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정치자금 지원의 기본 원칙을 만들었어요. 한국은 의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의적으로 관련 규정을 만들었지만, 독일은 헌법기관이 만든 기본 원칙에 준해서 세부적이고 체계적인 제도를 쌓은 거죠.”

독일과 한국의 정당 국고보조금은 무엇이 다를까. 한국외대 김성수 교수(행정학과)는 그 차이가 ‘원칙을 어디서 정했는지’에서 왔다고 봤다. 사법기관의 판결을 거치며 원칙을 정립해나간 독일과 달리, 한국은 입법기관이 자의적으로 정책을 만들어왔다는 거다.

독일은 1959년 유럽 최초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제도를 시행했다. 현재의 일원화된 형태는 1992년 판결 이후 자리 잡았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판결에서 정당 활동 전반에 대한 국가지원을 합헌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기존의 선거비 보전과 기회균등 지원비, 기본지급금 등을 폐지하고 국고보조금으로 일원화했다.

선거비 보전액을 따로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 및 보전액을 지급한다. 독일의 경우 선거운동에 드는 비용도 일반 정치 활동에 필요한 비용으로 본다. 즉 독일에서는 선거비용과 정치자금, 정당자금의 개념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2021년 기준 총 20개의 독일 정당이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한국에서 7개 정당이 경상보조금을, 5개 정당이 선거보조금을 받았다. 이 중 두 보조금을 모두 받은 정당은 5개다. 독일 정부는 약 2억 5백만 유로(약 2천 948억원)를 국고보조금으로 지급했는데, 이는 당해 예산의 0.04%였다. 규모는 작년 한국 국고보조금(약 1천 420억원)의 약 2배다. 이를 인구수로 나누면 독일은 1인당 3540원, 한국은 1인당 2750원꼴이다.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독일 국고보조금 제도는 크게 3번의 연방헌법재판소 판결(1958년, 1966년, 1992년)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정당 지원의 원칙이 수립됐다. 보조금 산출에 정당별 득표수를 연계하고, 산정 기준에 당비, 기부금 등 다양한 요인을 감안하는 제도적 특징도 이때 생겼다.


▲군소정당까지 보조금 돌아가는 독일

독일의 국고보조금은 선거에서의 유효득표수와 정당 수입에 따라 결정된다. ▲정당명부별 득표 유효표 1표당 0.83유로 ▲정당이 특정 주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공천하지 않은 경우, 1표당 0.83유로로 계산한다. 이 규정은 4백만표가 넘는 득표수부터 적용한다. 4백만표까지는 1표당 1유로를 지원해 득표수 당 지급 금액이 더 높다. 관대한 기준을 적용해 군소정당의 성장을 지원하는 셈이다. 또 정당이 거둔 당비 또는 적법하게 받은 기부금 1유로당 보조금 0.45유로를 받을 수 있다. 단 개인기부금은 1인당 3,300유로(약 474만원)까지만 인정한다.

▲독일이 한국에 비해 보조금을 얻는 군소정당이 많다
▲독일이 한국에 비해 보조금을 얻는 군소정당이 많다

독일의 보조금 배분방식은 특히 군소 정당에 도움이 된다. 정당법 제5조는 정당 간 기회평등을 보장한다. 거대 정당뿐 아니라 군소 정당에도 지원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각 정당은 유럽의회 및 연방의회에서 0.5% 이상, 지방의회에서 1% 이상의 득표율을 얻으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2021년 총선 결과, 원내 정당은 8곳이었다. 국고보조금을 받은 정당(20곳)의 60%(12곳)가 원외 정당인 셈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의석수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군소 정당이 성장할 기회가 적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총 47곳이다. 이 중 2022년 2월 기준 경상보조금을 받은 정당은 7곳, 선거보조금을 받은 정당은 5곳이었다. 여기서 원외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은 경상보조금이 약 14%(1곳), 선거보조금이 0%(0곳)에 그쳤다.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애초에 적을뿐더러, 그마저도 거대정당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정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의 총액은 약 1천 420억 원. 그중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600억 원 이상을 가져갔다. 전체의 약 85%를 양당이 수령한 셈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 국고보조금은) 거대 정당 중심으로 유리하게 되는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 국고보조금, 정당 자체 수입 못 넘어

독일 정당들은 국고보조금 수입에 얼마나 의존할까?

