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6월 일본 정계는 부패 스캔들로 뒤집어졌다. 아사히 신문이 보도한 리쿠르트 부패 스캔들이 시작이었다. 이 사건은 리쿠르트사가 부동산 자회사인 리쿠르트 코스모스사의 비상장 주식을 유력 정치인들에게 제공해 상장 후 수천만 엔에서 수억 엔에 이르는 차익을 내도록 한 사건이다. 주식을 받은 정치인들은 그 대가로 리쿠르트사 재개발 사업의 편의를 봐줬다.

이 사건에는 당시 총리였던 다케시다 노보루 등 자유민주당(자민당) 지도부를 비롯해 76명의 정치인이 연루됐었다. 부패 규모가 거액이고 정부 각료를 비롯한 여권 주요 인사들이 대거 사건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 1988년 6월 18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리쿠르트 사건 (출처=신문과방송 216호)
▲ 1988년 6월 18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리쿠르트 사건 (출처=신문과방송 216호)

▲ 파벌, 정치부패로 이어지다

한국법제연구원 강현철 부원장은 일본의 정치부패 원인으로 ‘파벌 정치’를 꼽았다. 일본의 파벌은 당내 총리나 총재 후보자처럼 영향력이 큰 지도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의원집단을 말한다. 출신 배경이나 정당 내부의 노선 갈등, 정치적 이념에 따라 만들어지는 파벌은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파벌이 구성원 충원, 자금조달, 조직력 등에서 정당을 능가하는 역할을 해 문제다.

의원들은 정당이 아닌 파벌 지도자에게 정치자금과 선거 도움을 받고 파벌 지도자의 총리나 총재 취임을 지원한다. 강 부원장은 “파벌 정치는 정치인들이 정당이나 국가의 이익보다 파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답했다.

파벌의 영향력이 가장 큰 정당은 자민당이다. 자민당은 1955년 창당 후 일당우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009년 중의원 선거를 제외하고 원내 제1당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자민당이 의석 과반수를 확보하면 집권당인 자민당의 총재가 곧 총리가 된다. 총리보다 자민당 총재 선출이 의원들에게 더 중요해진 이유다.

정치자금 역시 권력이 집중된 파벌 지도자를 중심으로 제공됐다. 당시에도 국고보조가 있었지만 신문광고, 선거 포스터 제작, 선거용 자동차 제공 등 간접적인 수준으로 이뤄졌다. 대신 파벌 지도자가 기업으로부터 개인 후원을 받아 자금을 충당했다.

강 부원장은 기업과 파벌 간에 “공개된 정치후원금이 아닌 비공개된 뇌물성 후원금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사적 공생관계”가 형성됐다며 “이를 기반으로 정치인은 파벌을 유지하고 기업은 이익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 정치부패 근절 위해 도입된 국고보조금

리쿠르트 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는 정경유착 문제에 경각심을 느꼈다. 부패 척결에 대한 국민 여론과 정치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자민당은 1993년 총선에서 의석수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고 자민당을 제외한 7개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연립정부는 자민당 독주를 막기 위해 뜻을 모았다. ▲소선거구 최다득표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선거제도 ▲정치자금에 대한 규제 강화 ▲정당에 대한 국고지원 ▲선거구획정위원회 설치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국가가 정당에 ‘정당교부금’이라는 이름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긴 정당조성법이 1994년 제정됐다. 기업이 의원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대신,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를 확대하는 개혁이었다.

정당조성법은 1조에 “(정당교부금을 통해) 정당의 정치활동의 건전한 발달을 촉진하며, 공명과 공정을 확보하여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즉, 파벌의 영향력을 키운 사적 자금의 기능을 줄이는 대신 세금으로 정치 활동을 지원해 정당의 공적 성격을 분명히 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효과는 어땠을까. 강 부원장이 쓴 논문 「일본의 정치자금법제에 관한 연구」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2001년~2006년 임기) 이래 일본정치에서 파벌이 급속하게 약화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정당조성법으로 국고보조를 확대하면서 정당정치가 강화된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이 제도 도입 이후 국가별 공공·정치 부문의 부패 수준을 평가하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22년 국가 청렴도' 순위에서 일본은 100점 만점에 73점으로 180개국 중 18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싱가포르·홍콩에 이어 3위로, 63점으로 31위를 차지한 한국보다 높은 순위였다.

