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인 통도사신평버스터미널에서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까지는 걸어서 30분. 주위를 둘러보자 주황색 전동킥보드가 보였지만,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고 켜보니 마을은 킥보드 주차금지구역이었다.

4월 24일 오후 3시쯤, 버스에서 내리고 2.5㎞를 걸어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안내문이 보였다. ‘이곳부터는 대통령 경호구역입니다.’ 주민 배지선 씨(60대 중반)는 마을을 “조용하고 산책하기 좋은 시골”이라고 했다.

평산책방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직원 2명이 문틀을 끼우고 인부 4명이 앞마당에 파라솔을 심었다. 용접 소리와 공사 자재를 실은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70대 주민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기 전까지 조용했던 마을이 지난해 5월부터 시끄러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스물둘에 결혼해 25년 이상을 이곳에서 보냈다. “주말이면 시위하느라 얼마나 시끄러운지…. 오늘(4월 24일)은 좀 조용해서 좋네.”

“수첩은 뭐하러 꺼내는교?” 주민이 기자를 빤히 바라봤다. 주민들은 취재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책방에서 100m 떨어진 곳에서 순두부 식당을 하는 주민도 “여기 사람들은 이런 거(취재)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 평산책방  
▲ 평산책방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평산마을 사저 근처의 단독주택을 매입했다. 이어 ‘재단법인 평산책방’의 등기 신청을 마치고 안도현 시인을 이사장으로, 신혜현 전 청와대 부대변인을 비서관으로 임명했다.

법인은 올해 2월 공사를 시작했다. 454.62㎡ 부지에 지상 1층, 2개 동(142.87㎡)으로 책방을 만들었다. 신혜현 비서관에 따르면 4월 24일 일반 주택에서 1종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하는 절차를 마쳤다. 책방에서 휴게음식점과 소매점 운영이 가능하다는 말.

4월 25일 아침에는 평산마을을 찾는 발길이 늘었다. 책방이 문을 여는 날, 부산과 경남 양산·창원에서 왔다는 시민들이 책방 앞을 서성거렸다. 30분쯤 지나자 문재인 공식 팬카페 ‘문팬’ 회원도 하나둘 모였다.

이미선 씨(58)는 부산에 살지만 1주일에 다섯 번 이상 평산마을을 찾는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감옥 아닌 감옥에 살고 있다. 책방이 지지자들과 주민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그가 썼던 우산 안쪽에 문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주요 매체의 취재진도 현장을 찾았다. 오전 10시 10분쯤, 채널A 등 방송사 기자 10명이 맞은편 잔치국숫집 옥상으로 올라가 책방 외관을 스케치했다.

신혜현 비서관은 현판식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책방은 밖에서 찍어도 (영상이) 충분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어느 방송국 기자가 “(양산) 아방궁 사태를 막고 싶다”며 “안에 들어가서 찍어 메시지를 담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몇 차례 논의하고 신 비서관과 취재진은 매체 5곳을 풀기자단으로 선정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한겨레가, 영상은 MBC와 YTN이, 글은 경남CBS와 중앙일보가 맡았다.

▲ 책방을 찾은 취재진
▲ 책방을 찾은 취재진

오후 1시쯤 카페 앞 청산골 산장 부근 도로에서는 문 전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보수단체 ‘한미자유의물결(이하 물결)’의 박윤기 대표가 확성기로 “문죄인은 물러나라” 구호를 외쳤다. 평산책방이 “좌파의 매개체이자 구심점”이라고 했다.

오후 1시 30분쯤 SM5 승용차가 경적을 울리며 물결 시위대와 기싸움을 벌였다. 물결 김선이 사무국장은 차 유리에 바싹 붙어서 삿대질하며 “호야, 이거 집회방해야. 노란리본 꼴을 봐라”라고 했다. 물결을 포함한 보수단체를 ‘패륜집회’로 지목한 유튜브 호야62tv의 이광호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옆에 있던 푸른 비옷의 신승목(53)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 대표는 기자를 부르더니 “저들은 지금 쇼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결 관계자들을 “저자들”이라고 가리키며 신경전을 벌였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물결 텐트 쪽에 스피커가 1대 더 늘어나자 카페 앞마당에서도 주민으로 추정되는 이가 확성기를 들고 응수했다.

“여기는 보수의 텃밭이다. 경상도를 우습게 보지 마라!”

“여긴 우린 마을이야.”

“평산책방 만드느라 마을 어지럽히고 시끄럽게 한다!”

“너네가 더 시끄러워.”

설전은 책방에서도 들릴 정도로 1시간 동안 이어졌다. 200m 가량 떨어진 카페의 매니저는 이런 모습을 불안하게 봤다. 지난 6년간 주민과 근처 통도사 관광객이 주고객이었다. 문 전 대통령이 마을에 오면서 시끄러워졌지만 지지자든 반대자든 맞이할 수밖에 없다.

▲ 평산마을 집회
▲ 평산마을 집회

MBC가 4월 25일 오후 4시, 책방 안팎을 촬영했다. 30분 뒤에는 YTN이 내부를 카메라에 담았다.

오후 5시가 되자 주민이 하나둘 책방 앞마당에 모였다. 분쯤 지나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숙 여사와 함께 책방에 들어섰다. 오후 5시 10분쯤 현판식을 할 때는 KBS를 포함해 15개가 넘는 매체의 30여 명이 취재했다.

▲ 현판식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 현판식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주민들은 책방 내부를 둘러보고 앞마당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감사 인사를 짧게 하고 안도현 이사장 및 주민과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오후 5시 40분쯤 주민들은 선물을 받고 돌아갔다. 기자가 보고 싶어 했지만 주민들은 “뜯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말했다.

현판식을 오후 6시 10분쯤 마치고 취재진이 모두 떠나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문팬 회원과 사진을 찍고 어린이에게 사인을 했다. ‘멀리서 개소식을 보러 와줘서 고맙다’는 문구가 보였다.

책방에 대한 주민 반응은 엇갈렸다. 배지선 씨는 말이 책방이지 정치적 (공간)이지 않냐고 했다. “새벽 6시쯤 일찍 (일어나서) 사저를 보면 검은 차 몇 대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여요. 사저 쪽은 경호처가 막고 있어서 함부로 못 들어가는데도요.”

마을에서 2대째 도자기를 굽는 신한균 씨(64)는 평산책방이 “마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책방이 열려도 조용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주민들이 책방을 구경하고 있다.
▲ 주민들이 책방을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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