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직장인 이상우 씨는 2022년 9월 ‘공조 2: 인터내셔널’을 본 다음에는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는 ‘아바타: 물의 길’. 비싼 관람료를 이유로 꼽았다. “여자 친구랑 같이 가서 티켓값으로 3만 원, 콜라와 버터오징어에 1만 원, 합쳐서 4만 원이나 지출했다.”

코로나가 끝난 뒤에도 영화관 관객 수가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관람료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관람료 인상으로 관객이 줄고 영화산업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일반관 관람료는 올해 4월 기준으로 주중 1만 4000원, 주말 1만 5000원이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중 가장 비싼 넷플릭스의 월 구독료보다 높다. 작년 4월에는 씨지비(CGV)가, 7월에는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가 관람료를 인상했다.

관객은 영화관 가는 횟수를 줄였다. 2달에 한 번 정도 영화관을 찾는다는 대학생 조윤재 씨(26)는 관람료가 오르면서 영화 완성도를 더 따지게 됐다면서 “좋은 환경에서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굳이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계로 관객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실시한 ‘2020-2021년 영화 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영화표 1장 구매 시 1만 2000원 이상 지불할 의사가 있는 관객은 19.1%뿐이었다. 코로나 이후 영화를 극장에서 주로 본다는 비율은 62%였다. 2018년에는 응답자 중 91.5%가 극장에서 주로 영화를 본다고 답했다.

▲ 영화관 어플 예매 화면
▲ 영화관 어플 예매 화면

멀티플렉스 측은 관람료 인상이 영화산업 전체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가격 인상을 주도한 CGV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화 업계가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가격을 인상했다”고 밝혔다.

영화산업은 투자, 제작, 배급, 상영의 순환 고리로 움직인다. 극장에 걸린 영화가 흑자를 기록해 재투자해야 유지된다. 팬데믹 때문에 관객이 줄자 극장, 투자사, 배급사는 이익을 낼 수 없었다. 자연히 재투자가 줄었다.

CGV는 관람료를 인상하면 영화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관람료가 1만 원일 때 관객 200만 명을 동원해야 흑자를 보는 영화도 관람료가 1만 2000원이면 관객이 180만명만 되도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주장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람료가 오르면서 영화산업 주요 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 규모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영진위는 ‘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서 2022년 한국 영화산업 주요 부문(극장, 극장 외, 수출) 매출이 1조 7064억 원이라고 밝혔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2조 5093억 원)의 약 68% 수준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영진위에 따르면 2023년 3월 전체 매출은 800억 원으로 2019년 3월의 63.2% 수준이었다. 관객 수도 748만 명으로 2019년 3월의 51%에 불과하다.

한국 영화는 직격탄을 맞았다. 3월 한 달간 한국 영화 매출(215억 원)은 2019년 3월의 40.2%, 관객(187만 명)은 2019년 3월의 29.9% 수준이다. 매출 점유율은 26.8%, 관객 수 점유율은 25.1%에 불과하다.

팬데믹 기간인 2020~2022년 3월을 제외하면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가동된 2004년 이후 3월 중 가장 낮다. 작년 11월 개봉한 ‘올빼미’ 이후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다.

예술·독립·다큐멘터리 영화, 이른바 ‘다양성 영화’도 위기에 빠졌다. 2019년에 다양성 영화 관객은 809만 명, 매출은 635억 원이었다. 2022년에는 관객이 382만 명, 매출은 353억 원이었다. 2019년에 비하면 각기 47.2%와 55.5%, 절반 수준이다.

다양성 영화가 관객을 만날 기회도 줄었다. 예술영화 전용 극장이던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작년 8월 실적 부진을 이유로 영업을 끝내려 했다. 지금은 방침을 바꿔 영업하지만 예술영화 상영관을 5개에서 2개로 줄였다. 영진위에 따르면 2019년에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은 75개. 2022년에는 68개로 줄었다.

영화계 종사자들은 관람료를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항준 감독(53)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 값이 너무 비싸요. 이거 바꿔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영화계가 다 힘들어집니다. 영화라는 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잖아요. 영화의 문턱을 더 낮춰야 합니다.”

최동훈 감독(53)도 중국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관람료를 500원가량 내렸다면서 “그건 굉장히 중요한 신호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힘들었지만 이제 가격을 내렸으니 영화를 봐주세요라는 사인이 우리도 필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관람료 인하가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홍수정 영화평론가는 “관람료 인상만 관객 수 감소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코미디 영화 ‘육사오’를 예로 들며 영화 자체의 완성도, 대진운, 홍보 및 상영처럼 여러 요인이 관객 수나 매출액에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작년 8월에 개봉한 ‘육사오’는 관람료가 오른 직후에 개봉했지만 19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예상외로 흥행했다.

그도 관람료 인상이 영화계에 좋은 일은 아니라는 의견에는 동의했다. “관람료가 장기적으로 지금 같은 추세로 계속해서 인상된다면 관객 수는 당연히 감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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