 

▲ 국민 지지도에 따라 지급되는 정당교부금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정당교부금을 지급하고 있을까. 정당교부금 총액은 정당조성법에 따라 가장 최근 국세조사 인구수에 250엔(약 2453원)을 곱한 값으로 정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연구보고서 「각국의 정당·정치자금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2021년 OECD 국가 중 일본은 국고보조금 규모가 한화 약 3,380억 원으로 멕시코(약 4,242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선거보조금까지 지급하는 한국과 비교해봐도 많은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 일본이 2022년 한 해 지급한 정당교부금은 315억 3652만 엔(약 3,107억 원)이었다. 같은 해 한국은 경상보조금에 대통령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져 지급된 선거보조금까지 더해 총 1,420억 원을 지급했다. 일본은 한국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지급한 것이다.

일본의 정당교부금 규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인구수에 비례해 자금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정당의 기부금 수입을 줄이기 위한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강 부원장은 “일본은 부패 스캔들을 계기로, 정당이 기부금에 의존하는 수입구조를 바꾸고자 했다”며 “(입법 당시) 규모가 컸던 기부금 등 사적 자금을 공적 자금으로 대체하기 위해 정당교부금 규모가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민당의 수입 구성 중 기부금 규모는 1986년 56%에서 2022년 11%로 크게 줄었다. 대신 정당교부금이 70%의 비중을 차지했다.

책정된 정당교부금은 공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국민 지지도에 따라 지급한다. 국민의 지지를 확보한 정치단체만이 정당교부금을 받을 수 있다. 국민 지지도는 ‘의석수’와 ‘득표율’로 확인한다. 중의원 또는 참의원 의원을 5인 이상 보유하거나, 가장 최근 선거에서 유효득표율 2% 이상인 정치단체만이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정당은 교부신청을 해야 정당교부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일본공산당의 경우 ‘재정 3원칙’을 이유로 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도 신청하지 않고 있다.

▲ 일본 정당교부금 배분 방식
▲ 일본 정당교부금 배분 방식

정당교부금의 배분에서도 국민 지지도가 가장 중요하다. 정당 성립 조건과 마찬가지로 의석수와 득표율을 고려한다. 정당교부금의 절반은 의석수, 나머지 절반은 중의원·참의원 선거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지급한다.

▲ 2022년 일본 정당별 교부금 및 의석수 비율
▲ 2022년 일본 정당별 교부금 및 의석수 비율

2022년 일본의 정당교부금 지급 내역을 살펴보면 의석수 비율과 비슷하게 배분됐다. 교섭단체를 중심으로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한국보다 배분 방식에 국민 지지도를 더 반영했다. 한국에서는 경상보조금 절반을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우선 지급한 뒤 나머지를 의석수 비율과 득표율에 따라 나눈다.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면 의석수 20석을 가져야 하는데, 이 기준이 높아 거대 정당만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다.

2008년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은 18석으로 의석수 3위를 기록했지만, 2석이 모자라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 당시 국고보조금의 절반은 교섭단체를 구성한 한나라당(153석)과 통합민주당(81석)이 나눠 가졌다. 일본에서도 ‘회파’라는 이름의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회파를 구성하면 정치적 권한이 달라지지만, 최소 인원 2명이면 회파를 구성할 수 있어 정당교부금 배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화여대 유성진 교수(스크랜튼학부)는 한국의 정당보조금 배분을 "교섭단체 중심에서 득표율 등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지지도를 반영하기 위한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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