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해 처음 법정에 선지 716일(4월 7일 기준)이 지났다.

검찰이 적용한 죄명은 세 가지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와 시세조종.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외부감사법상 거짓 공시와 분식회계. 삼성물산 주주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

주요 쟁점은 이 회장이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계획했는지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주식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했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모직 최대주주였다.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면 비용을 덜 들이고 경영권을 확보한다. 검찰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제일모직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려 부당거래 행위 및 시세조종을 했다고 본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회계 의혹 역시 경영권 승계와 관련 있다. 검찰은 제일모직 주가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에서 일부 내용을 빼거나 회계처리 방법을 바꾸는 등 자산을 과다계상(計上)했다고 본다.

이 회장이 피고인으로 재판에 출석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그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2021년에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뇌물을 제공하고, 경영 승계를 도와달라는 취지로 부정하게 청탁했다는 죄목이다.

2017년부터 이어진 공방은 2021년 1월 18일 파기환송심에서 일단락됐다. 서울고등법원이 86억 8000만 원의 뇌물을 회삿돈으로 제공한 혐의를 인정하면서 징역 2년 6월이 확정됐다.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부정청탁을 했던 사실은 확인됐지만, 같은 이유로 부당합병과 분식회계가 있었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2020년 9월.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면서 이 회장은 다시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공소 31개월이 지난 4월 7일, 92차 공판이 열렸다. 제25-2형사부 심리로 진행한다. 사건번호 2020고합718. 피고인 목록에는 이 회장 외에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삼성그룹 임직원 13명이 포함됐다.

이 재판은 법원 누리집에서 신청해야 방청할 수 있다. 대부분의 민형사 재판은 별도 신청 없이 법원에서 바로 볼 수 있다. 헌법 제109조가 공개재판의 원칙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단, 방청 수요가 높은 주요 사건에 대해서만 미리 신청받고 당첨자만 들어가게 한다. 기자는 3월 31일 서울중앙지법 누리집에서 92차 공판의 방청을 신청했다. 4일이 지나고, 기자는 당첨 연락을 받았다.

재판 시작은 오전 10시. 기자는 서관 2층의 4-2번 출입구 앞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방청권을 받았다. 417호 형사대법정으로 향하는 5번 출입구 앞. 금속탐지기를 지났다.

▲ 방청권 배부 안내
▲ 방청권 배부 안내

2개 층을 더 올라가 417호 문을 열었다. 오전 10시 정각, 공판이 막 시작됐다. 판사는 3명, 검사는 4명이었다. 변호인 6명 뒤로는 이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이 5열 2행으로 앉았다. 이 회장은 앞줄 가장 오른쪽, 방청석과는 가장 먼 자리였다.

기자는 배정받은 83번 방청석을 찾았다. 검사와 가까운 왼쪽 방청석에는 주로 방청객이 뒤쪽 3줄에 모였다. 변호인과 가까운 오른쪽 방청석에서 정장을 입고 3줄에 모여앉은 이들은 전자기기를 바쁘게 두드렸다.

판사석과 마주 보는 자리에 증인석이 있었다. 이날 증인은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운용사인 연금자산운용(APG)의 박유경 아시아태평양 총괄 책임자였다. APG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했다.

증인 선서 후 검찰 증인신문이 시작됐다. 검사 측에서 변호인에게 자료 더미를 전달했다. 변호인과 피고인뿐 아니라 오른쪽 방청석에도 전달됐다.

피고인 옆의 대형 모니터와 방청석 가장자리 4개 모니터가 켜졌다. 하얀 바탕인 발표 자료의 좌측 상단에는 증거 순번이 있고, 남은 공간에는 증거자료 스캔본이 첨부됐다.

검사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비율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증인은 “양사의 기업가치를 고려할 때, 1대 1 비율이 적절했지만,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봤다”며 1대 0.65 정도로 이뤄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1대 0.35로 발표된 데 유감을 나타냈다.

합병이 소유주 이익을 위한 경우가 많아 이해한다면서도, 합병비율이 예상과 너무 달랐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검사는 이에 따라 발생할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가 국민과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가지 않냐고 질문하자 증인은 “크게 보면 맞다”고 답했다.

합병 시점에 관해 증인은 “삼성물산 주가가 낮아서 삼성물산 이사회가 합병을 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삼성물산 경영진이나 이사회는 주가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합병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이사회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발언이 이어졌다.

변호인이 반대신문을 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인단도 검사 측에 자료를 전달하고 법정 모니터에 띄웠다. 푸른색으로 꾸며진 자료에, 핵심 부분은 빨간색 사각형으로 강조했다.

변호인은 합병이 적절하다고 보는 의견도 다수 존재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먼저 ‘합병비율이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례를 제시했다.

