경고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하지만 아파트에 기웃거리는 경매꾼은 그대로였다. “업자들은 오히려 비웃어요. 이런 거(경고현수막) 붙여도 더 들어와요.” 이 씨는 가짜 집주인이 현수막을 뜯어 쓰레기통에 넣은 사진을 보여줬다.

이어 제대로 된 지원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긴급주거지원, 저금리대출, 무이자대출로 크게 세 가지다. 이 씨는 긴급주거지에 살 수 있는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하고 신청요건을 맞추기 어려워 사실상 입주가 힘들다고 말했다.

“저는 결혼도 포기했어요. 이 근처 피해자 대부분 사회초년생인데 빚 2억을 안고 뭘 시작하겠어요.” 이 씨는 법정 다툼과 채무 조정으로 구직활동을 멈춘 상태다. “숨진 사람 3명으로 나오는데, 자살 시도했다가 목숨을 건져 보도 안 된 사람도 있어요. 이제 시작일 겁니다.”

김윤근 씨(51)는 대출로 피해자를 지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전세금을 마련할 때 대출을 끼고 들어왔는데 또 대출하라는 건 피해자를 빚더미에 올라앉으라고 등 떠미는 격이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는 전세가가 크게 떨어져 대출받더라도 갈 수 있는 곳은 깡통전세로 나온 매물뿐이라고 한탄했다. 김 씨가 세입자 우선 낙찰권을 주장하는 이유다.

추가로 대출받아도 세입자가 집을 낙찰받을지는 미지수다. 경매꾼이 조직적으로 매입에 나서면 피해자는 살던 집을 되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명 ‘낙엽줍기’ 수법이다.

경매꾼이 피해 주택을 낙찰받고 세입자에게 접근한다. 국가에서 지원받은 대출금으로 깡통전세에 들어오라고 한다. 빼앗은 전세금으로 다른 ‘낙엽’을 줍는다. 입찰에 성공하면 반복한다. 이 수법대로라면 전세사기를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다. 전세 만기가 도래하면 또다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만 남는다.

김 씨는 경매에 나온 집은 통상 반 값에 팔리는데 전세사기로 나온 집은 최초경매가 70% 정도에 넘어간다고 했다. 예를 들어 감정평가사가 값을 1억 원으로 매긴 집이 5000만 원 정도에 팔려야 하는데 7000만 원에 팔렸다는 뜻이다. 그는 세입자가 제값에 사지 못하게 경매꾼이 끼어든 결과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8월 집주인 행세를 하던 ‘흰머리 노인’이 아파트 한 채를 깡통전세로 내놨다 세입자들이 현수막을 붙이고 항의하자 도망쳤다. 이들은 도주하며 수도와 전기, 엘리베이터를 고장냈다. 수리비는 남은 세입자가 나눠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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