정당법 제18조 제5항은 두 가지 상한선을 정해두고 있다. 첫째, 개별 정당이 받을 수 있는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자체 조달 수입 총액을 넘을 수 없다. 일명 ‘상대 상한선’ 규정이다. 이는 개별 정당이 거둔 당비, 기부금, 사업 수입 등 자체 수입을 넘는 지원을 막아 국고보조금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둘째, 국가가 지급하는 보조금의 총액은 ‘절대 상한선’을 넘지 못한다. 지원금 규모를 정해두어 의회 마음대로 정당에 과도한 예산을 투입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조항이다.

총액은 각 정당의 선거 결과, 당비 및 기부금 총량에 상응해 분배된다. 독일 정당법 제18조에 따르면, 절대 상한액은 2013년부터 매년 증액되고 증액 기준은 전년 대비 해당연도 정당의 통상 지출 가격 지수 인상률로 정한다. 2022년 절대상한선은 205,050,704유로(약 2,943억원)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용역보고서 <법인 및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에 대한 비교법적 연구>에서 독일 정당의 수입 구조를 살펴봤다. 2019년 한 해 동안의 CDU, SPD, GRÜNE, AfD, DIE LINKE, FDP, CSU 등 7개 원내 정당 수입이 분석 대상이다. 평균을 내어보니 국고보조금(37.2%), 일반당비(24.9%), 기부금(16.2%), 의원회비(12.3%) 등 순이었다. 이중 정당 고유 수입으로 볼 수 있는 일반당비와 기부금, 의원회비, 행사·출판 수입 등을 합친 비중은 59.8%였다. 평균적으로 정당 자체 수입이 국고보조금보다 약 1.6배 많은 것이다.

▲ 독일 7개 정당의 2019년 수입구조 평균
▲ 독일 7개 정당의 2019년 수입구조 평균

한국도 매번 계상단가를 공표하고 보조금 총액을 제한하고 있다. ‘절대 상한선’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상대 상한선’이 없어 정당이 자체 수입보다 국고보조금에 의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에서 5년(2017년~2021년)간의 정당 수입을 살폈다. 정당 수입을 분류한 후 각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을 평균 냈다.

보조금(27.17%), 당비(24.19%), 전년도이월(20.37%), 기타(15%), 차입금(10.43%), 후원회 기부금(1.9%), 기탁금(0.94%) 순이었다. 당해 연도의 정당 자체 수입으로 볼 수 있는 당비와 기탁금, 후원회 기부금을 합쳐도 보조금에 약간 못 미치는 27.03%였다.

지난 5년간 정당 자체 수입이 보조금보다 많은 해는 2019년과 2021년. 대통령·국회의원·지방 선거가 없는 해였다. 이 때문에 선거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아 다른 해보다 보조금을 절반가량 받았다. 한국에도 독일의 상대 상한선이 있었다면 나머지 해에는 국고보조금이 정당 자체 수입보다 많아 지원액이 삭감됐을 것이다.

▲ 지난 5년간 한국 정당의 항목별 수입 비율 평균
▲ 지난 5년간 한국 정당의 항목별 수입 비율 평균

다만 독일은 국고보조금과 별개로 정당재단에 지원금을 주고 있다. 정당재단은 일종의 정당 싱크탱크다. 정당에 정책 개발과 정책에 대한 자문 등을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정당 정책연구소와 유사하지만, 본받아야 할 모범케이스로 꼽힌다.

한국의 경우 정치자금법 제28조 제2항에 따라 정당이 지원받은 경상보조금의 30% 이상을 정책연구소로 보내야 한다. 반면 독일은 정당재단 지원금을 정당 국고보조금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정당이 아니라 정당재단을 직접 지원해서다. 독일 정당재단은 인접 정당과는 독립적으로 재정과 조직을 운영한다. 결국 정당재단 지원금은 정치 발전에 필요한 제도적 기틀을 닦기 위한 간접 지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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