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오전 10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502호 법정. 처음 방청한 형사 재판은 영화나 드라마와 달랐다. 검사와 변호인이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판사가 중재하는 모습은 없었다. 법정 안은 조용했다.

형사 제6단독 윤상일 판사는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인적 사항을 물었다.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묻고는 다음 기일을 신속하게 잡았다. 검사는 공소장을 낭독하거나 증거를 제출할 때만 입을 열었다. 변호인도 의견서로 변론을 대신했다.

피고인 대부분은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선처를 바랐다. 술에 취해 경찰을 팔꿈치로 밀쳤다는 이유로 기소된 피고인은 “공무집행 방해 의도는 없었습니다.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판사는 오전 10시 37분부터 50분까지 휴정했다. 예정보다 재판이 빨리 진행됐다는 이유였다. 그때까지 법정에 들어선 피고인은 7명. 1명당 5분가량 걸렸다.

법정 분위기가 바뀌었다. 2건의 음주운전 사건 때문이었다. 휴정 직전의 첫 사건 공판은 순조로웠다. 피고인은 그랜저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118%. 피해자 부상은 전치 3주. 피해액은 1800만 원.

피고인은 법정에 혼자 왔다. 국선 변호인 선정 청구서를 늦게 제출했기 때문이다. 판사가 “변호인과 함께 재판받고 싶습니까?”라고 묻자 피고인은 “네”라고 답했다. 다음 기일에 변호사와 함께 오라는 판사의 말과 함께 공판이 끝났다.

법정 밖에서 소란이 생겼다. 피해자가 휴정 시간에 큰 목소리로 항의했다. 억울한 점이 두 가지라고 했다. 다음 기일을 자기가 일하는 날에 잡으면 공판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치료비와 차량 수리비는 받았지만, 3주간 일하지 못한 손실은 받지 못했는데 왜 공판에서 다루지 않냐고 했다.

경위가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가 아니라서 여기서 항의해도 소용없다”며 말렸지만, 피해자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공판을 기다리던 변호사도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받거나, 판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하라고 조언했다. 피해자는 휴정 시간 이후에도 항의했다. 11시쯤 되자 조용해졌다.

휴정 시간이 끝나기 직전, 상황을 지켜보던 법원 직원에게 이런 일이 자주 있냐고 물었다. “꽤 있는 편이죠. 그런데 저희가 법률 전문가는 아니라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그가 답했다.

▲ 502호 법정 공판 안내
▲ 502호 법정 공판 안내

재개된 재판의 첫 순서도 음주운전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벤츠 승용차를 끌다가 사고를 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145%. 시속 65㎞로 달리다가 전동 퀵보드를 박았고, 8㎞가량 도주했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숨졌다. 검사는 피고인을 음주운전과 도주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판사가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변호인은 음주운전만 인정한다고 말했다. 도주치사 혐의는 부인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피고인은 퀵보드가 갓길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피해자가 다친 걸 알면서도 도주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도주가 아니었다, 따라서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증거조사가 시작되자 변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검사의 증거 목록에 동의한 다른 변호인과는 달랐다. 수사보고서 2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 기관 의견에 불과할 뿐, 물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검사 측은 폐쇄회로(CC)TV 내용이 있으니 다음에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판사는 증거를 기각했다.

다음 공판 기일에 대해 논의하자 논쟁이 또 벌어졌다. 변호인은 증거조사 및 피고인 심문과는 별개로 구두 변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판사가 이유를 물었다. 그는 피고인이 체포될 때까지의 행적에 대해 구두변론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판사가 요청을 받아들였다.

피고인은 위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다. 공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책상만 봤다. 판사가 물을 때만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이 공판은 502호에서 진행된 공판 중 유일하게 10분 넘게 걸렸다. 방청객도 가장 많았다. 모든 순서가 끝나자 기자 앞의 젊은 남성 2명이 뒤이어 나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 뒤따랐다. 사망한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인 듯 보였다.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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