이에 증인이 “법의 판단과 시장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이야기하자 변호인은 “시장의 판단도 주주마다 다를 수 있다”고 반문했고 증인은 동의했다.

증권사의 70%가 합병을 찬성했다는 자료가 추가로 나왔다. 변호인은 다른 주주의 의견이나 앞선 법원의 판단까지 모두 잘못됐다고 보는지 물었다. 증인은 “30%는 합병에 반대했고 본인은 30% 중 1명”이라고 답했다.

변호인은 증인이 공감하기 어려울 뿐, 70%가 틀렸다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 맞는지 재차 물었고, 증인은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변호인은 이어서 합병에 찬성했던 외국계 주주의 이름을 1명씩 언급했다.

합병이 되지 않았다면 삼성엔지니어링 부실이 삼성물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변론이 이어졌다. 증인은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면서도 “그런 상황이 고려됐더라도 합병할 필요는 없었고, 삼성물산 이사회라면 합병을 보류하는 게 합당했다”고 이사회의 직무 유기를 다시 지적했다.

변호인 신문이 40분 정도 이어진 11시 33분, 검사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검사 신문이 총 40분이었는데, 변호인 신문 자료는 아직도 20쪽 분량이 남았다는 이유에서다. 판사는 변호인 측에 빠른 진행을 주문했다.

변호인은 합병 후 시가총액이 합병 전의 양사 시가총액보다 높다면서, 70% 주주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11시 43분, 피고인인 삼성물산 최치훈 사장·이영호 전 최고재무책임자·김신 전 상사부문 대표이사가 선임한 법무법인 화우 변호인의 신문이 시작되려는 찰나, 검사 측은 다시 한번 신문 시간에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 측은 10분을 넘기지 않겠다며 신문을 이어갔다.

변호인단은 합병이 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경영 손실과 주가 하락을 언급하며 증인에게 경영진의 합병 결정이 틀렸다고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증인은 그런 상황은 몰랐다며 답변을 주저했다.

그러자 판사는 경영 위기 상황을 인지한 지금의 판단은 어떤지 질문했다. 증인은 “당시 합병 이유를 설명하면서 위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고 답했다.

비슷한 질문이 반복되자 검사 측은 “당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공개되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변호인은 다시 질문했다. 증인은 “그렇게 (합병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며 진술을 마무리했다.

낮 12시, 검사 측은 “변호인이 당시 상황의 전후 관계를 혼재해서 증인에게 말하고 있다”면서 “사후적 이유보다 합병 당시에 어떤 이유가 제시됐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인이 말한 내용을 고려해서 합병을 결정했다는 어떤 대외적인 근거도 없다”며 “외부에서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내부에서 합병하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합병 절차의 부적절성에 관한 신문이 이어졌다. 검사는 “변호인이 제시한 합병 이유와 효과는 삼성물산 직원 1~2명이 약 10일 동안 분석한 것”이라며 “이 정도로 합병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다고 볼 수 있나”라고 물었고 증인도 “해당 내용이 사실이라면 부족하다”고 답했다.

검사는 합병이 이사회 하루 전에 안건으로 제시됐고, 적절성 검토 없이 2~3시간 회의로 결정됐다며, 이사회 배임이 아닌지 질문했다. 증인은 “법률전문가가 아니기에 배임에 해당하는지는 모르지만 (이사회의) 해태(懈怠)는 맞다”고 말했다. 해태는 임무를 나태하게 했음을 뜻한다.

이번에는 변호인 측에서 신문 시간이 길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검사 측은 “변호인은 시간을 2배가량 더 썼다”고 말했고 피고인들이 반발했다.

합병 절차의 정당성을 놓고 검사 신문이 계속됐다. 검사는 변호인의 신문 내용 중 ‘합병비율이 1대 0.65가 될 때까지, 언제까지 논의해야 하나’라는 부분을 언급하면서 “꼭 합병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피고인석과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검사는 “누가 시킨 것처럼 목적의식을 가지고 합병을 하면 되겠냐”면서 신문을 마무리 지었다.

변호인은 합병 당시 주주에게 경영악화 상황을 설명했다는 걸 입증하는 재반대신문을 진행했다. 삼성물산 홈페이지에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는 자료를 게시했고 향후 합병비율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는 점도 기재했다고 이야기했다.

증인이 “자료를 본 기억이 있다”고 답하자 변호인은 “(이전 증언은) 아주 세부적인 설명이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냐”고 물었고 증인은 동의했다.

 증인신문이 낮 12시 43분 마무리되고, 공판이 3분 뒤에 끝났다. 이재용 회장은 공판 내내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앉은 자세를 유지했다. 잠깐 물을 마실 때 말고는 왼손에 든 펜을 돌리거나 펜 끝을 딸깍이는 행동만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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